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를 뽑을 수가 없어요."
사외이사를 하는 대학 교수와 식사 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대학 교수라 하면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인데 왜 교수를 뽑을 수 없나. 그는 반값 등록금 얘기를 했다.
10여년 전 반값 등록금 논란이 있었다. 2012년 당시 이명박 정부 시절 정치권에선 반값 등록금이 화두였다. 대한민국 사립대 평균 등록금이 768만원 선으로 미국 다음으로 비싸다고 했다. 대학 진학률은 80%에 육박하는 데 학생들의 부담이 너무 크다며 등록금을 낮추자는 주장이 나왔다. 감사원이 대학들에 대해 감사를 벌였고 교육부는 지원금으로 대학들을 압박했다. 시민단체들은 시위를 했고 학생들과 여론도 동조를 했다.
결론적으로 대학등록금이 반값으로 내려가진 않았다. 하지만 등록금 인상엔 제동이 걸렸다. 물가에 연동해 등록금을 조정하는 상한 제도가 시행됐는데 실제론 강제 동결 조치가 됐다. 등록금을 올린 대학엔 교육부 예산 배정이 되지 않았다. 10년 이상 대학은 등록금을 동결했다. 2023년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757만원이다. 참고로 국립대 평균은 420만원 수준으로 이 역시 10년 째 제자리 걸음이다.
한국 대학은 사립대 비중이 70%에 육박한다. 영미권에선 국공립대학 비중이 높고 국립대 학비는 매우 저렴하다. 국공립대 비중을 늘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립대 등록금만 동결하니 또 다른 나비 효과를 불러 왔다.
등록금에만 의존해야 하는 중견 대학들은 교수 월급을 올릴 재간이 없었다. 우수 인재들이 대학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10년전엔 연구원 월급보다 대학 교수 월급이 좋았는 데 역전된 지 오래다. 대학교수들은 사외이사로 전전하며 수입을 보전해야 했다.
해외에서 석박사를 한 우수한 인재들은 현지에 남길 원했다. 한국으로 들어와 교수가 돼 봤자 월급이 빤하다. 미국에서 일자리를 잡으면 최소한 몇배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중국으로 눈을 돌려도 된다. 반도체 관련 전공자이거나 유관 학과라면 억단위 연봉이 쉽다. 집값도 비싼 한국으로 들어와 강단에 설 필요가 없다.
우수 인재들이 교육 현장을 외면하니 교육 수준이 낮아졌다. 기업들이 대학 졸업생들을 신입사원으로 뽑질 않는 건 질 낮은 대학 교육도 한 몫하고 있다. 기업들은 바로 일을 시킬 수 있는 경력자만 찾는다.
문과생들은 태반이 로스쿨을 희망하고 이과생들은 의대만 지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로스쿨이나 의대 등록금은 천만원대다. 등록금이 높은 분야로만 학생들이 몰린다. 로스쿨이나 의대를 나와야 시장에서 먹힌다는 걸 모두가 안다.
대학 등록금과 교육 행정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가격'을 억지로 조정하고 정부가 시장에 잘못 개입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시중엔 유동성을 확대 공급하고 있다. 민생회복 소비 쿠폰을 배포하고 증시 부양을 강조하고 있다. 코스피가 오르면서 경제 심리가 좋아지고 유동성이 풀리니 물가가 오르고 자산가치가 오르고 있다.
한켠에선 대출을 제한하며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고 직접 시장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유동성으로 물가를 올렸는데 구두 개입으로 물가를 단속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물가가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오르니 엄중하게 관리하라"는 메시지까지 던졌다. 기업들에겐 투자를 늘리라고 하면서 한쪽에선 상법을 개정하고 법인세를 올리고 있다.
대학등록금 동결은 대학의 위기로 이어졌다. 기업과 시장에 대한 지나친 개입은 자칫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벌써부터 많은 기업들이 한국 대신 해외 공장 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