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상장지수펀드(ETF) 판매를 크게 늘리고 있다. 예대마진 중심 수익 모델이 벽에 부딪히자 은행들이 창구 전면에 투자상품을 내세우고 있다. 증권사로 자금이 이동하는 머니무브도 분명한 영향을 미쳤다.
수치로도 흐름이 뚜렷하다. 주요 5개 은행의 반기 ETF 납입액은 지난해 하반기 15조원을 넘어섰다. 직전 반기 대비 3배 넘게 뛴 규모다. 증시 호조와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판매 중단이 맞물리면서 예금에 머물던 자금까지 빠르게 이동하는 모양새다.
◇ 예금 대신 투자로…수탁고 696조 기록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5년 신탁업 영업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 신탁 수탁고는 696조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말 648조1000억원에서 7.4% 증가한 규모다. 신탁업 전체 수탁고 1516조5000억원 중 은행이 45.9%를 차지해 업권별 1위를 지켰다.
ETF 판매 실적은 한층 가파르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iM뱅크 등 다섯개 은행의 특정금전신탁 ETF 납입액은 지난해 하반기 15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는 4조9000억원에 그쳤다. 올해 1~2월 두 달간 집계된 납입액은 15조1000억원에 달한다.
덩달아 은행 수익도 올랐다. 은행권 신탁보수는 2024년 1조209억원에서 2025년 1조2182억원으로 19.3% 증가했다. 전체 신탁업계 보수 증가율이 1.4%에 머문 점을 감안하면 은행권의 성장은 눈에 띄는 수준이다.
물론 수익 확대 배경에 ETF 판매 증가만 있는 건 아니다. 금감원은 은행 금전신탁 보수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퇴직연금 보수 확대를 꼽았다. 은행 금전신탁 내 퇴직연금은 2025년 말 257조6000억원으로 12.2% 늘었다. 주가연계신탁(ELT)도 13조원에서 16조8000억원으로 29.2% 증가했다.
신탁 보수 증가는 퇴직연금에 더해 2024년 홍콩H지수 ELS 판매 중단에 따른 기저효과,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판매 확대가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결국 은행 신탁이 투자상품 판매 채널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음이 확인된다.
◇ 증권사 추격 나선 은행…판매 확대에 속도 은행이 ETF 판매에 드라이브를 거는 배경에는 머니무브 압박이 깔려 있다. 고객은 수익률이 높은 증시로 이동하고 은행은 예대마진만으로 실적을 끌어올리기 어려워졌다. 수수료 기반 비이자이익 확대가 은행권 공통 과제로 떠오르면서 자산관리가 가장 빠른 수익원으로 부상했다.
ETF는 이 전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ETF 투자 수요가 먼저 증권업계로 향하자 은행이 뒤늦게 추격에 나선 모양새다. 증시 변동성이 큰 현시점에 맞춰 채널을 확장하면서 수익성을 챙길 수 있다. 주요 시중은행이 PB 조직 확대와 디지털 플랫폼 강화에 공을 들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은행의 ETF 판매 증가와 함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고위험 상품 쏠림도 가파르다는 의견이 나온다. 주요 5개 은행 기준 ETF 내 1등급(고위험) 판매 비중은 2025년 상반기 37.5%에서 하반기 49.7%까지 치솟았다.
이에 금감원은 최근 주요 은행 부행장을 소집해 상품 선정과 고객별 한도 관리, 대고객 안내를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2024년 홍콩 ELS 원금손실 사태의 재발을 경계한 사전 조치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