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국내 자본시장에 사모투자펀드(Private Equity)가 등장한 건 2004년 말이다.정부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국내 금융시장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토종 사모펀드 육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듬해인 2005년 국내외로부터 자금을 모은 토종 사모펀드가 설립됐다. 이름은 '보고인베스트먼트그룹(이하 보고펀드)'. 9세기 동아시아 바다를 주름잡은 해상왕 '장보고'에서 따왔다. 장보고처럼 외국계 사모펀드와 경쟁을 통해 외국계 펀드를 평정하겠다는 청사진을 가지고 출범했다.
보고펀드는 재경부 금융정보분석원장을 지낸 변양호 변호사와 이재우 리먼브라더스 한국대표가 각자 대표를 맡으며 문을 열었다. 변 대표는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한 뒤 1997년부터 재정경제원 국제금융과장, 국제금융담당관 등을 맡아 외채 협상을 진두지휘했고 2001년부터 2004년까지 3년간 금융정책국장을 맡으며 기업구조조정과 카드사태 해결을 이끌었다. 이 대표는 성균관대 경영학과와 조지워싱턴대 경영학석사(MBA)를 졸업하고 씨티은행 부대표와 나라종합금융 상무, 리먼브라더스 한국 대표 등을 거친 금융 전문가다.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
이후 신재하 모건스탠리 한국 기업금융부문 대표가 참여하면서 파트너십 체제를 구축했다. 신 대표는 김·장 법률사무소(김앤장)에서 일했던 법률 전문가로 M&A업계에서 경력을 쌓았다. 조흥은행 매각 관련 업무에 참여하면서 변 대표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에는 김앤장 출신의 박병무 전 하나로텔레콤 사장이 공동대표로 합류하며 4인 체제가 만들어졌다. 박 대표는 김앤장 입사 전 로커스홀딩스와 미국계 사모펀드인 뉴브리지캐피탈코리아, 하나로텔레콤 대표 등을 역임해 법무와 기업금융, M&A, 기업 경영 등 PEF 운영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보고펀드는 출범 초기부터 바이아웃 투자에 집중하는 대표적인 국내 PEF운용사로 주목을 받았다. 바이아웃 투자란 PEF운용사가 회사의 경영권을 직접 인수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후 나중에 높은 값에 되파는 방식을 말한다. 보고펀드는 설립과 동시에 은행, 보험사 등 국내 금융권에서 5000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끌어 모으며 1호 펀드를 결성했다. 1호 펀드에는 동양생명, 노비타, 아이리버, LG실트론, BC카드 등이 담겼다.
노비타는 보고펀드의 설립 이래 사상 첫 투자 회수 사례다. 펀드는 2006년 소형 가전제품과 생활용품 제조사인 노비타의 지분 33%를 인수했고 2009년 비데 사업 부문만을 분리해 지분 100%를 사들였다. 보고펀드는 총 400억원을 투자해 사들인 노비타의 경영권 100%를 2011년 글로벌 욕실용품 제조사인 콜러(Kohler)에 약 900억원에 매각하며 원금의 두 배가 넘는 수익을 남겼다.
BC카드도 성공적인 투자 회수 사례로 기록됐다. 펀드는 2009년 1500억원을 투자해 BC카드의 지분 30.7%를 사들여 최대주주에 올랐다. 3년 뒤인 2012년 BC카드의 경영권을 KT캐피탈에 약 3000억원에 되파는데 성공하며 2배 이상의 수익률을 올렸다.
잘나가던 보고펀드의 발목을 잡은 건 LG실트론 투자였다. 보고펀드는 2007년 LG실트론 지분 투자를 단행한다. 태양광 사업을 주력으로 하던 LG실트론은 태양광 모듈과 웨이퍼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연간 영업이익이 1000억원에 이르렀다. 신재생 에너지 산업이 각광받으며 기업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보고펀드는 2007년 KTB PE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LG실트론 지분 49%를 인수했다. 인수 지분 가운데 60%는 보고펀드의 1호 펀드가, 나머지 40%는 KTB PE가 가져가는 구조였다.
보고펀드는 LG실트론 지분 인수 과정에서 총 4246억원을 투입했다. 보고1호 펀드에서 1702억원이 들어갔고, 별도의 기관투자자(공모투자약정기구)인 KGF를 통해 400억원, 홍콩계 사모펀드인 헤드랜드가 374억원을 각각 투입했다. 나머지 자금 1800억원은 인수금융으로 조달했다.
그러나 투자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태양광 사업이 크게 위축되면서 LG실트론의 경영 상황도 급속도로 악화했다. 당초 기업공개(IPO)를 기대했으나 실적 악화로 IPO 시점을 잡기도 어려워졌다. 투자금의 40% 이상을 인수금융으로 조달한 것도 화근이었다. 대출만기가 도래한 2010년, 보고펀드는 이자와 원금 상환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인수금융단은 보고펀드에 만기를 3년 더 연장해줬지만 3년 뒤인 2013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에 1년을 더 연장해줬으나 보고펀드가 차입금을 상환하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보고펀드가 갚아야 할 금액은 1800억원에서 한도대출(RCF), 연체이자 등을 합쳐 2650억원 규모로 늘어났다.
결국 2014년 7월 LG실트론 인수금융 채권단은 인수금융에 대해 기한이익상실(EOD) LG실트론은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인수금융 디폴트(채무불이행)' 사례가 됐다. 보고펀드는 LG실트론 지분 29.4%의 처분 권한을 채권단에 넘겼다. 1호 펀드에서 조달한 1700억원가량의 투자금도 회수할 수 없게 됐다.
2014년 출범 약 10년 만에 보고펀드는 대대적인 구조개편을 단행한다. LG실트론으로 내상을 입은 보고펀드의 입지는 예전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1호 펀드는 출자약정액 규모가 5000억원에 이르렀지만 보고펀드의 입지가 축소되면서 2호펀드는 3700억원을 조성하는 데 그쳤다. 설립을 주도한 변양호 대표는 투자 실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듬해인 2015년 보고펀드는 2개의 법인으로 나눠진다. 문제가 된 1호 펀드의 투자금 회수와 부동산, 해지펀드 업무 등을 맡는 '보고인베스트먼트'와 새로운 바이아웃 펀드 2호를 운용하는 '보고인베스트먼트그룹'으로 분리됐다. 보고인베스트먼트그룹은 이후 'VIG파트너스'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됐다. 이후 보고인베스트먼트 또한 보고펀드자산운용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박병무 VIG파트너스 대표.
변 대표와 함께 보고펀드를 설립한 이재우 공동대표는 보고인베스트먼트를 이끌고 VIG파트너스는 박병무·신재하 공동대표 체제를 거쳐 2018년 설립 초기부터 참여했던 이철민·안성욱 대표가 추가 선임되고 2019년 신창훈 부대표가 파트너로 참여하며 5인 경영체제로 전환됐다. 이후 2020년 안성욱 대표가 아크앤파트너스를 설립하면서 박병무·신재하·이철민 대표·신창훈 부대표 4인의 파트너 체제가 구축됐다.
이철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 듀크대학교 MBA과정을 졸업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경력을 쌓았다. 안성욱 대표는 고려대학교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모건스탠리와 크래디트스위스 기업금융부문에 몸담았다. 신 부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기업 IT 솔루션 업체인 시너넷을 창업해 기업 실무를 직접 경험했다. 이후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기업 경영 및 M&A 자문을 맡았다.
새롭게 탄생한 VIG파트너스는 투자전략을 개편한다. 1호 펀드에 담았던 포트폴리오 기업들은 LG실트론을 포함해 BC카드, 동양생명, 아이리버 등 회사 규모가 큰 제조업체나 유명 금융회사들이었다. 하지만 2호 펀드부터는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국내 소비재, 유통, 라이프스타일, 헬스케어를 전략사업으로 삼고 집중하기로 한다. 이 같은 전략이 담긴 대표적인 딜이 버거킹이다. 버거킹은 보고펀드 시절 막바지인 2012년, 2호 펀드에서 투자했다.
두산그룹은 당시 계열사인 SRS코리아를 인수하지 않겠느냐고 보고펀드에 제안한다. SRS코리아는 버거킹과 함께 치킨 프랜차이즈인 KFC를 운영하고 있었다. 보고펀드는 두산그룹과의 협의를 통해 SRS코리아에서 버거킹만 분리해 인수했다.
보고펀드는 버거킹 인수 이수 경영진 교체와 동시에 체질개선에 나섰다. 문영주 대표와 전진욱 개발부문장 수석부사장을 영입했다. 문 대표는 베니건스와 미스터피자의 경영을 맡았고 전진욱 수석부사장은 맥도널드 상무와 블랙스미스 대표를 역임한 외식업계 전문가다.
또 직영으로만 운영하던 방식을 바꿔 가맹점 모집을 통해 매장 수를 늘리는 데 주력했다. 드라이브스루 매장을 확대하고 24시간 운영하는 매장 수도 늘렸다. 배달 수요 확대에 발맞춰 딜리버리 서비스도 도입했다. 광고모델도 배우 이정재씨로 교체해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고 소비자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배우 이정재씨가 맡은 버거킹 광고. 출처=버거킹.
각고의 노력 끝에 투자 4년 만인 2016년 VIG파트너스는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게 버거킹을 매각한다. 어피니티의 버거킹 지분 100% 인수 금액은 2100억원이다. 두산그룹으로부터 1100억원에 버거킹을 인수한 VIG파트너스는 인수금융 원리금을 제외하고 1900억원 정도를 회수했다. VIG파트너스는 지난 2014년과 2015년에 투자자에게 270억원을 배당하기도 했다. 결국 VIG파트너스의 버거킹 투자 내부수익률(IRR)은 30%, 투자회수배수(MoM)는 2.3배로 최종 확정됐다.
버거킹을 비롯해 2호 펀드에 담긴 기업들은 평균 30%가 훌쩍 넘는 IRR을 기록했다. 삼양옵틱스 41%, 하이파킹 39%, 버거킹코리아 30%, 서머스플랫폼 23% 등이다. 이 같은 2호 펀드의 성공은 향후 조성하는 3호와 4호 블라인드펀드 결성에 든든한 기반이 됐다.
2023년 9월 VIG파트너스는 기존 4인 파트너 체제에서 5인 파트너 체제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2020년 4인 파트너 체제로 전환한 후 4년 만이다. 보고펀드 시절부터 VIG파트너스까지 이끌어왔던 박병무 대표는 2024년 1월 1일부로 대표직을 인계하면서 비상근 고문 및 시니어 투자심의위원으로 물러났다. 보고펀드의 창립 파트너였던 신재하 대표도 대표직에서 물러나 시니어 파트너 역할을 맡기로 했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일선에서 물러난 1960년대생 박병무·신재하 대표의 뒤를 이은 건 1970~80년대생들이었다. 1970년대생인 이철민 대표와 신창훈 대표는 VIG파트너스의 투자 및 포트폴리오 관리, 펀드레이징 등을 총괄하는 상근 대표 역할을 맡았다. 또 1980년대생인 정연박, 한영기, 한영환 전무가 파트너 부대표로 승진하면서 5인 체제가 구축됐다. 한영환 부대표는 기존에 맡은 역할을 이어서 VIG얼터너티브크레딧(VAC) 부문만을 담당한다.
정연박 부대표는 김앤장에서 M&A 자문 변호사로서 일하며 VIG파트너스와 10여년간 손발을 맞춰왔다. 한영기 부대표는 보고펀드 시절 주니어로 합류해 10여년간 회사의 역사와 함께한 프랜차이즈 스타다.
VIG파트너스는 투자영역 확대도 이어갔다. 크레딧부문 신설이 대표적이다. VIG파트너스는 2021년 5월 VIG얼터너티브크레딧(VAC)을 신설했다. 당시 전무로 영입된 한영환 부대표는 크레딧부문을 신설에 따라 이를 전담할 핵심 인력으로 영입됐다. 한 부대표는 2012년부터 골드만삭스 아시안스페셜시추에이션스그룹(Asian Special Situations Group, ASSG)에서 한국 투자를 담당했다.
그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후 골드만삭스 ASSG에서 카버코리아 소수지분 투자, 쿠팡 물류센터 담보대출, 일산 아파트 담보 NPL 등 다양한 자산군과 산업에 걸친 스페셜시추에이션 투자를 주도해 왔다. MBA 이전인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약 3년간 VIG에서 주니어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기존 멤버의 재영입이라는 의미도 있다.
*한영환 VIG파트너스 부대표.
VIG파트너스는 한 부대표 영입을 계기로 스페셜시추에이션을 포함한 크레딧(사모대출) 전략으로의 진출을 본격화했다. 지난 10월 개정된 자본시장법 시행에 맞춰 크레딧펀드의 펀딩도 마쳤다. 첫 크레딧펀드는 12월 3600억원 규모로 조성됐다. 펀드의 유한책임사원(LP)은 해외 기관투자자들로 구성됐다. 출자 약정금액은 1억5000만 달러(약 1800억원)로 약정 금액의 소진이 완료되면 동일한 금액으로 추가 출자할 수 있는 조건이 포함됐다.
VIG얼터너티브크레딧은 설립 직후인 2021년 말 3억 달러 규모의 블라인드 펀드를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해외 국부 펀드가 앵커 출자자로 나서면서 거둔 성과였다.
VAC 1호 펀드는 부동산을 대상으로 한 크레딧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부동산에만 투자 대상을 국한하지 않고 국내 기업에 대한 크레딧투자도 커버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게 VIG얼터너티브크레딧의 비전이다. 이를 위해 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에도 투자했다. 마이리얼트립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의 크레딧 투자를 접근하면서 발굴한 포트폴리오였다. VIG얼터너티브크레딧은 지난해 마이리얼트립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520억원을 투자했다. 국내 벤처투자업계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구조화 크레딧 방식으로 이뤄졌다.
VIG파트너스는 2016년 7000억원 규모로 조성한 3호 펀드, 2020년 9500억원 규모의 4호 펀드를 조성했다. 이후 2023년에는 5호 펀드 조성에 나섰다. 2025년 상반기까지 약 1조원 규모로 최종 클로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북미와 유럽의 연기금, 글로벌 펀드오브펀드(Fund of Fund)들을 대상으로 펀딩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에는 5호 펀드의 1차 클로징을 통해 약 5000억원을 모집했다. 이는 4호 펀드 대비 국내 LP의 출자금액이 20% 이상 증가한 규모다. 지속적인 신뢰와 우수한 운용 성과가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다. 5호 펀드는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VIG파트너스가 ESG와 클린텍 분야에서의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하고 새로운 투자 기회를 여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VIG파트너스 로고.
[1] 정부는 이를 위해 간접투자산운용업법, 이른바 '간투법'을 개정했다. 개정된 법안 2004년 10월 공포, 그해 12월부터 시행됐다.
[2] 컨소시엄이 확보한 지분 49%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보고펀드가 확보한 실질적인 LG실트론 지분은 29.4%다.
[3] 당시 보고펀드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KT캐피탈 등 10개 금융사로 구성된 인수금융단으로부터 대출 만기 3년, 금리 연 6~8%의 조건으로 차입했다.
[4] 주로 금융과 법률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대출자가 더 이상 대출금을 연장하거나 상환 유예를 받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는 보고펀드가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채권단이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의미다.
[5] 결국 2017년 LG그룹이 SK그룹에 LG실트론을 매각해 SK실트론으로 탈바꿈하며 LG실트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