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내부 업무에 AI를 도입한 지는 오래됐다. 챗GPT의 등장으로 생성형 AI 특이점이 왔다고 평가되던 2023년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AI 활용을 모색해 왔다. 하지만 중요한 업무는 맡길 수 없었다. 망분리 규제부터 활용 타당성까지 많은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AI가 채운 업무는 줄곧 상담과 안내 언저리였다. 고객의 질문에 답하고 직원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역할에 불과했다. 그러나 기술 발전, 규제 완화가 진행되면서 은행이 AI 활용의 벽을 허물고 있다. 여신심사, 무역금융 심사 등 핵심 업무에도 앞다퉈 AI를 적용하는 중이다.
◇정리·안내 역할에만 머물던 과거의 AI AI를 가장 쉽고 빠르게 도입할 수 있는 영역은 고객센터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하루 평균 10만개가 넘는 고객의소리(VoC)가 접수되기 떄문이다. 데이터가 많이 쌓일 수록 AI를 고도화해 업무에 투입하기 수월하다.
이에 국민은행은 2023년 일찍이 상담 내용을 음성에서 문자로 바꿔 분석하는 AI 시스템을 도입했다. 올해는 화상상담에 실시간 얼굴 확인을 붙여 명의도용을 걸러내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우리은행도 내부 문서를 '우리GPT'와 'AI 뱅커' 상담 서비스에 활용 중이다. 신한은행도 GPT 모델을 탑재한 AI 금융지식 Q&A 서비스와 딥러닝 감정분석 시스템을 도입해 대기 시간 없는 상담 구현을 목표로 잡았다.
고객센터 뿐 아니라 질문에 자료를 찾아 답을 주는 백과사전과 같은 기능도 빠르게 구축할 수 있는 영역 중 하나다. 대부분 은행이 이미 직원용 생성형 AI 챗봇을 도입한 상태다. 국민은행 뿐 아니라 하나은행도 직원용 지식챗봇에 자체 생성형 AI를 입혔다.
◇다각도 업무에 AI 투입…생산적금융 시대 필요도 ↑ 하지만 이 방식은 진정한 AX라고 보기 어려웠다. AI가 정보를 정리하고 초안을 만들지만 고객을 응대하고 마지막 판단을 내리는 건 사람이었다.
최근에서야 규제가 일부 완화되고 AI 성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은행이 본질적인 업무에 AI를 끼워넣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AI 여신심사다. 하나은행은 지난 3월 기업 신용평가 심사의견을 자동 생성하는 시스템을 전 영업점에 도입했다. 생성형 AI가 재무제표와 산업 동향을 분석해 심사의견 초안을 만든다. 직원이 평균 30분 넘게 쓰던 작업이 약 10초로 줄었다. 연간 7만 건의 기업 신용평가에서 2만7000시간 이상을 아낄 것으로 봤다. 은행이 직접 알고리즘을 설계한 인하우스 모델이다.
우리은행은 외부 모델을 택했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생성형 AI '코파일럿'을 기업 여신심사와 사후관리에 도입했다. 외부 생성형 AI를 여신심사에 쓴 은행권 첫 사례다. 기업의 상환 능력을 따지고 금리와 한도를 정하는 과정에 AI의 도움을 받는다. 내부망에서 외부 AI를 쓰기 위해 지난해 7월 금융위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았다.
신한은행도 여신심사에 자체 개발 생성형 AI를 도입하기로 하고 시기를 조율 중이다. 보증서와 계약서, 심사의견서를 점검하는 데 AI를 쓸 계획이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수출환어음 매입 심사에 오픈AI의 GPT 모델을 적용했다. 무역금융 심사에 생성형 AI를 본격 적용한 국내 첫 사례다.
여신 자동심사 자체가 새 일은 아니다. KB국민은행은 이미 2022년 머신러닝 기반의 'Bics'를 들였다. 달라진 건 기술의 결이다. 정해진 규칙을 학습하던 단계에서 글을 읽고 의견을 써내는 생성형 AI로 변화했다.
다만 아직 완전 자동화가 이뤄지기는 이르다.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해야 한다. 업무 시간을 줄여주고 사람의 실수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용평가, 대출심사는 평가모델에 따른 정량적인 점수도 중요하지만 정성적인 항목도 따져봐야 한다. AI로 도출해 낸 대안 신용평가 모델의 내용을 확인하고 사람이 판단하는 것이다. 생산적금융 전환에 따라 은행이 비상장 기업, 스타트업 투자를 확대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사용이 더 커졌다.
은행 관계자는 "AI가 사람이 판단하기 어려운 데이터를 도출해내기 때문에 기존에는 따져볼 수 없던 정성적인 부분도 같이 확인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며 "다만 심사 객관성, 책임 등을 위해 완전 자동화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