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계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오너 위주로 경영승계 판도가 짜이지만 금융권은 사정이 다르다. 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정해져 있어 권한 분산과 승계 구도를 염두에 둬야 한다. 부회장, 부문장, 부사장 등으로 불리는 임원들은 현직 회장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차기 CEO 후보로 꼽히곤 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승계 프로그램은 지배구조 선진화 척도이기도 하다. 금융지주 경영승계 시스템 현황과 최근의 변화를 분석했다.
하나금융은 4대 금융지주 중 유일하게 부회장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 2024년 조직 개편에서 부회장 직제 마무리를 선언하고 부문 임원 체제로 전환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3인의 부회장이 재직 중이다. 부문 임원제 선언 후 부회장을 대외적으로 부문장으로 칭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으나 현재는 그룹 안팎에서 부회장으로 통용된다.
부문 임원제 전환 시도는 부회장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부정적인 시각에서 비롯됐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부회장 제도의 존재로 외부 인사의 금융지주 CEO 도전 기회가 차단된다고 지적했다. 하나금융은 최근 개시된 CEO 승계 프로그램에서 외부 인사를 배려하는 절차를 추가하면서 부회장 제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했다.
◇금융권 최초 '외부 후보-회추위' 간담회 개최
하나금융은 총 3명의 임원에게 부회장 직위를 부여하고 있다. 이승열 부회장, 강성묵 부회장(하나증권 대표 겸직), 이은형 부회장 등 3인이다. 이중 이승열 부회장과 강 부회장은 지주 사내이사로도 등재돼 있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과 사내이사 삼각편대를 구축해 다른 임원들과 차별화된 위상을 갖고 있다.
*하나금융그룹 부회장 3인
이승열 부회장과 강 부회장은 최근 개시된 대표이사 회장 경영승계 프로그램에서 숏리스트 후보군에 선정됐다. 연임에 도전하는 함 회장과 함께 숏리스트를 구성했다. 회장, 부회장으로 3인의 내부 후보가 구성된 셈이다.
내부 후보 구도만 놓고 보면 과거 도마 위에 오른 '참호 구축'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 당국은 현직 회장이 연임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임명한 임원들과 경쟁하고 별다른 견제 장치를 두지 않으면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고 봤다. 대외적으로 경쟁 구도를 띄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승계 프로그램이 회장의 제왕적 권한을 유지하는 쪽으로 작동한다는 비판이 나오곤 했다.
이 원장이 부회장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내놓은 것도 부담으로 작용할 법하다. 그는 2023년 11월 내부 후보를 육성하고 검증하는 부회장 제도가 이른바 회장의 '셀프 연임'보다는 낫지만 외부 인사 발탁 기회를 차단하는 폐쇄성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24년 조직 개편에서 하나금융의 부문 임원제 전환 시도로 이어졌다.
금융 당국을 의식하고 있음에도 하나금융이 부회장 제도를 유지하고 경영승계 프로그램에 부회장 후보를 추가할 수 있었던 건 외부 후보를 배려하는 절차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최근 경영승계 절차를 개시하면서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외부 후보만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간담회에선 외부 후보와 회장후보추천위원 간 대면 접촉 기회가 제공됐다. 간담회 개최로 외부 후보가 최종 면접 준비와 관련해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배구조 모범관행 준수…승계 후에도 부회장직 유지 전망
간담회는 금감원 주도로 마련된 지배구조 모범관행 원칙을 준수하는 차원에서 준비됐다. 금감원은 금융지주가 CEO 경영승계 절차를 진행할 때 외부 후보에게 불공평하지 않은 절차를 마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하나금융과 같이 내부후보에게 부회장직을 부여하고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는 외부 후보자에게 이사회 접촉 기회를 제공하라고 명시했다.
금감원은 이사회 접촉 기회 예시로 비상근 직위 부여, 은행 역량개발 프로그램 참여를 꼽았다. 다만 경영승계 절차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후보로 염두에 둔 외부 인사에게 직위를 부여하거나 행내 프로그램 참여를 권유하는 건 쉽지 않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하나금융은 회추위원과의 간담회 기회 제공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봤다.
하나금융은 숏리스트 선정에 앞서 구성한 롱리스트 후보 12명을 선정할 때도 내외부 후보간 형평성을 고려했다. 롱리스트는 총 12명으로 내부 6명, 외부 6명으로 구성됐다. 숏리스트 후보도 현직 회장을 제외하면 내부에서 2명, 외부에서 2명이 뽑혔다. 공정성 논란을 차단하려는 하나금융 회추위 차원의 노력으로 풀이된다.
하나금융 부회장 직제는 이번 경영승계 절차가 마무리된 후에도 유지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승열 부회장은 미래성장부문, 강 부회장은 시너지부문을 맡고 있다. 이승열 부회장이 하나은행장에서 퇴임하고 부회장직에 전념하면서 미래성장부문 산하 본부가 늘어났다. 시너지부문은 올해 그룹 역점 과제인 그룹사간 시너지 창출을 담당한다. 부회장들의 역할에 맞춰 조직이 개편된 만큼 직제에 갑작스런 변화를 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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