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SBI저축은행과 OK저축은행의 두 회장이 매각과 인수라는 다른 전략을 꺼내 들었다. 기타오 요시타카 SBI그룹 회장은 SBI저축은행을 교보생명에 매각한 후 상당 기간 공동 경영에 나서며 계열 편입에 따른 시너지를 극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최윤 OK금융그룹 회장은 상상인저축은행, 페퍼저축은행 등 중대형 저축은행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 영업구역을 경기·인천 지역으로 확대하고 자산을 확대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엇갈린 두 회장의 선택에 따라 향후 리딩 저축은행을 둔 경쟁의 새로운 막이 펼쳐질 전망이다.
◇기타오 회장 "매각, 손해 볼 게 없는 딜"…퇴직연금 사업 연계 이점
SBI홀딩스는 SBI저축은행을 교보생명에 매각한다. 내년 10월까지 SBI저축은행 지분 50%+1주인 1억5614만7223주를 단계적으로 양도하기로 결정했다. 인수금액은 약 9000억원으로 올 하반기 지분 30%를 우선 매각할 예정이다. SBI홀딩스는 특수목적법인(SPC) 4개 회사를 통해 SBI저축은행 지분 85.3%를 보유하고 있다. 14.7%는 자사주다.
SBI홀딩스는 주식 양도가 마무리되더라도 상당 기간은 교보생명과 공동경영에 나설 계획이다. SBI홀딩스는 "주식 양도가 실행 후에도 SBI그룹과 교보생명이 각각 파견하는 이사의 인원수는 동수로 할 것"이라며 "또 SBI그룹이 SBI저축은행의 경제적 권리의 70%를 보유할 것에 쌍방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기타오 회장은 당초 SBI저축은행을 중심으로 국내 금융지주사 전환을 꾀했다. 그룹 안에서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기업 생태계'를 강조해 온 기타오 회장의 의지였다. 그러나 인수 초기 경영정상화를 위해 투입한 1조원이 넘는 투자의 회수가 늦어지자 실속을 챙기며 경영권을 넘기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타오 회장은 이달 열린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IR에서 "우리에게 추억이 있는 SBI저축은행을 쉽게 내줄 수 없었다"며 "의결권 기준 41.3%의 지분을 가지고 70%의 경제적 권리를 확보해 우리에게 손해는 없는 딜"이라고 밝혔다.
SBI저축은행은 교보생명과의 시너지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교보생명이 자회사로 두고 있는 교보증권, 교보자산신탁 등과도 연계 사업을 기대할 수 있다. 단순한 금융투자 관계를 넘어 다양한 금융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가령 SBI저축은행의 예금을 교보생명의 퇴직연금으로, 입출금 계좌를 보험금 지급 계좌로 활용하는 등 금융 서비스 협업을 기대할 수 있다. 교보생명의 보험 계약자들에게는 저축은행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어 고객군을 넓힐 수 있는 창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6년 10월 SBI저축은행은 SBI홀딩스의 연결자회사에서 제외되고 지분법 적용 관련 회사로 전환된다. 다만 편입 이후에도 SBI저축은행의 경영진 교체는 없을 전망이다. 김문석 SBI저축은행 대표는 2023년 취임해 작년과 올해 2차례 연임에 성공한 바 있다.
왼쪽부터 기타오 요시타카 SBI그룹 회장, 최윤 OK금융그룹 회장. /사진=각사
◇상상인저축 가격협상 지지부진…차기 리딩 저축은행 경쟁 치열
반면 OK금융그룹은 중대형 저축은행을 인수해 저축은행 본업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최윤 회장이 내건 종합금융그룹이라는 목표에 저축은행 인수는 첫 단추다. 대부업 청산으로 사업 영역이 줄어든 가운데 핵심 사업인 저축은행 경쟁력을 확대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OK금융은 올해 상상인저축은행, 페퍼저축은행과 합병 논의를 진행했다. OK금융그룹은 현재 매각 측과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수개월째 지연되는 양상이다. 상상인저축은행은 OK금융이 지난해부터 꾸준히 검토해 온 매물이다. 하지만 매각가를 두고 양측의 눈높이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OK금융그룹은 경기·인천권 영업구역 확장을 노리고 있다. 국내 저축은행은 상호저축은행법에 따라 영업권에 제한을 받는다. 전국은 6개 권역으로 나뉘는데 △서울 △인천·경기 △충청권(대전·충남·충북) △전라권(광주·전남·전북·제주) △강원·경북권(대구·경북·강원) △경남권(부산·울산·경남) 등이다.
M&A에선 인천·경기 영업권 확보가 핵심이다. 인천·경기, 즉 수도권은 서울 권역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만큼 대출 수요가 높아, 영업 측면에서 메리트가 크다. 반대로 지방에 거점을 둔 저축은행들은 매물로 많이 나와 있으나 대출 수요가 적고 지역 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어 인수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다.
두 저축은행 간 리딩 저축은행 경쟁은 보다 치열해질 전망이다. 업계는 두 저축은행 간 순위 변동이 생긴다면 SBI저축은행의 주식 양도 시점인 2026년 10월 이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매각을 앞둔 만큼 SBI저축은행은 공격적인 외형 성장 보단 리스크 관리에 치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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