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의 전례없는 호황에 현대로템이 현금을 빠른 속도로 늘리고 있다. 조단위 빚을 지고 있던 시절은 옛말이다. 최근엔 9조원에 달하는 수주 낭보를 또 가져왔다. 계약 진행에 따른 운전자본부담은 불가피하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다.
현대로템은 올해로 3년째 순현금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대규모 영업손실을 냈던 2019년만 해도 순차입금이 1조원을 넘겼는데, 그간 유동성을 쌓으면서 빚보다 현금이 더 많아졌다. 재무 개선이 시작된 것은 2020년부터다.
당시 현대로템은 실적에서 저가 프로젝트 비중이 줄고 수익성 좋은 방산 비중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또 같은 해 유휴부지 일부를 현대모비스에, 자회사 그린에어 지분을 현대제철에 매각하면서 1690억원 남짓한 대금을 받았다. 전환사채 주식전환과 토지재평가를 통해 4900억원 규모의 자본을 확충하기도 했다.
여기에 대형 수주로 들어온 선수금 역시 현금흐름에 숨을 불어넣었다. 현대로템은 2022년 7월 폴란드 군비청과 파생전차 1000대 등 군수품을 납품하는 내용의 기본계약을 260억원달러 규모로 체결했다. 한달 뒤엔 폴란드 군비청에 K2전차 180대를 공급하는 1차 실행계약(K2 Gap-Filler)을 맺었다. 33억6000만달러 규모다.
계약에 따라 현대로템은 수주금액의 30%를 3회에 걸쳐 받았다. 덕분에 2019년 7000억원대에 불과했던 현대로템의 선수금(계약부채 포함)은 2023년 말 1조7900억원 규모로 뛰었다. 선수금이 유입되면서 2021년 적자였던 잉여현금은 2022년 6682억원 흑자로 전환, 2023년엔 653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엔 잉여현금(배당지급액 제외 기준)이 165억원으로 급격히 쪼그라들었지만 부정적 신호로 보긴 어려웠다. 미리 받은 계약금이 소진되고 수주 프로젝트가 진척되자 운전자본투자가 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운전자본투자액은 5411억원이 빠져나갔고 공장 등에 대한 투자에도 1000억원 이상을 썼다.
현대로템은 올해 역시 1분기 말 기준 선수금이 1000억원가량 줄었다. 하지만 잔금이 순조롭게 회수된 덕분에 잉여현금은 1000억원대로 다시 늘었다. 운전자본 부담에도 불구 보유현금이 증가세를 유지한 배경이다.
앞으로 공급 일정을 감안하면 추가적인 현금흐름 개선은 시간문제로 여겨진다. 올해의 경우 3월까지 K2전차 110대를 폴란드에 납품했고 나머지도 연내 공급할 예정이다. 비용투입 스케줄에 따르면, 늦어도 내년에는 물품대금이 제작에 들어가는 자금을 상회할 것으로 짐작된다.
최근엔 폴란드와 K2전차 관련 2차계약에 대해 협상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계약 물량은 1차와 동일한 180대로 알려졌다. 계약금액은 65억달러(약 8조8000억원)로 역대 최대 수출 기록이다. 기본계약 1000대 가운데 360대를 따왔으니 앞으로도 추가 수주할 수 있는 물량이 600여대 남아 있다. 회사 측은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은 최종계약을 체결할 때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현대로템은 K2전차 2차계약의 진행에 따라 운전자본과 CAPEX(설비투자) 부담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5년 동안 생산능력 증설과 MRO( 유지·보수·정비)사업 등에 연간 2000억원 정도를 지출할 전망이다. 수출물량 외에 차세대 무기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도 예정돼 있다. 하지만 충당하기 어렵지않을 만큼 현금을 넉넉히 쌓았다.
올 3월 말 현대로템의 현금성자산은 연결 기준 7641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총차입금은 2583억원에 불과했다. 2019년 1조5000억원을 넘었던 차입금을 꾸준히 갚은 덕분이다. 계산하면 순현금만 5058억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