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램프 시장의 '선두 주자' 에스엘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던진 관세 폭탄에 수익성이 흔들리자 곳간을 닫았다. 꾸준히 늘리던 설비 투자를 줄이고 보수적인 재무 전략으로 선회한 모습이다. 불확실한 경영환경이 길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위기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현금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에스엘은 올 2분기 수익성 악화에 시달렸다. 매출은 전년 동기(1조2984억원)와 비슷한 1조2947억원을 거둔 데 반해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28% 줄어든 1059억원으로 집계됐다. 미국 관세 부담이 본격화하면서 비용이 늘어난 동시에 신규 수주도 줄어들어 수익 구조가 흔들렸다는 평가다.
에스엘의 대응 속도는 빨랐다. 떨어진 현금창출력에 곧바로 곳간을 닫고 현금 확보에 경영 초점을 맞췄다. 보수적인 재무 전략으로 선회하면서 순차입금 마이너스(-) 상태인 실질적 무차입 기조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 모습이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도 대응력이 높은 기업으로 평가받는 배경이다.
보수적인 재무 전략은 현금흐름에 뚜렷하게 나타났다. 에스엘의 올 상반기 누적 총영업활동현금흐름(OCF)은 2059억원으로 집계되면서 전년 동기(2306억원) 대비 줄었다. 하지만 운전자본투자 규모를 346억원 줄여 순영업활동현금흐름(NCF)이 전년 동기(1923억원) 대비 늘어난 2405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에스엘은 올 상반기 자본적지출(CAPEX)을 줄여 여윳돈을 확보했다. 올 상반기 에스엘의 잉여현금흐름(FCF)은 123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736억원) 대비 큰 폭으로 늘어난 액수다. 같은 기간 CAPEX를 154억원 줄인 619억원을 집행한 영향이다. 현금 유출을 최소화한 재무 전략을 꾀한 모습이다.
여윳돈은 현금성자산으로 흘러갔다. 올 상반기 에스엘의 현긍성자산은 3149억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이후 처음으로 3000억원을 돌파해 창사 이래 가장 많은 현금을 확보했다. 부진한 실적에도 효율적인 경영에 초점을 맞춰 유동성 확보에 청신호가 들어왔다는 평가다.
든든한 현금은 에스엘의 무차입 경영에 힘을 실었다. 올 상반기 에스엘의 총차입금은 8억원에 불과하다. 이에 현금성자산에서 총차입금을 제외한 순차입금은 마이너스(-) 3149억원으로 집계됐다.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도 각각 31.6%, 0%에 불과했다. 통상적으로 부채비율은 100% 이하, 차입금의존도는 30% 이하를 안정적으로 평가한다.
에스엘은 올 하반기도 투자 대신 내실 경영에 힘을 쏟는다. 미국 현지 생산 확대를 지속해 미국 관세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구상이다. 실제 에스엘은 올 2분기 미국 앨라배마·테네시 헤드램프 공장 가동률은 86%를 달성했다. 이는 지난해 2분기(80.1%)보다 5.9%p 증가한 수치다.
아울러 지난해 7월 600억원 이상을 투자해 구축한 멕시코 공장을 핵심 거점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해당 공장은 연간 최대 100만개의 헤드램프 모듈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 생산된 부품은 북미 시장으로 조달한다. 북미 시장은 올 상반기 기준 에스엘 전체 매출의 32%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부품업계 관계자는 "에스엘은 무차입 경영을 오랜 기간 이어온 탓에 경쟁사보다 이자 부담이 덜하다"며 "특히 지난해까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현지 생산 시설을 확보한 점도 보수적인 재무 전략을 꾀할 수 있는 배경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