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은행권의 가계대출 공급량 목표치를 줄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재명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제한한 데 이어 당국 차원의 후속 대책이 발빠르게 마련되자 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하반기 영업 위축이 불가피하고 밸류업 프로그램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보통주자본(CET1)비율에 미칠 영향도 가늠해봐야 한다.
강도 높은 후속 대책이 이어질지도 관심사로 부상했다. 금융 당국은 가계대출 목표치를 감축한 뒤에도 대출 증가세가 이어질 경우 단계적으로 규제를 강화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주담대 위험가중치 한도를 높이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가계대출에 대한 경기대응완충자본 부과도 가능성 높은 카드 중 하나다.
◇가계대출 증가세 안잡히자 특단 조치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올 하반기 은행권의 가계대출 공급량 목표액의 50%를 감축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조치는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내려졌다. 지난 6월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곳의 가계대출 잔액은 755조원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분기 738조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7조원가량 증가했다.
가계대출이 대규모로 늘어난 건 이재명 정부에서 부동산 관련 규제가 강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융 당국은 최근 수도권을 비롯한 규제 지역에서 주담대 한도를 6억원으로 전격 제한했다. 앞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제한하고 가계대출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성이 명확해졌다. 추가적인 대출 규제가 나오기 전에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계대출 규제 방안이 나오면서 하반기 영업을 개시한 주요 은행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시중은행을 비롯한 주요 은행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가계대출은 절반에 육박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주담대는 30~40% 수준이다. 가계대출과 주담대를 당초 계획만큼 늘리지 못하면 염두에 둔 연간 순이익 달성이 녹록지 않아진다.
은행권은 올 하반기 가계 대출을 대신할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데 분주하다. 단기적으로 기업금융 영업을 강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시중은행은 정부 방침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절되는 가계대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금융 포트폴리오를 강화해왔다.
◇자본비율 관리 부담 한층 커진다 전략 변화는 자본비율 관리 측면에서도 부담이다. 일부 은행은 주담대 확대가 어려워지자 기업금융을 강화해 목표 실적을 달성하려 하고 있다. 이 경우 CET1비율 관리 난이도는 한층 높아진다. 주담대 위험가중치는 15% 수준인 반면 중소기업의 경우 신용등급에 따라 150%를 웃돌기도 한다. 자산에 따라 위험가중자산(RWA) 부담이 10배 늘어나는 셈이다.
주담대에 대한 위험가중치가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현재 15% 수준인 주담대 위험가중치 하한선을 25% 수준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담대가 100억원 늘었을 때 가산되는 RWA가 15억원이었다면 앞으로는 25억원이 추가될 수 있는 것이다.
경기대응완충자본 부과도 금융 당국이 시행할 수 있는 정책 중 하나다. 금융 당국은 신용팽창이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할 때 은행권이 적립해야 하는 자본을 늘리는 방식으로 규제하고 있다. 당국 차원에서 은행권에 적용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수준의 규제로 꼽힌다.
은행권은 밸류업 프로그램 이행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가계대출을 무리해 늘리기보다 당국 방침을 준수하는 쪽을 택할 것으로 관측된다. RWA 규제가 강화되고 주가 자본 적립 규제가 시행되면 목표로 삼고 있는 CET1비율을 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목표 CET1비율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주주에게 약속한 환원 재원을 마련할 수 없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호실적 흐름이 지속되면서 이자장사 비판이 계속 나오지만 주담대의 경우 시장 수요가 줄지 않아 급증한 측면도 있다"며 "과도한 가계대출 증가를 방지하자는 금융 당국 입장을 최대한 수용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