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CFO의 이력은 저마다 다르다. 회계에 잔뼈가 굵은 재무 전문가가 있는가 하면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을 위해 합류한 인물도 있다. 투자자와 시장의 언어에 능숙한 IR형 CFO도 쉽게 볼 수 있다.
경력과 전문 분야만으로 좋은 CFO를 가리기는 어렵다. 재무제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자금을 제때 조달하는 것은 기본이다. 중요한 것은 회사의 판단이 한쪽으로 기울 때 CFO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다.
최근 만난 한 코스닥 상장사 CFO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이 회사는 신성장동력을 찾겠다며 여러 사업에 손을 댔다. 경영진의 확신은 강했고 가능성을 말하는 목소리도 컸다.
재무를 책임진다고 모든 결정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업 초기에는 성패를 가늠할 숫자가 적고 실패 가능성도 단정하기 어렵다. 여러 우려에도 추진 의지가 강한 경영진을 설득하기 쉽지 않았다.
재무 여력이 빠듯해지자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더는 판단을 미룰 수 없다고 봤다. 벌여놓은 사업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회생 가능성이 낮은 곳에는 선을 그었다. 내부 반발에도 직을 걸고 정리를 밀어붙였다.
판단은 사업 포트폴리오에 그치지 않았다. 사정이 더 나빠지면 오너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직언했다. 경영권보다 회사를 살리는 일이 먼저라는 논리였다. 오너들도 충언을 받아들여 사업 정리에 힘을 실었다.
상장사는 오너 개인의 회사에 머물지 않는다. 주주가 자본을 대고 임직원과 거래처가 회사의 존속에 이해관계를 건다. 오너의 확신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할 때 이를 견제하는 일도 경영의 일부다. CFO의 직언은 오너에 대한 도전보다 상장사가 감당해야 할 책임에 가깝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직언의 수위가 아니었다. 그는 오너의 의중이나 자신의 자리를 판단의 중심에 두지 않았다. 무엇을 남겨야 회사가 버틸지, 언제 결단해야 손실을 줄일지를 먼저 따졌다.
CFO의 역량은 회사가 성장할 때 쉽게 드러날 수 있다.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를 뒷받침하면 된다. 반면 사업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면 역할은 복잡해진다. 확장의 논리를 거두고 철수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때로는 그 기준을 오너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좋은 CFO는 회사가 무엇을 할지 정하는 사람만은 아니다.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CFO의 진짜 가치는 앞으로 나아갈 때보다 멈춰야 할 순간을 먼저 알아보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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