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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신화 완성한 정부 역할

고진영 기자  2025-09-08 07:55:09
“왜 하루에도 열 번씩 '스티브 잡스는 천재'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거지?”

영화 <스티브 잡스>에서 천재 엔지니어 워즈니악이 묻는다. 코드도 짤 줄 모르고 디자이너도 아닌데다 망치질 하나 못하는 잡스. 그가 하는 일이 대체 뭐냐는 의문이다. 잡스는 간단히 답한다. “난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넌 훌륭한 연주자고.”

산업의 룰을 새로 쓰려면 비저너리(visionary), 혁신의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잡스를 둘러싼 신화엔 항상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 정부의 역할이다.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만드는 부품들, 그러니까 터치스크린이나 인터넷, GPS(위치정보시스템) 등은 모두 정부가 발전시켰다. 최근 수십년간 있었던 급격한 기술변화 역시 대부분 국가에 자금원천이 있다. 테슬라의 전기차 기술을 미국 에너지부 보조금이 키워냈고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은 국립과학재단(NSF)이 도와 완성될 수 있었다.

모든 분야에서 위협적인 중국도 마찬가지다. 20여년간 전기차에 쏟아부은 재정 규모만 수백조원으로 추정된다. 더 중요한 건 통계에 안잡히는 간접 지원이다. 예를 들어 저렴한 산업용 전기는 엄청난 원가 우위를 제공해준다. 국내 배터리업계에서 한숨이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가장 약한 고리는 음극재에 있다. 전기차용 음극재 점유율은 중국이 95%로 압도 중이고 한국 점유율은 2.8% 수준에 그친다. 국내 배터리3사조차 중국산 음극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국산 음극재엔 발만 걸쳐놓은 수준인데, 중국산이 훨씬 싸기 때문이다.

지금 국내에서 전기차배터리용 흑연계 음극재는 포스코퓨처엠이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문제는 음극재 자립은 문턱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중국이 가격을 갑자기 올리거나 공급을 멈추기라도 하면 국내 배터리회사들은 낭패를 본다.

물론 정부도 ‘한국판 IRA(인플레이션감축법)’를 검토하곤 있다. 하지만 업계 기대를 채우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국내에서 만들어 국내 소비되는’ 제품에 대해서만 세액공제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의 현실을 외면한 탁상공론이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배터리나 소재의 절대다수는 해외로 팔린다.

요즘 배터리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정책에서 소외됐다는 불안함을 말한다. 도움은 간절한데 반도체나 조선에 밀려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에서 패권을 놓쳤다간 되돌리기 어렵다.

잡스의 무대를 세워준 게 정부였듯, 국가 없이는 산업의 도약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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