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조선 매각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매도인 측이 원매자에 여러 의무 조건을 내걸면서 협상 줄다리기가 길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조선업 불황을 견디며 버텨온 재무 체력이 빠르게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서, 매도인 측은 굳이 거래를 서둘러 마무리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판단이다.
시간은 케이조선의 편이라는 게 매각 협상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이다. 케이조선이 국내 대형 조선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조선업 슈퍼사이클에 따른 낙수효과를 누리며 매각을 서두르지 않아도 될 만큼 곳간이 채워졌다는 평가다. 입찰을 미룰수록 케이조선의 몸값은 낮아지기보다 오히려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배경이다.
◇현금흐름 정상화 ‘가속’…재무 회복 '청신호' 21일 업계에 따르면 케이조선 본입찰이 다음달로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번달 말까지 태광산업·텍사스퍼시픽그룹(TPG) 컨소시엄을 비롯한 원매자들이 본입찰 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매도인 측이 의무보유 기간과 미국계 투자자 포함 등 인수 전제 조건을 추가 요구해 본입찰이 연기됐다.
앞서 케이조선 매도인은 연합자산관리(유암코)·KHI 컨소시엄이다. 매각 대상은 회사 지분 99.58%와 회사채 등이다. 시장에서는 케이조선 매각가로 5000억원 전후를 예상하고 있다. 다만 최근 미국과의 조선업 협력 마스가(MASGA) 프로젝트가 본격 궤도에 오르면서 최대 1조원까지 몸값이 거론된다.
실제 케이조선은 국내 조선업이 부흥기를 맞으면서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 8997억원과 영업이익 847억원을 거둬 전년 동기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을 모두 앞질렀다. 특히 2024년 영업이익 112억원을 크게 상회하면서 실적 개선이 본격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선소 가동률도 정상화됐다. 케이조선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조선소 가동률 109.5%를 기록했다. 이는 2024년 동기(94.4%)와 비교해 15%p 이상 증가한 수치다. 가동률이 100%를 넘는 건 도크(선박 건조장)를 비롯한 생산시설과 인력이 최대치로 운영되고 있다는 의미다.
현금흐름도 큰 폭으로 개선됐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케이조선의 총영업활동현금흐름(OCF)은 79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72억원) 대비 10배 이상 늘어난 액수다. 아울러 영업활동에 따른 현금흐름을 의미하는 순영업활동현금흐름(NCF)도 같은기간 마이너스(-) 316억원에서 -9000만원으로 반등했다.
투자 확대에도 잉여현금흐름(FCF)이 개선됐다. 앞서 케이조선은 지난해 3분기 누적 자본적지출(CAPEX)로 2024년 3분기 누적(29억원) 대비 47억원 늘린 76억원을 집행했다. 하지만 FCF는 -346억원에서 -77억원으로 개선됐다. 지난해 4분기 실적을 포함할 시 흑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변화는 일회성 반등보다는 구조적 정상화에 가깝다. 케이조선의 OCF 확대가 NCF, FCF 개선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외부 차입에 의존해 경영을 이어가던 위기에서 벗어나, 내부에서 영업을 통한 자금을 만들어내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줄다리기 매각 협상…시간은 매도자 편 케이조선의 실적 반등에 입찰 참여자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원매자들은 케이조선의 재무 회복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가격과 조건을 다시 계산하는 분위기다. 과거처럼 구조조정 부담을 전제로 한 인수 논리가 힘을 잃었다는 시선이다.
매도자도 서두를 이유가 크지 않다. 현금흐름이 뒷받침되면서 추가로 제시한 조건에 맞춰 몸값을 낮출 필요가 없어졌다. 결국 관건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케이조선은 오히려 시간을 두고 협상을 끌고 가며 유리한 조건을 끌어낼 여지가 커진다.
특히 케이조선은 미 해군 제7함대 소속 미해군함대지원단이 상주하고 있는 진해 해군기지와 6㎞로 인접해 군 방공망을 공유하는 등 대한민국 해군 및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진출에 최적화된 입지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마스가 프로젝트 협력 가능성이 높은 배경이다.
이에 케이조선은 지난해 조선 기술연구소를 중심으로 미 군함 MRO 태스크포스(TF)를 구축했다. 올 하반기 미 해군보급체계사령부(NAVSUP) 라이선스 취득을 목표한다. 이후 케이조선은 플로팅 독 제작 900억원 등 최대 2000억원 규모를 투자해 연간 32척까지 MRO로 가져오겠다는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IB업계 관계자는 "케이조선의 경영 정상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매각 요구 조건을 늘린 것으로 파악된다"며 "특히 미국 마스가 프로젝트 수혜도 기대되면서 몸값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