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글로벌 보험사가 국내 시장에서 잇따라 발을 빼고 있다. 성장 둔화와 치열한 경쟁, 규제 환경에 부담을 느껴서다. 반면 국내 금융계는 이들이 내놓은 보험사를 인수해 보험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데 활용했다. 오렌지라이프와 푸르덴셜생명, PCA생명은 국내 자본 아래에서 중요한 전략 자산으로 부상했다. 주요 인수 사례를 점검해 외국계 보험사 M&A가 어떻게 국내 금융사의 보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는지 짚어본다.
국내 보험업계에서 외국계 보험사의 존재감이 빠르게 줄고 있다. 이미 여러 글로벌 보험사가 한국 사업을 접은 데 이어 BNP파리바카디프생명과 AXA손해보험의 매각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저성장과 치열한 경쟁, 규제 대응 부담이 맞물리면서 한국 사업의 우선순위를 낮추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외국계가 내놓은 보험사는 국내 금융사에는 새로운 확장 수단이 됐다. 신한금융과 KB금융, 미래에셋생명은 과거 글로벌 보험사에서 나온 매물을 사들여 보험 포트폴리오를 강화했다. 최근 우리금융까지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편입하면서 외국 자본이 보유했던 보험사의 국내 금융그룹 재편이 한층 뚜렷해졌다.
◇저성장, 경쟁 격화, 규제 부담에 엑시트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외국계 보험사 중 매물로 거론되는 곳은 BNP파리바카디프생명과 메트라이프생명보험, AXA손해보험 등이다. 국내에 법인을 두고 영업하는 외국계 보험사는 올해 2분기 기준 생명보험사 6곳과 손해보험사 2곳 등 8곳에 그친다. 한때 10곳을 웃돌았지만 2010년 이후 주요 글로벌 보험사의 이탈이 이어졌다.
원매자의 구체적인 움직임이 확인된 곳은 카디프생명과 AXA손보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카디프생명 인수를 위한 주요 조건 협상을 마무리하고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 라이선스와 변액보험 중심 사업 구조가 전략적 가치로 꼽힌다. 교보생명도 AXA손보 인수 자문사 선정에 착수해 금융지주사 전환 이후 손해보험 포트폴리오를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메트라이프생명은 최근 몇 년간 잠재 매물로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본사로 이어진 대규모 배당을 계기로 매각 가능성이 다시 거론됐다. 높은 자본건전성과 변액보험 경쟁력을 갖춘 만큼 실제 매물로 나올 경우 금융그룹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에 벌어진 현상이 아니다. ING그룹은 지난 2013년 ING생명을 MBK파트너스에 넘겼고 알리안츠는 2016년 한국 법인을 중국 안방보험에 매각했다. 미국 푸르덴셜도 지난 2020년 푸르덴셜생명을 KB금융에 넘겼다. 영국 푸르덴셜그룹도 2017년 PCA생명을 미래에셋생명에 매각했다. 장기적으로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장에 자본을 재배치하기 위함이었다.
한국 보험산업의 성장성 둔화는 외국계의 사업 재편을 자극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신규 고객 확대가 쉽지 않은 데다 국내 금융그룹 계열 보험사와의 경쟁, 상품·영업 관련 규제에 대한 현지 대응 부담도 적지 않다. 글로벌 본사 입장에서는 한국 법인에 추가 자본을 투입하는 대신 성장 여력이 높은 지역으로 자원을 재배치할 유인이 커진 셈이다.
◇신한·KB라이프 대형사로 재편…외국계 흡수해 경쟁력 강화 국내 금융사들은 보험 경쟁력을 단기간에 확보하기 위해 외국계 보험사를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신규 보험사를 처음부터 키우는 것보다 기존 계약과 고객, 판매 조직, 라이선스를 한꺼번에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인수 이후에는 각 그룹이 필요로 하는 영역에 맞춰 합병하거나 기존 강점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재편했다.
신한금융과 KB금융은 외국계 생명보험사 인수를 계기로 그룹 내 보험사업의 체급을 끌어올렸다. 신한금융은 ING생명의 후신인 오렌지라이프를 인수한 뒤 신한생명과 합쳐 신한라이프를 출범했다. KB금융도 푸르덴셜생명을 인수한 뒤 KB생명과 합병해 KB라이프로 재편했다. 두 곳 모두 외국계 보험사가 갖춘 전속설계사 조직과 보장성보험 경쟁력을 기존 금융그룹의 고객 기반과 결합하면서 대형 생명보험사로 입지를 넓혔다.
미래에셋생명은 PCA생명을 인수해 변액보험과 자산운용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PCA생명의 변액보험 기반을 기존 사업과 결합하면서 그룹의 자산관리 역량과 보험 상품을 연결할 수 있는 기반을 넓혔다. 우리금융도 중국 다자보험그룹에서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인수해 단숨에 보험업 외형을 확보했다.
외국계 보험사 M&A는 파는 쪽과 사는 쪽의 서로 다른 전략이 맞닿아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본사에는 자본 회수와 지역별 사업 재조정의 수단이지만 국내 금융사에는 필요한 보험 역량을 빠르게 확보하고 기존 포트폴리오의 빈틈을 메울 선택지가 된다. 카디프생명과 AXA손보를 둘러싼 최근 움직임 역시 과거 외국계 보험사 M&A가 반복해 온 흐름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