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여신금융협회에서 열린 제14대 이동철 신임 여신금융협회장의 취임식은 10여분 만에 끝났다. 이날 오전 서면으로 진행된 임시총회에서 선임 안건이 과반 찬성으로 가결되자마자 집무에 들어갔다. 이 회장이 속도감 있게 업무를 추진하는 스타일로 정평이 난 만큼 "취임식도 이동철 답다"는 평가도 나왔다.
통상 진행되는 훈시도 생략하고 신속하게 진행됐지만 메시지는 가볍지 않았다. 171개 카드사와 캐피탈사, 신기술금융 회원사를 향해 던진 3년 동안의 로드맵과 협회 내부 직원을 향한 당부까지 압축적으로 이어졌다. 취임 일성으로는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 극복과 체질 개선을 전면에 내걸었다. 지난 2019년 김주현 전 회장이 선임된 이후 7년 동안 이어져 온 관료 출신 강세 기조를 깨고 등판한 민간 출신 수장인 만큼 취임식부터 실리와 속도전에 맞춰진 모양새다.
◇친정에는 스테이블코인 지원 약속, 캐피탈·신기사엔 규제 완화 공언 이 회장이 가장 먼저 강조한 건 여전업권 경쟁력 강화다. 조달 금리 급등과 결제 마진 악화로 고전 중인 여전업권의 생존력을 키우기 위해 정부의 생산적 금융 및 포용금융 기조 내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해야 한다는 논리다.
KB국민카드 대표 출신이기도 한 이 회장은 친정이었던 카드업권을 향해 신사업 영토 확장을 주문했다. 이 회장은 "카드사의 스테이블코인 활용을 제도적으로 지원해 인프라 혁신을 선도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결제회사라는 전통적 정체성을 넘어 데이터와 AI를 기반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금융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당부다.
캐피탈업권에 대해서는 실효성 있는 영업 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본업 확대를 가로막던 렌탈한도 규제의 합리적 완화와 다양한 혁신금융서비스 도입을 약속했다.
아울러 신기술금융업권을 향해서는 모험자본 공급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입법 스케줄까지 제시했다. 이 회장은 "국가 성장에 기여 중인 신기술금융업의 대형화와 투자역량 제고를 위해 신기술조합의 투자목적회사 설립 및 글로벌펀드 결성 운용을 금융당국에 건의하고 국회 입법을 직접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직 내부를 향한 당부도 있었다. 이 회장은 협회 임직원들에게 "회원사를 지원하기 위해 협회 스스로가 AI 활용 능력을 제고하는 등 디지털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15년 수수료 인하에 카드업계 마진 압박…실전형 리더십 대관 능력 시험대 금융시장이 이 회장에게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여신금융협회는 카드부터 캐피탈, 신기술금융 등 영위하는 업종의 성격이 판이해 내부 이해관계를 조정하기가 까다로운 조직으로 통한다. 그동안 업계가 당국 소통의 수월함을 이유로 관료 출신을 선호해 왔음에도 정작 알맹이 있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았던 이유다.
특히 카드업권은 고심이 크다. 지난 2007년 이후 가맹점 수수료가 15년 연속 인하되는 동안 빅테크 및 페이 사업자들이 결제 시장에서 카드사를 위협하며 본업 수익성이 악화했다. 카드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냉정히 말해 관 출신 협회장이 당국과 소통한다고 해도 수수료 체계 자체를 바꾸기 쉽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라며 "과거처럼 관 출신 회장에게 의존해 규제 완화를 기대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이처럼 여신협 리더십 부재가 지적될 때 등판한 인물이 이 회장이다. 이 회장은 1961년생으로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툴레인대 로스쿨(LLM)에서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KB금융지주 전략기획부 상무를 시작으로 KB생명보험 부사장, 금융지주 전략총괄부사장(CSO)을 거쳐 KB국민카드 대표이사를 역임한 뒤 지주 부회장으로서 글로벌·보험 및 디지털·IT부문장을 지낸 베테랑이다. 전략과 실무, 디지털 트렌드를 모두 거쳤다.
7년 만에 도래한 민간 출신 수장이 관료 출신의 정무적 문법을 뛰어넘는 실전형 리더십으로 여전업계의 오래된 규제를 걷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여전업뿐 아니라 타 산업과의 협업을 이해하는 지주 전략통 출신인 만큼 스테이블코인 등 신사업 발굴과 빅테크 진영과의 영리한 제휴를 통해 업계의 생존 방식을 모색해줄것이란 기대가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