환인제약과 동국제약, 진양제약, 경동제약 등 중소 중견 제약사들이 자사주 스왑에 나선 가운데 그 배경에 주목된다. 상법 개정안 대응과 전략적 협업 외에도 비용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자리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보유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필요한 비용이 각 사의 연간 R&D 지출 규모에 근접한다.
자사주 소각을 단독으로 추진할 경우 한 해 R&D 계획이 흔들릴 수 있다보니 공동 대응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다른 중견 제약사들도 자사주를 소각하는 대신 혈맹, 즉 네트워크 형성과 협력의 도구로 활용하는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중견제약사 연간 R&D 비용 버금가는 소각 비용 통상 중견 및 중소 제약사의 R&D 투자 비중은 대형제약사나 일반적인 바이오텍 대비 낮은 편이다. 매출액 대비 비율이 10% 안팎에 불과하고 해마다 지출 변동폭도 크지 않다.
이번 자사주 스왑을 결정한 중견제약사 네 곳의 R&D 지출 규모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최근 3년간 추이를 살펴보면 연 평균 13%의 순증세를 보인 동국제약(248억원→314억원)을 제외하고 모두 큰 변동 없이 유지돼 왔다.
환인제약은 최근 3년간 200억원 초반, 진양제약은 20억원, 경동제약은 100억원 초중반을 유지했다. 이는 각 제약사들의 매출과 수익성 증가세가 제한적이라 R&D 비용을 급격히 늘리기도 어려웠다.
이번 스왑에서 나타난 자사주 처분 규모는 환인제약 154억원, 동국제약 70억원, 진양제약 37억원, 경동제약 47억원이다. 만일 스왑이 아니라 실제 소각에 나설 경우 각종 제비용이 발생하다보니 부담은 이보다 커질 수 있다.
단순 처분액만 놓고 봐도 일부 기업은 연간 R&D 지출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진양제약은 처분가액이 한해 R&D 비용을 넘어선다. 환인·동국·경동제약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각자 자사주 소각을 선택했다면 감내해야 할 금액이 한해 R&D 투자액에 근접한다.
환인제약 관계자는 "이번 각 제약사별 자사주 스왑은 환인제약의 ETC 부문 역량을 제고할 기회를 얻고 다른 제약사들도 각자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수 있는 협업을 전제하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다"고 말했다.
◇EB 발행도 규제 리스크로 녹록지 않다…스왑 확대 가능성 중견제약사들은 올해 통과된 상법개정에 따른 자사주 소각에 대응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더욱이 제약사들은 상법개정 이전까지 자사주를 적극적으로 보유하는 입장이었던만큼 소각을 결정할 경우 몇 해 동안의 R&D 전략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정도의 부담이 따른다.
그렇다고 자사주 스왑이 아닌 다른 대안을 선택하기도 녹록지 않다. 일부 기업은 당장 보유 유동성이 자사주 소각을 감당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이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교환사채(EB) 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제약업계 안에서는 이 작업 역시 매끄럽지 않았다. 광동제약은 올해 자사주를 기초자산으로 한 EB 발행을 추진했지만 처분 계획이 잘못 기재된 부분이 지적받으며 규제 리스크가 불거졌다. 금융당국으로부터 정정 명령을 받고 결국 발행을 철회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매출 순위 상위에 있는 제약사도 앞서 EB 발행 과정에서의 규제 리스크 풀어가지 못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EB가 중견 제약사 입장에서 안정적인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크다"고 말했다.
제약사 간 자사주 스왑을이 이번이 첫 사례가 아닌 점도 지켜볼 지점이다. 올해 하반기 삼진제약과 일성아이에스가 환인제약이 동국제약, 진양제약, 경동제약과 스왑을 단행한 것도 이와 같은 흐름 위에 있다.
더불어 상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자사주 소각 압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보니 중견사 간 유사한 형태의 연대 움직임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중견 제약사가 단독 소각보다 협업을 택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