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윤활유 제조사들이 대규모 과징금 제재 앞에 섰다. 6년 9개월에 걸쳐 2조200억원의 담합을 펼치며 국내 산업계 공급망을 흔들었다. 특히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 리스크가 불거진 시기 가격 담합을 펼치며 국내 제조업 현장에 리스크를 키웠다.
공정위는 조사를 마치고 10개 사에 심사보고서를 송달한 상황이다. 각 사별 의견을 수렴한 뒤 전원회의 등을 거쳐 제재를 확정할 전망이다. 관련 규정에 따라 과징금 최대 4040억원이 부과될 수 있다. 각 사별 연 매출이 3000억원 남짓인 가운데 대규모 재무 리스크가 우려된다.
◇글로벌 공급망 극변기, 가격 담합한 윤활유 제조사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23일 산업용 윤활유 담합 사건과 관련해 심사관이 조사한 행위 사실과 위법성, 조치 의견 등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10개 윤활유 제조·판매사업자에게 송부하고 위원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번 담합 의혹의 대상이 된 품목은 금속가공유와 산업용 윤활유다. 금속가공유는 금속 소재를 절삭하거나 연마할 때 마찰과 열을 줄이고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해 사용된다. 산업용 윤활유는 산업 설비 작동, 기계·장비의 원활한 작동 등을 위해 사용된다.
이들 제품은 일반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직접 구매하는 휘발유·경유와는 다르지만 제조업 현장과 산업 설비에 폭넓게 사용된다. 만약 가격 담합이 사실로 확정될 경우 제조업체의 원가 부담과 납품단가 상승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정위 심사관은 윤활유 제조사들이 2018년 1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총 6년 9개월 동안 원가 상승 국면에서 사전 합의를 통해 윤활유 공급가격을 조정하고 입찰 담합을 벌였다고 판단했다. 공정위가 산정한 관련 매출액은 약 2조200억원이다.
특히 윤활유 제조사들이 담합을 펼친 시기는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글로벌 공급망이 교란됐던 시기와 일치한다. 당시 국내 기업들은 원재료 및 각종 소재, 부품 등 수급에 차질을 빚으며 생산성이 낮아졌다. 국가적으로 산업계 전반에 걸쳐 위기가 불거졌던 시기 윤활유 제조사들이 가격 담합을 펼치며 전체적으로 공급망 리스크를 부추겼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심사보고서가 발송된 제조사는 광우, 극동유화, 디에이치케미칼, 범우켐, 범우케미칼, 범우화인켐, 범우화학, 에스에이치엘, 한국하우톤, 한유에스케이이티에스 등 10곳이다. 다만 기업집단별로는 총 5곳으로 압축된다.
백스인터코퍼레이션그룹에선 범우켐, 범우케미칼, 범우화인켐, 범우화학공업, 광우 등 5개 계열사가 이번 윤활유 담합 사건으로 동시에 제재 대상에 올랐다. 한국하우톤그룹에선 한국하우톤과 디에이치케미칼이 제재 대상이다. 이외 극동유화와 한국에스케이이티에스, 에스에이치엘은 개별 기업이다.
◇연 매출 3000억 안팎 회사들…과징금 최대 4040억 ‘불호령’ 공정위는 윤활유 제조사들의 담합에 대해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로 규정하고 가격 재결정 명령을 포함한 시정명령, 과징금 부과, 관련 임직원 고발 의견을 심사보고서에 담았다. 부과기준율 15~20%를 관련 매출액에 단순 대입하면 과징금은 최소 3030억~최대 404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10개 화학사의 지난해 매출은 9862억원이다. 공정위가 담합 행위에 대한 제재를 확정하고 과징금 최대 20%를 부과할 경우 10개 화학사가 부담해야할 과잉금 규모는 총 4040억원이다. 개별 회사별로는 산술적으로 1개 화학사당 404억원의 과징금을 내야한다. 다만 매출에 비례해 과징금 규모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많은 과징금을 부과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한국하우톤그룹이다. 윤활유 담합 10개사 가운데 매출이 가장 크다. 지난해 기준 매출은 한국하우톤 2281억원, 디에이치케미칼 1013억원 등 총 3294억원이다. 이를 그대로 과징금 총액에 반영할 경우 한국하우톤그룹이 분담해야 할 과징금은 1426억원으로 추정된다.
백스인터코퍼레이션그룹은 지난해 단순 합계 매출 2428억원을 올렸다. 이를 지난해 담합 10개사 총 매출에 대입할 경우 매출 비중은 26.01%다. 과징금 4040억원이 10개사에 부과될 경우 매출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나누면 백스인터코퍼레이션그룹이 부담해야할 과징금은 1051억원으로 추정된다.
개별 기업 가운데선 극동유화의 과징금 부담이 클 전망이다. 지난해 윤활유 매출 2078억원을 기록했다. 윤활유 담합 10개사 가운데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22.26%로 높다. 이를 그대로 과징금 총액에 반영할 경우 극동유화가 분담해야 할 과징금은 899억원으로 추정된다.
이외 지난해 매출을 기준으로 나눈 각 화학사별 과징금 분단액 추정치는 한유에스케이이티에스 520억원, 에스에이치엘 144억원 등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는 심사관 의견 기준의 추정치이고 실제 과징금은 전원회의 심의(개별사 가담기간·감경사유·자진신고 여부 등 반영)를 거쳐 확정될 전망이다. 더불어 지난해 매출액이 아닌 담합 행위가 적발된 2018년 1월부터~2024년 10월까지 6년 9개월간 각 사별 윤활유 매출을 근거로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피심인들의 방어권 보장 절차가 끝나는 대로 위원회를 열어 최종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업계에선 연내 과징금 부과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아직 제재가 확정된 거은 아니”라며 “각 사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아직 의견을 제출한 곳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