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는 말 그대로 기업이 시장에서 되사들인 자기 회사 주식이다. 단어 풀이는 간단하지만 그 활용법은 복합적이다. 기업 오너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쓸 수도 있고 시장 유통주식수를 줄여 주가를 높이는 주주가치 제고 도구로도 쓰인다.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과 주식을 교환해 지분 혈맹을 맺거나 자회사를 인수하는 데도 자사주를 사용한다. '자사주의 마법'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배경이다.
하지만 금융지주가 자사주를 활용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금융사는 보통주자본비율(CET1)에 영향을 주는 자사주를 마음껏 쌓을 수도 소각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금융지주에게 자사주가 무용지물인 건 아니다. M&A과정에서 자사주를 활용했고 최근에는 밸류업 용도로 이를 적극 취득·소각 중이다.
◇주인 있는 회사와 다른 금융지주 상황 자사주 취득에 있어 상법을 적용받는 건 산업과 금융지주 모두 동일하다. 배당가능이익 범위 안에서만 살 수 있고 취득한 자사주엔 의결권이 없다.
결정적 차이는 건전성 규제에 있다. 금융사에는 자본비율 규제가 있다. 자사주는 회계상 자본차감 항목이다. 취득하는 순간 자본비율이 내려간다. 0.01%, 즉 bp 단위로 자본비율을 관리하는 금융사에 있어 몇천억 규모 자사주 취득과 소각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KB금융이 2016년 자사주를 취득했던 게 금융지주 사상 처음 자사주 매입이라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업계 최초 자사주 소각 역시 2019년에야 이뤄졌다. 마찬가지로 KB금융이 시작했다. 당시 KB금융은 BIS 비율 15%, CET1 14%를 상회하면서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가 부양 전략을 실행할 여력이 생겼다.
오너 중심 기업과의 지배구조 차이도 금융사의 자사주 전략 시작 시점을 늦춘 이유 중 하나다.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하면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들고 지분율을 간접적으로 높일 수 있다. 또 사업적 결단이 필요할 땐 우호 세력에 자사주를 넘겨 경영권 동맹을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2024년 자본시장법이 개정돼 상장사 인적분할 시 자사주 신주배정이 금지되기 전까지는 자사주 마법이 더 큰 효과를 발휘했었다. 자사주를 보유 중인 자회사가 인적분할을 통해 신설법인을 만들면 해당 신설법인에 대한 지배주주의 지배력이 담보된다. 추가 출연 없이 지배력을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기업의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이 방식이 종종 채택됐었다. 이미 지주사 체제를 구축해 놓은 소유분산 기업인 금융지주에게는 이 마법을 쓸 유인이 크지 않았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밸류업 주요 지표된 자사주…더 복잡해지는 셈법 이제는 금융지주에게도 자사주 전략을 펼칠 이유가 생겼다. 저평가 주식에 대한 밸류업이 본격화되면서 시장이 금융지주의 성장과 동시에 주가부양을 요구하고 있다. 종합 금융지주로서의 진용 구축 그리고 적극적 주주환원을 통한 투자 매력 제고 등이 금융지주 밸류업의 핵심이다.
4대 금융지주 CET1 비율이 13% 안정적으로 유지하거나 달성을 목전에 두면서 주주환원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 합산 주주환원 총액은 9조원을 넘어섰다. 그 중심에는 자사주 매입·소각이 있다. KB금융은 지난해 자사주 1조4800억원 어치를 취득했고 1조2000억원 상당을 소각했다. 같은 기간 신한금융은 9000억원, 하나금융은 5500억, 우리금융은 1500억원을 소각했다.
금융지주가 자회사를 인수하거나 지분을 늘릴 때 M&A 실탄으로도 활용된 사례도 있다. 자사주 취득 시점에 자본차감으로 처리됐던 항목이 교환 순간 해소되면서 자본 감소가 사라진다. 교환가액이 자사주 장부가액을 웃돌면 차익이 발생해 자본이 추가로 늘기도 한다. 현금 유출을 최소화하면서 자본비율 하락 부담도 줄이는 구조다.
앞으로 자사주를 전략을 두고 금융지주의 고민은 더욱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상법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기업은 신규 취득 자사주를 취득일로부터 1년 이내 소각해야 한다. 기존 보유 자사주도 시행일로부터 6개월 유예 후 1년 이내 소각하거나 주주총회에서 승인받은 보유·처분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금융지주도 예외는 아니다.
예비용으로 자사주를 쌓아두고 활용 방법을 장고할 수 없는 시점이다. 자본비율을 어떻게 관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사주를 얼마나 취득해 언제 소각할지가 밸류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금융지주의 숙제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