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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AX 로드맵 점검

막혔던 전산망 빗장 풀린다…AI 체질개선 길 열려

①당국 단계적 규제 완화, 은행은 자체 개발부터 인수까지 '속도'

노윤주 기자  2026-06-02 07:46:31

편집자주

AI가 금융 경쟁의 판을 바꾸고 있다. 그간 규제에 묶여 더디던 은행들이 물꼬가 트이자 앞다퉈 AI 전환(AX)에 올라탔다. 어느 곳은 업무 전반에 AI 에이전트를 심고, 어느 곳은 기술 기업을 인수하기에 나섰다. 활용 영역도 상담·사무를 넘어 대출 심사처럼 중요한 판단이 필요한 영역까지 넓어지고 있다. 빨라진 속도의 뒤에는 위험관리와 책임이라는 과제가 따라붙는다. 제도 변화부터 은행별 전략까지, AI가 다시 그리는 금융 지형과 그 선택이 경쟁력·건전성에 미칠 영향을 짚어본다.
인공지능 전환(AX)은 모든 산업의 화두다.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기도 하다. 금융권에서도 마찬가지다. AI 관련 조직을 신설하고 실제 업무에 AI를 도입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금융권의 AI 도입 속도는 전 산업을 통틀어 느린 편에 속한다. 그간 강한 망분리, 전산 보안 규제 때문에 외부 AI를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AI 활용에 필수라고 여겨지는 클라우드에도 데이터를 얹기 힘들었다. 다행히 금융사의 AI전환을 위해 정책이 일부 완화되면서 은행은 업무용 소프트웨어부터 보안 솔루션까지 AI 도입의 길을 트는 중이다.

◇허물기 시작한 망분리 장벽

가장 큰 변화는 '망분리 완화'다. 망분리는 말 그대로 내부 정보처리시스템과 인터넷망(외부망)의 연결을 끊어 따로 쓰게 하는 방식이다. 은행은 고객의 돈과 정보 등 민감한 것들을 다루고 있는 만큼 외부 인터넷을 타고 들어오는 공격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망분리 규제가 도입됐다.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좋은 방식이지만 AI와는 태생적 본질이 부딪힌다. AI, 특히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는 외부 서버와 끊임없이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작동한다. 망을 끊어두면 최신 AI를 업무에 끌어다 쓸 방법이 없다. 망분리가 AI 전환의 첫 걸림돌로 꼽힌 이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국은 이 벽을 한 번에 허물지 않고 단계적으로 깎아내고 있다. 올해 4월부터 클라우드 기반 응용소프트웨어(SaaS)를 망분리 예외로 명시한 전자금융감독규정 시행세칙 개정을 시행했다.

이에 금융사는 별도 심사 없이도 문서작성, 화상회의, 성과관리 도구를 클라우드에서 쓸 수 있게 됐다. 단 보안 규제를 한 번에 완화하기 힘든 사업인 만큼 고유식별정보나 개인신용정보를 처리하면 예외를 적용받을 수 없다. 또 가명정보는 여전히 지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럼에도 규제 완화에는 속도가 붙고 있어 긍정적이다. 생성형 AI 모델을 바꿀 때 거치던 혁신금융서비스 변경 절차가 간소화됐다. 단순 변경은 재지정 없이 서면확인만으로 즉시 출시할 수 있다. 지금까지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생성형 AI는 169건, 출시된 서비스는 45개 수준이다.

지난달에는 한 발 더 나갔다. 보안 목적의 AI 활용에 망분리를 긴급 완화하기로 했다. AI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이를 대응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역시나 조건을 수반한다. 총자산 10조원 이상, 상시종업원수 1000명 이상으로 전담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를 둔 49개 금융회사만 1년간 한시적으로 규제 완화를 적용받는다.

◇전방위 업무 투입되는 AI…보안·거버넌스 책임↑

규제가 풀리면서 은행은 AI 도입 속도를 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토대는 이미 갖춰져 있다. 규제에 묶여 있으면서도 은행의 AI 활용 규모는 업권에서 가장 컸다. 당국이 지난해 4월 조사한 결과 은행 20개사는 준비 중인 서비스를 포함해 299개의 AI 서비스를 운영했다. 전 금융권 가운데 은행의 서비스 숫자가 절반에 가까웠다.

주요 지주와 은행은 저마다 색깔을 달리하며 도입에 나섰다. KB금융은 최근 AI혁신연구센터를 세우고 연내 59개 업무영역에 300여개의 AI 에이전트를 도입하기로 했다. 고객의 자산 흐름을 분석해 상품을 먼저 제안하는 '에이전틱 뱅킹'이 목표다.

신한은행은 여러 AI 에이전트가 팀을 이뤄 시스템을 개발하는 'AI 개발팀' 체계를 은행권 처음으로 들였다. 하나은행은 기업 신용평가 심사의견을 자동 생성하는 시스템을 전 영업점에 도입해 작성 시간을 30분에서 10초로 줄였다.

우리은행은 삼성SDS와 손잡고 기업여신·자산관리·내부통제 등 5대 영역에 AI 에이전트를 까는 전사 사업을 추진 중이다. 농협은행은 AI 기업 애자일소다를 인수하며 기술 내재화를 준비 중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적용 범위다. 그동안 상담·영업 보조에 머물던 AI가 여신 심사와 내부통제, 회계처럼 정확성과 책임이 무겁게 걸린 핵심 업무로 파고들고 있다. 신한금융은 신한은행·신한카드 등 계열사 12곳의 내부회계관리제도에까지 AI를 입히는 작업에 착수했다. 단순 효율화를 넘어선 흐름이다.

문제는 AI가 깊이 들어올수록 책임도 무거워진다는 점이다. 대출심사 등 영역에서 AI가 잘못된 결론을 내면 곧바로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 활용 범위가 핵심 업무로 넓어진 만큼 통제 장치가 짊어질 무게도 함께 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AI를 사용하는 업무 영역이 늘어나는 만큼 기술, 보안 임원의 역할도 더욱 커질 것"이라며 "AI 거버넌스 체계에 대한 요구도 증가할 것으로 관측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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