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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자사주 보유·처분 공시가 강화됐다. 자사주 보유 비중이 발행주식총수 5% 이상인 상장사는 보유 현황과 목적, 향후 처리 계획 등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이사회 승인을 받고, 해당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 자사주를 처분할 때는 처분 목적, 처분 상대방과 선정 사유, 예상 주식가치 희석 효과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최근에는 정부와 여당 주도로 자사주 원칙적 소각에 대한 법제화가 논의되면서 자사주 소각과 활용법이 주목받고 있다. thecfo가 주요 그룹의 자사주 보유 현황과 활용법에 대해 살펴본다.
SK그룹 지주사 SK가 자사주를 우호지분으로 활용한 역사는 길다. 지배주주의 비교적 낮은 지분율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옛 SK 시절에는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자사주를 꾸준히 사모았다. 옛 SK를 흡수합병할 때는 '합병의 묘(妙)'를 발휘해 자사주를 만들어냈다.
정부와 야당 주도로 자사주의 원칙적 소각이 추진되면서 SK에 대한 지배주주의 지배력 유지 여부가 관건으로 부각된다. 현재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자 지분에 자사주를 더하면 발행주식총수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친다. 하지만 보유 자사주를 모두 소각할 경우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자 지분은 발행주식총수의 33%가 돼 지배주주의 지배력이 실질적으로 하락한다.
◇SK·SK디스커버리 높은 자사주 비율…'합병의 묘' 살린 자사주 확보 SK그룹 지주사를 포함한 주요 계열사의 자사주 보유 현황을 살펴보면 양대 지주사의 발행주식총수(보통주와 종류주 포함)에서의 자사주 비율이 높은 편이다. 특히 최태원 회장이 최대주주(지분율 17.90%)인 SK의 자사주 비율이 24.61%(2025년 4월 2일 기준)로 높다. 최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이 최대주주(38.94%)인 SK디스커버리의 자사주 비율은 3.25%(2025년 3월 11일 기준)다.
다만 SK디스커버리는 지난 3월 자사주 일부(48만4000주)를 소각해 자사주 비율이 크게 줄었다. 소각 직전까지만 해도 자사주 비율은 5.58%였다. 소각 후에도 자사주 장내 취득이 진행 중이다. 이번 취득 예정 자사주(86만5769주)를 고려하면 자사주 비율은 7.66%로 늘어난다.
SK가 자사주를 대량으로 보유하게 된 것은 SK그룹의 지배구조 정비 작업과 관련이 있다. SK그룹은 애초 SK C&C가 지주사인 옛 SK를 지배하는 옥상옥 구조였다. 그러던 것을 2015년 8월 SK C&C가 옛 SK를 흡수합병하면서 현재의 SK가 됐다.
옛 SK는 합병 전에도 자사주 취득에 적극적이었다. 합병 직전 자사주 비율이 23.56%(1118만4650주)였다. 이를 두고 2003~2005년 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과 치른 경영권 분쟁이 계기가 됐다는 시각이 많다. 당시 옛 SK는 자사주를 대량으로 취득한 후 우호세력에 매각해 의결권을 살리는 방법으로 경영권을 지켜냈다. SK C&C도 주가 안정을 명목으로 자사주를 장내에서 꾸준히 취득했다. 합병 직전 자사주 비율은 12.0%(600만주)였다.
다만 합병 직전인 2015년 4월 SK C&C는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전량을 소각했다. 더불어 합병 때는 옛 SK가 보유하고 있던 보통주 자사주(1118만4246주)에 대해 합병신주를 배정하지 않았다. 합병신주 미배정은 소각과 같은 효과가 있다.
그렇다면 현재 SK가 보유한 자사주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여기에는 '합병의 묘'가 깔려있다. SK C&C는 옥상옥 구조를 통해 보유하고 있던 옛 SK 지분 31.82%(1494만4432주)에 합병신주를 배정했다. 이 지분이 합병비율(1 대 0.74)대로 SK C&C 자사주 1101만817주로 전환되면서 현재 SK 자사주의 근간이 됐다.
SK디스커버리의 경우 옛 SK케미칼 시절부터 주가 안정을 명목으로 자사주를 장내에서 취득해왔다. 2017년 12월 SK케미칼을 인적분할하면서 지주사로 탈바꿈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자사주 비율은 11.93%(323만6603주)였다.
하지만 SK케미칼 인적분할 직전인 2017년 6월 보유 자사주 중 193만9120주는 소각하고 나머지 129만7483주는 투자재원 마련을 위해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로 처분했다. 이 때문에 현재 SK디스커버리가 보유한 자사주는 모두 SK케미칼 인적분할에 따라 지주사로 탈바꿈한 이후 장내에서 수차례에 걸쳐 취득한 물량이다.
◇지배주주 우호지분 역할…전량 소각시 지배주주 지배력 관건 최근 정부와 여당 주도로 자사주의 원칙적 소각이 추진되고 있다. 상법 개정안마다 포함 여부에 차이는 있지만 굳이 상법이 아니더라도 자사주의 원칙적 소각이 어떤 방식으로든 법제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다만 원칙적 소각 범위가 신규 취득 자사주만 해당되는지 또는 기존 보유 자사주도 해당되는지 여부는 아직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또 기존 보유 자사주가 원칙적 소각 범위에 해당된다면 소각에 주어질 기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자사주 비율이 낮아질 경우 관건은 지배주주의 지배력 유지 여부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실질적으로 지배주주의 우호지분 역할을 해왔다. 자사주가 많을수록 유통주식수가 그만큼 줄어들어 비지배주주가 확보할 수 있는 주식도 줄어든다. 지배주주로서는 돈을 들이지 않고도 회사 돈을 이용해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효과를 얻는 셈이다.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매각한다면 옛 SK 사례처럼 의결권이 살아나면서 실제 우호지분을 확보할 수도 있다.
SK디스커버리의 경우 자사주 비율이 3.25%이며 취득 예정 자사주를 고려하면 7.66%이지만 전량 소각해도 최 부회장의 지배력 유지에 문제가 없다. 현재 최대주주인 최 부회장의 지분율이 38.94%(765만5910주)이며 특수관계자까지 포함한 지분율은 47.84%(940만6435주)로 절반에 조금 못 미칠 만큼 높기 때문이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63만9604주)를 전량 소각해도 최 부회장의 지분율은 40.25%, 특수관계자까지 포함한 지분율은 49.45%가 된다.
반면 SK의 사정은 다르다. 자사주 비율이 24.61%에 이르는 반면 최대주주인 최 회장의 지분율이 17.76%(1297만5472주)로 자사주 비율을 밑돌기 때문이다. 특수관계자까지 포함한 지분율은 25.27%(1846만1985주)다. 최 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자 지분율에 자사주 비율을 합치면 49.88%이므로 지배력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를 전량 소각할 경우 최 회장의 지분율은 23.55%, 특수관계자까지 포함한 지분율은 33.51%로 각각 상승한다. 그럼에도 우호지분 역할을 해온 자사주가 없어지면서 실질적으로는 지배력이 기존 49.88%에서 33.51%로 하락하는 효과를 낸다.
이에 대해 SK 측은 "(자사주 소각 관련해)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