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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업계 "사모채 조건부 강제상환 옵션 부적절"

연쇄부도 우려에 객관적 평가 부담

이시온 기자  2025-12-04 15:01:35
사모채 관리 계약에 포함된 강제상환옵션에 대한 신용평가 업계의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강제상환옵션 트리거로 신용등급 하락이 설정된 경우 신평사가 해당 채권의 채무불이행사유 발생(EOD)의 키를 쥐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신용평가 업계에서는 신용등급을 EOD 트리거로 사용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4일 신용평가 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발행한 일부 사모채에 포함된 강제상환옵션으로 인해 신용평가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업황이 비우호적인 산업을 중심으로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급물살을 타면서 신용등급 하락을 트리거로 강제상환옵션이 발동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모채의 경우 대부분 사채관리계약에 △재무비율(부채비율 등) 유지 △자기자본 대비 담보권설정 제한 △자산처분 제한 △지배구조변경 제한 등의 조건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채비율이 400%를 넘어가거나 자기자본의 300% 이상의 담보권을 설정해 관리계약을 위반할 경우 사채권자가 기한의 이익 상실을 선언할 수 있다.

일부 사모채 관리계약 사항에는 신용등급 하락이 포함되기도 한다. 이 경우 채권자는 신용등급이 정해진 기준 이하로 하락할 경우 기한의 이익 상실을 선언할 수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해당 조항은 대체로 투자자들의 요구에 의해서 포함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해당 채권을 현재 신용등급이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투자를 하기로 했던 만큼, 신용도 하락에 대한 대비를 위해 해당 조항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며 "발행사 입장에서는 다소 불리한 조항을 넣을 정도로 자금 사정이 급한 경우"라고 했다.

대부분 회사채에 기한의 이익이 즉시 상실 요건 중 하나로 크로스 디폴트(교차 부도)가 포함돼 있어, 하나의 회차라도 기한의 이익을 상실하게 되면 발행한 모든 회사채가 연쇄적으로 부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신용평가 업계의 우려점이다. 통상 발행 당시 등급에서 2노치 하락을 트리거로 하는 경우가 많아 만기까지 트리거가 발동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업황 악화로 예기치 않은 등급 하락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발 구조조정을 추진 중인 석화업계가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국내 석유화학 업체는 올해 신용등급 또는 등급전망 하향 조정을 겪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AA, 부정적'에서 올해 'AA-, 안정적'으로 한 노치가 하향됐고, 한화토탈에너지스, HD현대케미칼, SK지오센트릭 등은 올해 들어 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돌아선 상태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 신용평가 업계가 제시한 등급하향변동 요인을 이미 충족했거나 근접한 상태로 내년에도 추가 하향이 예고되고 있다.

여천NCC의 경우 2024년 3월까지 신용등급이 'A0, 안정적'이었으나 2024년 8월에 등급전망이 부정적으로 하향됐고, 지난해 12월에는 'A-, 부정적'으로 신용등급 및 전망이 모두 하향 조정됐다. 여천NCC는 신용등급이 'A0, 안정적'이었을 당시 발행한 제79회와 제80회 사모채에 BBB+ 등급으로 하향될 경우 강제상환해야 하는 옵션이 걸려있다.


여천NCC뿐만 아니라 최근 업황이 비우호적인 자동차, 건설, 2차전지 등 기업들도 신용등급 하락을 트리거로 한 강제상환옵션을 포함한 사모채를 발행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해당 조항을 포함해 사모채를 발행하는 기업의 경우 업황이 비우호적인 경우가 많아, 재무안정성이 악화할 확률이 더 높다는 점이다.

여천NCC는 지난해 말 'A-, 부정적'으로 평가된지 약 1년이 지났으나 재무구조는 더욱 악화됐다. 지난해 말과 올해 3분기를 비교했을 때 자산은 1700억원 가까이 감소했고, 총차입금은 700억원 가량 늘었다. 이에 부채비율도 지난해 말 331.4%에서 올해 3분기 345.8%까지 늘어났다.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 악화, 잉여현금흐름의 마이너스(-) 전환까지 동반 중이다.

이 때문에 신평사 입장에서는 사모채 관리계약에 신용등급 하락을 EOD 트리거로 포함하는 것에 대한 강한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발행사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등급 하락 트리거를 포함해 찍어낸 사모채로 인해 해당 기업 전반에 대한 객관적이고 시의적절한 평가를 하는 데 부담이 된다는 주장이다.

신용평가 업계가 해당 조항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결국 발행사의 디폴트를 해당 기업이나 투자자가 아닌 신평사가 결정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제상환옵션 발동 이후 회사가 해당 채권을 즉시 상환하지 못하면 연쇄 부도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 경우 신평사가 도산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 신용평가 업계 관계자는 "신용등급을 EOD 트리거로 포함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신용등급 하락이 EOD 트리거로 포함된 경우 크로스 디폴트 우려로 인해 제대로 된 평정을 하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어떤 면에서는 해당 옵션이 등급 하락을 막는 인질처럼 작용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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