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물산이 그룹 계열사 지원을 위해 내놓았던 핵심 자산의 담보 부담을 크게 덜었다. 롯데케미칼 회사채의 보증 구조 변화와 상환이 이어지면서 롯데월드타워와 롯데월드몰에 설정됐던 담보 한도가 1년 새 1조원 가까이 줄었다. 다만 롯데건설을 비롯한 계열사 리스크가 여전히 남아 있어 재무 부담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긴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롯데물산 담보 설정 한도, 1조 가까이 줄어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기준 롯데물산의 담보 설정 한도는 약 1조644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담보 설정 초기인 2024년 말(2조6083억원) 대비 9635억원 줄어든 수치다.
담보 한도가 급감한 건 롯데케미칼의 회사채 상환 및 보증 구조 변화 덕분이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실적 악화로 재무비율 유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기한이익상실(EOD) 위기에 처하자 사채권자 집회를 열어 보유 사채를 은행 보증부로 전환했다. 롯데물산은 이 과정에서 롯데월드타워와 롯데월드몰을 은행권에 담보로 제공했다. 이후 롯데케미칼이 만기가 도래한 보증부 사채를 갚아나가면서 롯데물산의 담보 의무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담보 설정 한도 축소는 단순한 수치 변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핵심 자산이 담보로 묶일 경우 신규 차입이나 자산 활용에 제약이 발생하고 신용도 평가에서도 재무적 부담 요인으로 반영된다. 이번 담보 축소로 롯데물산은 핵심 자산의 활용 여력을 일부 회복하게 됐다는 평가다.
차입 구조의 질을 개선하려는 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롯데물산은 오는 12일 1억 달러(약 1427억원) 규모의 외화채를 발행한다. SOFR(미국 무위험 지표 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는 변동금리 조건으로, 조달 자금은 오는 3월 만기가 돌아오는 기존 원화 회사채 2100억원 상환에 투입될 예정이다. 부족분은 자체 자금으로 충당한다. 원화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 외화 등 자금 조달 창구를 다변화하고 만기 구조를 장기화해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모습이다.
롯데물산은 그간 롯데건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부채 해결을 위해 특수목적법인(SPC) 프로젝트샬롯에 2000억원을 대여해주고 선·중순위 대출 1조2000억 원에 대해 이자 지급 부족분을 메워주는 이자 자금 보충약정을 체결하며 그룹 내 소방수 역할을 자처해왔다. 이 과정에서 누적된 계열 지원 부담은 롯데물산의 재무 건전성을 압박했고 이는 결국 한국신용평가 등 일부 신용평가사가 롯데물산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AA-'→'A+')하는 데 영향을 줬다.
롯데물산의 자금은 지주사로도 흘러 들어갔다. 롯데물산은 작년 6월 롯데지주의 자사주 524만5461주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입했다. 당시 투입된 현금은 약 1448억원이다. 전방위적인 계열 지원이 계속되면서 2020년 말 1조3238억원이던 롯데물산의 순차입금은 작년 3분기 말 2조4078억원으로 불었다. 롯데물산은 작년 말 롯데건설의 신종자본증권 발행과 관련해 3000억원 규모의 원금 자금보충을 추가로 약정하기도 했다.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계열 리스크 롯데물산의 본업인 임대 사업은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작년 분기 기준 롯데물산의 영업이익률은 24.9%로 전년 동기(19.8%) 대비 5.1%포인트 올랐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롯데월드타워와 롯데월드몰 입점 업체 실적이 개선됐고 오피스 공실률이 사실상 '제로'를 기록한 영향이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87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 늘었다.
그러나 롯데물산이 지분 20.29%를 보유한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2024년부터 지분법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2024년 지분법손실은 3512억원이었고 작년 3분기에도 1445억원 손실이 발생했다. 롯데물산은 작년 3분기에 연결 상각전영업이익(EBITDA) 1643억원을 기록했음에도 당기순손실이 897억원을 기록한 건 이 때문이다. 영업으로 이익을 내고도 최종 순이익은 적자를 면치 못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롯데물산의 향후 재무 흐름이 계열사 리스크 해소 속도에 달려 있다고 본다. 롯데케미칼의 회사채 상환이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담보 부담은 추가로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롯데건설을 비롯한 계열사의 유동성 이슈가 재부각될 경우 롯데물산이 다시 그룹의 안전판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 등 지원 대상 계열사의 만기 도래 채무증권 차환·상환 상황, 우발 부채 현실화에 따른 추가적인 지원 발생 여부를 살펴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