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행원으로 입사하면 정년퇴직까지 이어진다는 '평생직장' 은행도 이제 옛말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떠나는 사람은 늘었는데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역으로 줄었다.
이런 흐름은 은행들이 역대급 실적을 경신하는 시점과 맞물려 더 역설적이다. 수익을 늘리려면 사람이 필요한데 반대로 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디지털과 AI가 있다. 기존에는 몇 명이 붙어야 했던 업무를 한 명이 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대면직의 수요도 점차 줄고 있다. 지금의 퇴직 러시가 딱 잘라 AI 때문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무관하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역대급 실적에도 은행원은 줄었다
지난해 5대 은행에서 희망퇴직으로 떠난 직원은 2470명이다. 1년 전보다 24% 늘어난 수치인 데다 최근 5년 가운데 가장 많다. 몇 해 동안 2000명 안팎을 오가다 지난해 처음 2400명을 넘어섰다.
반향이 컸던 건 대상 대상 연령이다. 은행들은 파격적으로 희망퇴직 신청 가능 연령대를 낮췄다. 신한은행은 신청 가능 연령을 1986년생까지 넓혔고 하나·농협은행은 만 40세 이상을 특별퇴직 대상에 올렸다.
조건은 오히려 빡빡해졌다. 대다수 은행이 최대 36개월치였던 희망퇴직금을 지난해 31개월치로 줄었다. 그런데도 떠나는 사람이 는 건 더 줄기 전에 나가는 게 낫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인당 평균 희망퇴직금은 3억4829만원, 법정 퇴직금까지 더하면 실수령액은 4억~5억원대로 추정된다.
채용은 반대다. 4대 은행 신규 채용은 지난해 1170명으로 2년 새 37.8% 줄었다. 특히 최근 신입사원 채용을 시작한 우리은행은 지역인재 전형만 열어뒀다. 출신 지역과 관계 없이 선발하는 일반 공채는 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올해 채용 규모는 작년 상반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비단 우리은행 뿐만이 아니다. 올해 신입 행원 채용의 대부분이 지역인재로 이뤄지고 있다. 신한은행도 일반직 공채 정원 20%를 지역인재로 선발한다 밝혔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180명과 비교해 올해 상반기 110명으로 채용 규모를 줄였다. 상반기 180여명 채용을 진행한 하나은행은 직전과 공채와 비슷한 규모를 유지했다.
이 양갈래 변화가 역대급 실적과 함께 벌어졌다. 지난해 4대 은행 당기순이익은 13조9909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었다. 성장보다 비용 효율과 생산성에 무게를 둔 셈이다.
◇사람 줄여도 비용은 늘어…당분간 투자 지속
디지털 전환은 숫자로 드러난다. 국내 은행 점포는 2018년 말 6794개에서 지난해 5523개로 줄었다. 7년 새 1271곳이 사라졌다. 최근 석 달간 영업점을 한 번도 찾지 않은 소비자가 절반을 넘었다.
빈자리는 AI가 메운다. 고객 상담, 여신 심사, 이상거래 탐지, 자산관리까지 자동화가 번지면서 손이 가던 일이 줄었다. 인력 수요 자체가 줄어든다는 분석이다.
다만 단순한 감축은 아니다. 지형이 바뀌는 쪽에 가깝다. 창구와 영업 인력은 줄지만 AI·데이터 같은 전문 인력은 오히려 늘린다. 업계서는 앞으로 영업 인력보다 기술 전문 인력을 중심으로 선별 채용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비용을 보면 알 수 있다. 판관비 중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는 분야인 인건비가 오히려 늘었다. 올 1분기 4대 은행 인건비는 2조303억원으로 한 해 전보다 4.8% 증가했다. 사람을 줄여도 인건비가 불어난 이유 중 하나는 고연봉 전문 인력 채용이다. 디지털 전환에 따라 △AI △보안 △법률 등 분야 인력이 늘어나면서 디지털 전환 비용이 인건비에도 얹어졌다.
단기적으로는 AI가 인건비를 눈에 띄게 줄여주지 않는 모습이다. 당분간은 AX를 위한 대규모 비용 투자도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프라인 점포 축소 추세와 맞물려 인건비와 투자비 상쇄 효과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은행 관계자는 "가장 큰 변화는 외부 전문직, 경력직 채용"이라며 "디지털, AI 분야에 맞춰 은행원이 아니던 사람들을 은행 내부로 모시기 위한 경쟁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순이익이 증가하는데 일자리는 줄어든다면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