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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내부통제 뭐가 문제일까…'자율'과 '방만' 사이

구심점 없는 각개전투 성장장식…이사회 내 통제장치 전무

고진영 기자  2023-09-05 16:58:17
최근 몇년 카카오는 바람잘 날이 없어 보인다. 데이터센터 화재로 홍역을 치른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이번엔 고위직 임원이 법인카드로 게임 아이템을 샀다. 언뜻 성격이 달라보이지만 내부통제 부족이라는 점에서 결이 같은 이슈다. 카카오엔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길까.

◇IT업계 "게임사도 법인카드론 게임 안해"

카카오는 9월 1일 재무그룹장 A 부사장에 대한 3개월 정직 조치를 사내에 공지했다. A 부사장이 법인카드로 1억원 규모의 게임 아이템을 구매했다는 제보가 들어오면서 상임윤리위원회가 조사해 왔으며 윤리규정을 어겼다고 판단해 징계가 내려졌다. 유용된 회삿돈에 대해선 환수를 마친 상태다.

회사 관계자는 "내용을 인지한 즉시 A부사장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징계 절차를 진행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법인카드의) 사용처나 한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수립해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는 대표이사와 대표이사가 위촉한 4인, 라운드테이블에서 지명한 4인으로 상임윤리위원회를 구성해 징계를 심의하도록 하고 있다. 라운드테이블은 노사 동수 각 8인으로 구성된 노사협의체인데 크루(직원)가 직접 근로자위원을 선출해 대표성을 확보한다. A부사장을 징계한 이번 상임윤리위원회에는 노동조합(크루유니언)측 인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직 3개월은 해고 다음으로 높은 징계 수위다.

서승욱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크루유니언) 지회장은 "추가적인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분명한 기준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통 기업들은 징계에 대한 내용을 취업규칙에 명시한다. 하지만 카카오는 징계 절차나 수위 등에 대해 그동안 세부적인 규정을 두지 않았다. 윤리규정에서 '모든 크루는 회사의 유형 및 무형자산을 적절하게 배당하고 사용해야 한다'는 일반론적 의무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사회에 내부통제 리스크를 다루는 위원회도 따로 두지 않는다. 카카오는 이사회에 감사위원회와 이사후보추천위원회, 보상위원회, ESG위원회만 설치하고 있다.

경쟁사 네이버가 2020년 10월 ESG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투명성위원회를 리스크관리위원회로 바꾸고, 회사 운영 및 인사를 포함한 통합 리스크를 관리하도록 한 것과 대비된다. 리스크관리위원회는 전략 수립과 리스크 발생 원인 진단, 개선방안 검토를 모두 담당하고 있다.


사후 처리를 둘러싼 갑론을박과 별개로 업계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A 부사장이 카카오게임즈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마찬가지다. D게임사 관계자는 "게임사에서도 자사 게임에 대해선 게임캐시를 지급해주고 타사 게임은 자비로 하지 법인카드로 거액을 사용한 사례는 금시초문"이라며 "확률형 아이템에 쓴 게 아니면 1억원이라는 단위가 어떻게 나왔는지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게임개발 파트에선 타사 게임 등을 필요에 따라 공동구매하기도 하지만 억단위가 나가는 일은 못 봤다는 설명이다.

IT업종인 H회사 관계자의 경우 "보통 C레벨 등 고위직 임원은 법인카드에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는데 A재무그룹장 역시 그런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며 "아무리 제약이 없어도 게임아이템을 공금으로 사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선 이런 법인카드 유용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체계가 내부에 없는 것도 문제지만 애초부터 조직 분위기가 지나치게 풀어져 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문제삼고 있다. 사건이 한 번 터지면 개인적 일탈로 볼 수 있겠으나 자꾸 반복되면 시스템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방향타 없는 카카오, 내부통제 시스템 부재

실제로 카카오그룹은 내부통제 미흡이 나타나는 이슈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지난해 카카오 대표이사로 내정된 류영준 카카오페이 전 대표가 이른바 '주식 먹튀' 논란으로 물러났고, 사퇴 뒤엔 카카오페이에서 비상근 고문으로 위촉돼 재차 뭇매를 맞았다. 작년 10월 일어난 데이터센터 화재에서 대응시스템 부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좋게 말하면 자유롭고, 비판적으로 보면 체계없는 카카오의 문화는 성장방식과 맞닿아 있다. 카카오그룹은 공격적 인수합병에 따른 법인들의 느슨한 결합으로 덩치를 키웠다. 강력한 구심점이 있다기 보단 개별 기업들이 각개전투로 움직인다. 이렇다 보니 몸집은 대기업이 됐는데도 카카오를 포함한 그룹사 전반에 여전히 스타트업 같은 분위기가 남아 있다.

2021년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가 고작 일주일 차이로 상장 예정일을 정한 데서도 그룹 차원의 방향타 부재가 엿보인다. 당시 증권신고서 이슈 탓에 카카오페이 상장이 3개월 정도 미뤄지긴 했으나 같은 그룹 계열사가 거의 동시에 IPO를 진행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IB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 사이에서 '최초 테크핀 상장사' 타이틀을 두고 물밑 신경전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게다가 각 계열사들이 활발한 외부투자 유치와 상장(IPO)을 통해 대규모자본을 조달하면서 창업자인 김범수 전 의장(사진)의 그룹 지배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카카오그룹의 내부지분율을 보면 2019년까지는 70% 중반대를 유지했으나 올해 3월 말 기준 37.7%로 떨어진 상태다. 내부지분율은 공정위가 대주주의 그룹 지배력을 판단하는 지표로, 낮을수록 총수의 장악력과 경영권 방어력도 약하다는 의미다. 외부투자를 많이 받는 만큼 희석되는 경향이 있다.

카카오의 리더십 부재, 이에 따른 내부통제 공백 이슈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김 전 의장은 작년 3월 글로벌 확장에 힘을 쏟겠다"며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같은 해 '먹통 사태' 국정감사장에 섰을 땐 "사태를 엄중하게 인식한다"면서도 다시 경영에 나설 뜻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 전 의장의 평소 철학을 감안하면 놀랍지 않은 일이다. 그는 '최고경영자(CEO) 100인 육성'을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다. 사세를 키우되 개별회사 운영은 각 CEO들의 자율에 맡긴다. 현재 국내에서만 136개 계열사를 거느린 카카오가 스스로를 그룹이 아닌 '공동체'로 칭하는 것도 이런 뜻에서다.

자율경영이 임직원들에게 성장의 강력한 동기부여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카카오가 성장할수록 통제할 힘이 부족해지는 부작용이 덩달아 커지고 힜다. 카카오는 작년 10월부터 홍은택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조직 장악력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김범수 전 의장이 적극적으로 나설게 아니라면 새로운 구심점이라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근본적인 리더십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내부통제 이슈가 이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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