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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총회는 기업의 방향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숫자와 문서로 정리된 안건 뒤에는 주주들의 기대와 우려, 경영진의 고민과 결단이 담겨 있다. 하지만 책상 위 자료만으로는 이 모든 흐름을 온전히 읽어낼 수 없다. 주총장에서 오간 논쟁과 질의응답, 미묘한 온도 차 속에서 기업과 주주 간의 관계가 드러난다. 더벨은 주총 현장에서 직접 포착한 주요 이슈와 기업의 전략적 변화를 분석한다.
DB손해보험이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추천한 사외이사(감사위원) 2인 중 1인인 민수아 전 삼성액티브자산운용 대표를 선임했다. 국내 보험사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통해 주주제안 이사 후보자가 선임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부거래위원회 재설치 정관 변경은 출석주주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특별결의 요건을 넘지 못했다. 부결됐지만 출석 의결권 61% 이상의 찬성표를 얻으면서 DB손보의 내부거래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표 대결 거친 주주제안 이사 후보자 선임 첫 사례 DB손보는 20일 열린 제59기 정기 주총에서 이현승 LHS자산운용 회장과 민 전 대표를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3% 룰이 적용된 가운데 이 회장은 2864만5172표, 민 전 대표는 2045만4954표를 얻었다.
이 회장과 민 전 대표는 각각 DB손보와 얼라인이 추천한 후보자들이다. 앞서 얼라인은 대주주 견제가 가능한 독립적인 감사위원을 뽑아야 한다며 민 전 대표와 최흥범 전 삼정KPMG 파트너를 DB손보의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DB손보는 주주제안으로 오른 후보가 보험·금융의 회계·재무·리스크관리, 자본배분, ESG 등 여러 부문에서 전문성이 부족하다며 김소희 전 AIG손해보험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이 회장을 추천했다. 주주 입장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독립성을 갖고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DB손보 측은 주주서한 등을 통해 얼라인에서 추천한 후보자에 반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국 감사위원 한자리를 내주게 됐다. ISS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와 국민연금 등이 얼라인이 추천한 민 전 대표 선임에 힘을 실으면서 외국인 투자자 및 일반주주의 표심이 향한 것으로 보인다.
얼라인은 민 전 대표가 이사회 일원으로 기관투자자의 관점에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건설적 의견을 개진하고 실질적인 감시·견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 민 전 대표의 사외이사 선임은 국내 보험사 주총에서 주주제안 이사 후보자가 표 대결을 거쳐 선임된 첫 사례다.
◇내부거래위 관련 안건 특별결의 요건 못 넘어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제외하면 모든 안건에 DB손보의 입장이 반영됐다. 사외이사 선임 안건과 함께 주목받은 내부거래위원회 재설치에 관한 정관 변경 안건 역시 부결됐다.
해당 안건은 출석 주주 의결권 중 61.3%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정관 변경에 필요한 특별결의 요건을 넘지 못했다. 특별결의는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얼라인이 제안한 내부거래위 설치 안건에 국민연금도 찬성하며 가결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출석 주주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는 점에서 내부거래 문제에 대한 주주들의 공감대가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DB손보는 지난달 27일 이사회를 통해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내부거래위원회를 자체적으로 재설치했고 관련 법규에 저촉되지 않는 한 위원회의 임의 폐지를 검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