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은행의 특정금전신탁을 통한 ETF 판매액이 급증하면서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판매 규모와 위험도가 동시에 치솟자 당국이 사전 경고에 나선 모양새다. 배경에는 2024년 홍콩H지수 ELS 원금손실 사태가 있다.
당시 불완전판매로 대규모 민원이 있었고 은행권은 자발적 배상을 진행했다. 하지만 사건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홍콩 ELS 과징금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ETF도 증시에 따라 원금 대폭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이에 은행도 당국도 유사 사태 재발을 막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판매부터 사후관리까지 전 과정에서 내부통제를 강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커지는 ETF 판매 규모…은행 책임도 덩달아 ↑ 최근 금감원 공개 자료에 따르면 은행 특정금전신탁을 통한 ETF 판매액 중 1등급 고위험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났다. 지난해 상반기 37.5%를 차지하던 1등급 상품은 하반기 49.7%로 올라섰다. 올해 1~2월에도 48.1%를 기록하며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증시 변동성 증가로 고위험 포트폴리오의 비중도 늘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판매액 자체가 반년 새 4조9000억원에서 15조6000억원으로 3배 급증한 상황에서 그 안의 고위험 비중까지 함께 올라간 셈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수수료 수익을 챙길 수 있어 좋으면서도 소비자보호 난이도가 덩달아 상승해 고민이 깊다. 은행 창구에서 ETF 상품에 가입할 경우 증권사를 통해 직접 거래하는 것과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은행 신탁은 고객 지시를 받아 장중 분할·지연 매매로 주문이 체결된다. 실시간 거래가 불가능하고 매매가격 지정도 할 수 없다. 주가가 급변동하는 구간에서는 고객이 원한 가격과 실제 체결가 사이에 차이가 벌어질 수 있다. 소비자가 은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 은행의 책임이 더욱 커진다.
은행의 책임은 수수료 구조에서도 발생한다. 은행 신탁은 신탁수수료 연 0.3~1.2%에 중도해지수수료 최대 1.2%, 거래수수료 0.01~0.10%가 각각 부과된다. 반면 유사한 증권사 대면 거래는 거래수수료 0.40~0.50%만 부과한다. 비대면은 더 낮은 수수료를 적용한다.
신탁으로 ETF를 판매하는 은행의 제약 때문에 관련 민원도 쌓이고 있다. 매수 주문 후 지연 체결로 원하는 가격에 사지 못했다는 사례, 중도해지수수료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사례, 본인 동의 없이 자동매도가 설정돼 추가 수익 기회를 놓쳤다는 사례 등이 속출했다.
금감원이 지난해 10~12월 실시한 미스터리쇼핑에서도 증권사 직접매매 대비 수수료 차이나 실시간 거래 불가 같은 핵심 정보 전달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홍콩 ELS 때와 유사한 불완전판매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단초들이다.
◇CCO 권한 확대·KPI 개편…소비자보호 '집중' 소비자보호 측면에서 부담이 증가함에도 ETF가 은행의 새로운 수익원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홍콩 ELS 사태 이후 주요 은행이 ELS 판매를 잠정 중단하면서 ETF 판매 규모, 중요성 등이 더 커지고 있다.
은행들은 과징금 확정 이후에도 ELS 판매 재개를 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과징금의 자본 부담이 결정적이다. 과징금을 부과받으면 10년간 600~700% 규모를 위험가중자산(RWA)에 반영해야 한다.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주주환원의 핵심 지표로 관리하는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다. 사업을 완전히 철수하면 3년으로 반영 기간이 단축될 여지가 생긴다는 점도 판매 재개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결국 ELS가 빠진 자리는 ETF가 메우고 있다. 구조가 단순하고 만기가 없어 판매가 용이하다는 점이 작용했다.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의 ETF 관심도가 증가한 것도 한몫했다. 예대마진 한계 속에 비이자이익 확대가 절실한 은행에게는 ETF가 가장 빠르게 키울 수 있는 판매 창구이기도 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판매액이 급증한 배경이다.
문제는 판매 확대 속도와 내부통제, 소비자보호 수준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고위험 비중이 절반까지 올라섰는데도 수수료 구조나 거래 방식 차이 같은 실질적 설명은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에 금감원은 이달 초 곽범준 은행담당 부원장보 주재로 국내은행 11곳 부행장을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비예금상품위원회의 상품 선정 강화 △고위험 상품 고객별 한도 일시 축소 △프라이빗뱅킹(PB)센터와 영업점 직원교육 강화 △자체 점검 실시 등을 주문했다.
은행은 비단 ETF뿐 아니라 당국 주문에 맞춰 소비자보호 체계 전반을 강화하고 있다. 지주, 은행 이사회 내에 소비자보호 관련 위원회를 설치하고 소비자 보호 담당 임원(CCO)의 권한도 확대하고 있다. KPI에 소비자보호 지표를 반영해 '판매확대=실적'이라는 공식을 깰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