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에서 엔터테인먼트사(엔터사)의 위상 변화가 감지된다. 하이브가 국내 엔터사 중 처음으로 신용평가사 두 곳에서 'A+/안정적'의 신용등급을 획득했다. 하이브의 재무수준이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도 가능한 수준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실상 엔터사에게 회사채 시장의 문턱은 높았다. 아티스트IP(지적재산권) 등 무형자산을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기에 담보가치가 낮고 현금흐름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따라 국내 굴지의 엔터사들조차 자체 현금흐름을 활용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하이브가 장기 신용등급을 확보하면서 엔터사의 조달전략 판도가 바뀔 조짐이 나타났다.
◇K팝 엔터사 최초 장기 신용등급 A+ 획득…회사채 ‘청신호’ 12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하이브가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에서 기업 신용등급을 획득했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 둘다 하이브에게 'A+/안정적' 등급을 부여했다. K-팝을 주력으로 하는 엔터사 가운데 장기 신용등급을 획득한 것은 하이브가 처음이다.
한국기업평가는 “하이브가 최상위권의 시장지위를 보유했고 아티스트의 브랜드 파급력이 높아 사업안정성이 우수하다”며 “영업현금창출력이 우수하고 실질적 무차입구조라서 재무안정성도 매우 좋다”고 밝혔다.
하이브가 장기 신용등급을 획득한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회사채를 발행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한다. 회사채, 특히 기관투자자의 투자를 받는 공모채를 발행하려면 최소 두 곳 이상의 신용평가사에서 BBB- 이상의 신용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하이브가 이런 요건을 사실상 충족한 것이라서다.
하이브가 이번에 확득한 기업 신용등급은 기업의 금융상 채무에 대한 전반적 상환능력을 평가한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회사채 신용등급과 거의 유사하다. 하이브가 A+의 신용도로 회사채를 발행할 여건을 갖췄다는 의미다.
하이브가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할 경우 금리상 이점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3년물 A+ 회사채 금리는 3.3% 정도다. 올 상반기 말 기준으로 하이브가 2028년 6월 만기로 우리은행에서 대출한 자금의 금리가 3.96%인 점을 고려하면 3년물 A+ 회사채 금리가 훨씬 낮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브가 은행 대출로 장기 차입금을 마련하는 것보다 회사채를 발행하는 편이 조달금리를 더 낮출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며 “금융비용 절감 등 이점을 누리고 조달수단을 다각화하기 위해 회사채 시장을 두드릴 준비를 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무형자산 불확실성 극복…엔터사, 자체현금 의존 공식 깨나 하이브의 신용등급 획득이 주목받는 것은 그동안 회사채 시장의 문턱을 넘은 엔터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엔터테인먼트산업이 지금처럼 성장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라며 “이 때문에 전통적 자금조달 시장인 채권 시장에 발걸음 하기 어려웠고 사업의 불확실성도 상당히 높아 신용평가업계에서 엔터사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엔터사는 신인 아티스트와 7년 주기로 전속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다. 재계약의 경우 이런 기간이 짧아질 수 있는 데다 아티스트IP의 브랜드 가치가 언제 어떤 변수로 훼손될지 알 수 없다. 매출 변동성이 상당히 크다는 의미다. 더욱이 무형자산이라는 특성상 아티스트IP는 담보 가치도 낮은 편이다.
이 탓에 엔터사에 대한 신용평가가 상대적으로 박하게 이뤄져 회사채 발의 장애물로 작용했다. 이는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의 신용평가방법론 적용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하이브가 속한 산업의 매력도가, 한국신용평가는 사업안정성 팩터의 시장구조부문이 각각 BBB급이라고 진단했다. 재무안정성 등은 뛰어나지만 사업의 본질적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해석이다.
이 때문에 하이브를 포함한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는 사실상 무차입구조를 이어왔다. 하이브가 그나마 은행대출, 전환사채(CB) 등을 발행해 조달전략을 비교적 유연하게 구사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자체적 현금흐름에 의존해왔다.
실제로 올 상반기 말 연결기준으로 하이브는 순차입금이 마이너스(-)3561억원을 기록해 순현금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기간 연결기준 순차입금은 SM엔터테인먼트도 –3625억원, JYP엔터테인먼트 –2383억원, YG엔터테인먼트는 –2203억원이다. 엔터업계 빅4로 불리는 네 곳의 엔터사 모두 2020년 이후 순차입금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순현금 기조를 이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