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사이에서 손해보험사의 전략적 중요도가 한층 커지고 있다. 신한금융지주가 롯데손해보험 인수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하나금융지주는 앞서 예별손해보험 예비입찰에 참여하며 사업 확대 가능성을 타진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금융지주의 손보사 인수 움직임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모습이다.
최근 행보는 단순히 포트폴리오를 늘리는 차원과 거리가 있다. 소형 보험사를 인수해 디지털 손보사로 키우려던 전략만으로는 규모와 판매채널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어서다. KB금융지주의 선제적 인수, 농협금융지주의 자력 성장, 우리금융지주의 생명보험 집중까지 지주별 전략도 엇갈리면서 손보 포트폴리오의 차이도 선명해지고 있다.
◇소형 디지털사로 시작한 신한·하나, 성장 한계 직면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금융은 최근 롯데손보 인수를 놓고 적극적인 검토 단계에 들어갔다. 롯데손보를 인수해 취약한 손해보험 포트폴리오의 전환점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롯데손보는 장기보험 계약과 설계사, 영업망, 상품 제조와 보상 기능을 갖춘 중견사다. 거래가 성사되면 신한금융은 신한EZ손보를 자체 육성하는 것보다 빠르게 업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신한금융은 지난 2021년 10월 BNP파리바카디프손해보험 인수 계약을 체결한 뒤 이듬해 신한EZ손보를 출범했다. 디지털 채널과 제휴형 상품을 앞세워 그룹 내 손해보험업 기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소형사에 머문 외형과 취약한 장기보험 기반 탓에 종합손보사로서의 경쟁력은 여전히 열위에 있다.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보험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하나금융은 신한금융보다 앞선 2020년 더케이손해보험을 인수해 하나손해보험을 출범했다. 초기에는 디지털 종합손보사를 표방하는 등 신한금융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이후 장기보험과 대면 채널 확대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디지털 채널 중심의 초기 구상만으로 외형과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걸 보완하려는 행보로 보인다.
두 지주가 소형사를 택한 데는 중대형 매물이 드물었던 시장 환경도 작용했다. 낮은 비용으로 라이선스를 확보한 뒤 그룹 고객과 플랫폼을 활용하면 전통적인 판매 조직 없이도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보험업에서는 라이선스 확보와 신계약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영업 기반 구축이 별개의 과제다. 현재 신한EZ손보는 디지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장기보험 기반을 보강해야 하고 하나손보는 장기보험과 대면 채널 확대로 전환한 종합손보사 전략을 안착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하나금융의 예별손보 예비입찰 참여와 신한금융의 롯데손보 인수 검토는 기존 소형사의 성장 한계를 보완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예별손보가 기존 계약 관리와 정상화에 초점이 맞춰진 가교보험사라면 롯데손보는 장기보험 신계약과 판매채널을 보유한 계속기업이라는 차이가 있다.
손보 사업의 도약을 모색하는 신한금융에는 기존 계약 확대보다 신계약과 판매채널을 함께 확보할 수 있는 롯데손보가 더 적합한 매물로 평가된다. 하나금융은 예비입찰 이후 본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적합한 매물이 제한된 상황에서 당분간 하나손보의 자체 육성이 현실적인 선택지로 남았다.
◇중견사 인수, 자력 육성, 생보 집중…서로 다른 손보 전략 금융지주 손보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 곳은 KB금융이다. 2015년 LIG손해보험을 인수해 단숨에 규모와 판매채널을 갖춘 종합손보사를 확보했다. 장기보험과 자동차보험, 판매 조직을 한꺼번에 편입한 KB손보는 이후 그룹의 비은행 핵심 계열사로 성장했다. 적정한 대형 매물을 조기에 확보한 선택이 손보 사업의 출발점부터 다른 결과를 만들었다.
우리금융은 손보사 인수를 검토한 끝에 생보사 두 곳을 택했다. 2024년 롯데손보 예비입찰에 참여했지만 가격과 자본 부담 등을 고려해 본입찰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후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함께 인수해 현재 양사의 통합과 경쟁력 강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자산관리·연금 사업과 연계하기 수월한 생명보험사를 먼저 확보하고 손보사 부재는 당분간 유지하는 구도가 됐다.
농협금융은 외부 보험사를 사들이지 않고 기존 공제사업을 손보사로 전환했다. 농협중앙회 공제사업에서 출발한 농협손보는 지역 농·축협 영업망과 농업정책보험이라는 독자적인 기반을 활용해 자력으로 외형을 키웠다. 그룹 내부에 이미 존재하던 계약과 채널을 보험사 성장 동력으로 바꾼 사례다.
금융지주의 손보 사업은 중대형사 인수, 소형 디지털사 육성, 공제사업 분사 등 출발 방식에 따라 성장 속도와 위상이 크게 갈렸다. 현재 시장에는 계약과 판매망을 온전히 갖춘 중견 손보사 매물도 흔치 않다. 신한금융의 롯데손보 인수 여부가 소형사 자체 육성에서 중견사 인수로 이어지는 전략 전환의 시험대로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