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50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한다. 현대차그룹에 합류한 이후 첫 CB다.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이 모두 0%로 현금 이자 부담이 없는 구조다. 현대건설은 현금흐름부담이 커지며 올 1분기 순현금기조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자 출혈을 줄일 수 있는 조달수단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식시장이 호황인 만큼 시장의 반응도 뜨겁다. CB에는 콜옵션과 풋옵션 등 조기상환 관련 조건이 없고 주가하락과 관련된 리픽싱 조항도 빠졌지만 매수를 원하는 투자자들이 충분한 것으로 파악됐다.
◇콜·풋옵션 없는 구조, 주식시장 호황에 수요 충분 현대건설은 9일 이사회에서 312회 무기명식 무보증 사모 전환사채 5000억원 발행을 의결했다. NH투자증권 2000억원, 한국투자증권·키움증권 각 1500억원이 인수한다. 납입일은 7월 7일이다. 전환청구기간은 2027년 7월7일~2031년 6월7일로 내년부터 시작된다.
눈에 띄는 대목은 발행 조건이다. 기한이익상실사유를 제외하면 풋옵션·콜옵션 등 만기 전 상환 권리가 사채권자에게 부여되지 않았다. 현대건설의 자신감은 다른 조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환가액은 주당 15만607원으로 이사회결의일 전일 기준 가중산술평균주가의 115%에 해당한다. 게다가 시가 하락에 따른 전환가액 하향 조정(리픽싱) 조항도 없다. 전환 시 발행될 주식은 약 332만주로 기발행주식총수의 2.98%다.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은 0%다. 2031년 7월 만기까지 현금 이자 지출이 전혀 없으며 만기 시에도 원금의 100%만 상환하면 된다. 투자자 수익은 전적으로 전환권 행사를 통한 주가 차익에 의존하는 구조다. 조달 자금은 해상풍력, 태양광, SMR(소형모듈원전), 대형원전 등 뉴에너지 사업 운영자금으로 쓰인다. 올해와 내년에 각 2500억원씩 집행할 계획이다.
IB업계 관계자는 "CB에 콜옵션이나 풋옵션이 없는 것은 통상적인 사례는 아니다"며 "주식시장이 호황을 달리고 있는 만큼 조기상환 관련 옵션이 달리지 않더라도 투자자들이 이번 CB에 충분이 매력을 느낄만 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채로 조달하려면 4%가 넘는 금리를 줘야하는데 주식시장이 호황인 점을 활용해 기업과 투자자가 모두 윈윈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악화된 현금흐름에 이자비용 증가세까지 현대건설의 현금흐름은 악화되고 있다. 현대건설은 2022년부터 미분양 관련 공사미수금 회수 지연, 해외 플랜트부문 마일스톤 미도래 등으로 잉여현금흐름(FCF)이 저조한 수준을 이어왔다. 올 1분기에도 대형 주택현장과 해외 프로젝트 대금 미회수가 가중되며 FCF는 -7325억원을 기록했다. 3월 말 별도기준 공사미수금 잔액은 7조5000억원에 이른다. 순차입금도 3070억원으로 기존의 순현금 기조에서 순차입금 체제로 전환됐다.
현대건설은 기존에 별도기준 차입금이 2022년 -1조1267억원, 2023년 -3805억원, 2024년 -7357억원, 2025년 -4615억원으로 꾸준히 순현금 상태를 이어왔다. 2022년 1조6158억원이던 총차입금이 2024년 2조5150억원으로 불어난 뒤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동안 현금성자산이 2022년 2조7425억원에서 2024년 3조2507억원 늘어났다 2025년 2조9672억원, 2026년 1분기 2조1651억원으로 줄어든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자비용 증가세도 뚜렷하다. 올 1분기 별도기준 금융비용은 191억원으로 전년동기와 비교해 0.6% 줄었다. 순금융비용은 지난해 1분기 -213억원에서 -21억원으로 변화폭이 더 크다. 연결기준 이자비용은 435억원으로 전년 동기(303억원) 대비 43.6% 늘었다. 별도기준EBITDA/금융비용은 2022년 12.9배에서 2025년 4.9배로 하락한 뒤 올 1분기 6.4배로 소폭 반등했으나 과거 대비 여유가 줄었다.
EBITDA마진이 2025년 별도기준 2.3%에 머무는 등 수익성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이자비용까지 늘어나면 이익 잠식 폭이 커질 수 있다. 현금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 제로쿠폰 CB는 자금 조달과 비용 관리를 동시에 충족하는 선택지로 읽힌다.
현대건설은 올 1분기 유형자산 토지에 재평가모형을, 투자부동산에 공정가치모형을 각각 적용했다. 별도기준으로 재평가잉여금 1643억원, 이익잉여금 3800억원 등 총 5443억원의 자본이 늘었다. 이 덕분에 2025년 말 144.5%였던 별도기준 부채비율은 올 1분기 말 131.9%로 개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