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전환(AX)을 완성하는 건 결국 기술력이다. 디지털금융으로의 전환도 결국 기술력이 완성된 후에야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은행이 지금의 슈퍼앱, 메가앱 등을 내놓기 위한 기술력을 확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AX는 속도 싸움이다. 디지털 전환처럼 긴 시간을 투입하기 어렵다. 새로운 기능이 출시되는 간격이 그 어느 때보다 짧다. 이에 따라 분위기도 달라졌다. AX를 단순히 외부 용역에만 의존하지 않고 내재화까지 동시에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례적으로 AI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거나 초기에 투자해 손을 잡는 합종연횡도 전개하고 있다.
◇유망 AI 기업 선점 전략…자회사 편입까지 추진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인수다. 산업계에서는 M&A를 통한 기술력 확보 사례를 종종 포착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은행권에서는 금산분리와 은행법상 겸영·부수업무 제한 때문에 외부 테크 기업을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주요 금융지주는 산하에 IT 계열사를 두고 있지만 이들은 은행이 IT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처음부터 설립한 자회사들이다. 하나금융티아이는 역시 서울은행이 설립했던 '서은시스템'이 하나금융과 서울은행 합병 과정에서 인수된 케이스다. 은행이 만든 IT 계열사라는 점은 동일하다.
하지만 AX 전환이 필수가 되면서 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농협은행이 애자일소다 인수라는 결정을 내렸다. 애자일소다는 B2B AI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이다. 단순 지분투자에 그치지 않고 내재화를 위해 자회사로 편입시킬 예정이다.
농협은행은 이달 안에 계약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금융업 고도화, 이용자 편의 증대 등 목적이라면 당국 신고절차를 거쳐 핀테크 기업을 인수할 수 있다는 은행법의 규정을 근거로 삼았다. 이렇게 인수를 단행한다면 AI 플랫폼과 개발 인력을 통째로 은행 안으로 옮길 수 있다.
KB금융도 비슷한 전략이다. 인수까지는 아니지만 유망한 기업을 초기에 발굴해 성장을 지원하고 협업까지 연결했다. NPU 기업 리벨리온이 대표적이다. KB금융은 2022년 리벨리온의 초기 투자에 참여했고 KB증권 등 계열사들이 리벨리온 후속 투자도 진행했다.
그 사이 리벨리온은 SKT 자회사인 사피온과 합병하면서 체급을 키웠다. 국민성장펀드 투자를 받았고 기업가치는 3조4000억원으로 평가됐다.
이에 KB금융은 최근 리벨리온과 전략적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NPU를 공급받아 그룹 내 AI 서비스 고도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아직은 금융사의 외부망 사용에 제약이 존재하는 만큼 내부망 AI 구축에 NPU를 공급하면 KB금융의 AX 전환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게 양사의 기대다.
◇손수 개발 더해 외부 용역까지…투트랙으로 공략 하나금융은 직접 개발하는 쪽에 가깝다. 하나금융티아이가 그룹 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인력과 노하우를 살린다는 계획이다. 주축은 하나금융이 2018년 하나금융티아이 산하에 세운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이다. 사내독립기업(CIC)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기술원은 AI 신용평가 모형부터 자산 포트폴리오 알고리즘, 문서를 읽는 컴퓨터 비전, 챗봇까지 전방위 AI를 개발하고 있다. 개발한 기술을 표준 플랫폼으로 만들어 금융 계열사에 적용시키는 업무를 맡고 있다. 수출입 서류 심사를 자동화한 AI-OCR '리딧'이 대표적이다.
신한금융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은행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내부 직원이 직접 자신의 업무에 쓸 AI 에이전트를 직접 만들어보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 중 실제 업무에 반영된 사례도 있다. 회계 처리를 돕거나 여신 심사 문의에 답하는 식이다. AI에 일을 시키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여러 AI 에이전트가 팀을 짜 앱을 개발하는 'AI 개발팀' 체계도 은행권 처음으로 들였다.
우리금융은 외부 기업에게 맡겼다. 우리은행은 올해 884억원짜리 'AI 에이전트 구축' 사업 공고를 냈고 삼성SDS를 사업자로 선정했다. 기업여신부터 자산관리, 내부통제 등 5대 영역에 175개가 넘는 AI 에이전트를 설치할 예정이다.
사업 기간은 14개월, 최대 16개월로 잡았다. 올해 연말까지 90여개의 AI 에이전트를 우선 구축한다. 그리고 늦어도 내년 8월까지는 175개 에이전트를 완성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다.
기간을 보면 우리은행은 AX 전환 속도를 내기 위해 외부 용역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은행도 외부에만 기대지 않는다. 자체 개발한 '심층 리서치'를 외부 모델과 묶어 쓴다. 외부 용역·모델 도입을 통한 속도와 내제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을 구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