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는 최근 현금흐름 감소가 두드러진다. 주력 IP(지적재산권)인 리니지가 노후화한 데다 새 히트작을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 1조원짜리 신사옥에 들어가는 비용도 부담이다. 부지를 살 때만 해도 영업현금이 두 배로 점프하면서 상승세를 달렸는데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보유현금 왜 줄었나, 리니지IP 부진 2025년 1분기 말 엔씨소프트의 연결 현금성자산은 1조5111억원을 기록했다. 단기금융상품과 단기투자자산을 포함한 금액이다. 작년 말보다 소폭(325억원) 많아졌다. 장기투자자산 일부의 만기가 1년 안쪽으로 다가오면서 단기로 재분류됐고 이자수익과 배당수익이 들어온 덕분이다.
하지만 사업으로 벌어들인 현금 유입은 오히려 대폭 축소됐다. 1분기 말 기준 영업활동현금흐름이 3억원 남짓에 그쳤다. 마이너스(-)를 겨우 면한 셈이다. 순이익이 지난해 동기(571억원)보다 급감한 374억원에 그쳤을 뿐 아니라 현금 회수도 늦어졌다.
엔씨소프트의 매출채권은 1분기에 285억원 늘어나면서 현금흐름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스팀과 아마존의 정산주기가 통상적으로 각각 30일, 60일이다보니 3월 말까지 현금화되지 않은 매출채권이 쌓인 것으로 보인다. 구글, 애플 등 상대적으로 정산이 빠른 모바일 매출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애초 이 회사는 리니지 IP를 핵심적인 수익기반으로 보유, 외형을 꾸준히 확대해왔다. 하지만 엔데믹이 찾아온 2023년 즈음을 기점으로 국내 모바일게임 이용자들의 이용율 자체가 줄었고 리니지도 노후화를 피하지 못했다.
실제로 리니지M, 리니지2M 리니지W 등 리니지IP에 바탕한 모바일게임 3종의 매출은 2022년 1조8600억원을 넘었지만 지난해 9000억원 수준에 그쳤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3개 개임의 합산매출은 2037억원이다. 2024년 같은 기간보다 400억원 이상 감소했다.
신작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23년 출시한 TL(쓰론 앤 리버티과 2024년 출시한 호연, 저니 오브 모나크 등이 모두 부진한 성과를 냈다. 작년 10월 아마존을 통해 퍼블리싱한 ‘TL 글로벌’ 역시 매출이 빠르게 떨어졌다.
현금창출력이 약화한 영향은 현금흐름에 그대로 나타난다. 2022년 7400억원에 육박했던 영업현금이 작년까지 2년 연속으로 1000억원대에 불과했다. 잉여현금(배당금 지급 후 기준) 역시 올해로 3년째 순유출(-)을 기록하고 있다. 현금성자산이 2022년 2조4300억원에 달했다가 올해 1조5000억원대로 1조원 가까이 줄어든 배경이다.
◇신사옥 건립비용, 부지까지 '1조'…엔씨타워 팔아도 역부족 회사 측은 지난해 두차례의 구조조정으로 인원을 4900명 정도로 15% 줄이고 옛 사옥인 엔씨타워I 매각에 나서는 등 비용 효율화, 유동성 확보에 노력해왔다. 엔씨타워I은 퍼시픽자산운용컨소시엄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해 매각작업을 진행 중이며 거래가는 약 4500억원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엔씨타워I 매각대금이 고스란히 새 사옥 마련에 쓰인다는 점이다.
엔씨소프트는 임직원을 한 곳에 통합하겠다는 목표로 2020년부터 RDI센터 건립을 추진해왔다. 그 해 삼성물산 등과 컨소시엄을 결성해 분당 삼평동 일원의 부지를 8377억원에 사들였다. 이중 50%를 엔씨가 쓰기로 했기 때문에 대금 역시 절반인 4300억원가량을 부담했다. 건물 착공엔 지난해 상반기 돌입했으며 완공시점인 2027년까지 58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한다. 엔씨타워I 매각대금을 전부 써도 1000억원 이상 모자란 셈이다.
물론 당장의 유동성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엔씨소프트는 2021년 RDI센터 토지매입 대금으로 사용하려고 발행했던 회사채 1700억원을 제외하면 빚이 전무한 상태다. 리스부채를 합쳤을 때 총차입금은 3764억원. 사실상의 무차입 상태로 순현금만 계산해도 1조1300억원 이상을 쥐고 있다.
하지만 충분하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보유현금을 두둑이 쌓아놔야 하는 것은 게임산업의 대표적 특징인데, 매출이 메가흥행작에 편중돼 있는 만큼 신작이 실패했을 때 가뭄기를 버틸 완충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인수합병(M&A) 등으로 히트 IP를 선점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면 단숨에 수천억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실제로 엔씨소프트는 M&A 대한 의향을 수차례 강조해왔다. 리니지를 대신할 신규 IP를 찾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사옥 건립비용으로 거금이 나가는 상황은 만만찮은 부담이란 뜻이다.
다만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지난해 인건비 절감 등을 통해 레거시IP(리니지)만으도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고 내년 초까지 스핀오프 게임과 신규IP 4개를 출시할 계획”이라며 “이밖에 M&A 논의를 적극적으로 진행 중인데 머지않아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