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그룹의 CFO는 10대 그룹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은축에 속한다. 풍부한 연륜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재무운용을 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포스코그룹 CFO들은 학력 성분도 고르게 나누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그룹 CFO들의 주요 졸업학교인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의 비중은 10대 그룹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도 집계됐다.
THE CFO는 공정자산총액 기준 상위 10대 기업집단(NH농협 제외)의 주요 상장사 102곳에서 일하는 CFO들을 조사했다. 이 중 포스코그룹 계열사의 CFO는 6명이다.
이들의 평균 출생연도는 1968.67년으로 삼성(1967.75년), LG(1968.55년)에 이어 3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그룹 전체 CFO의 평균 출생연도는 1970.41년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정경진 포스코인터내셔널 CFO가 1965년생으로 최연장자이고 이광기 포스코엠텍 CFO(1966년생), 김승준 포스코홀딩스 CFO(1967년생), 정대형 포스코퓨처엠 CFO(1968년생), 최태환 포스코DX CFO(1970년생), 정연수 포스코스틸리온 CFO(1976년생)가 뒤를 따랐다.
60년대생의 비중이 약 67%를 차지한 것이다. 10대그룹 전체 CFO 가운데 60년대생 비중(44%)을 크게 웃돌았다.
포스코그룹 CFO들은 대부분 지주사 본사에서 전략기획 및 재무 부문을 거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승준 포스코홀딩스 CFO는 포스코 경영기획실과 투자전략실장을 지냈으며 최태환 포스코DX CFO는 포스코 경영기획실에서 경영혁신그룹장을 맡은 적 있다. 정연수 포스코스틸리온 CFO도 포스코 경영전략실 경영진단그룹장 출신이다. 정경진 포스코인터내셔널 CFO는 포스코홀딩스 재무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풍부한 경륜은 곧 그룹의 신뢰로 이어졌다. 포스코그룹 CFO 가운데 김승준 포스코홀딩스 CFO를 제외한 5명 모두가 사내이사다. 6명 가운데 5명이 사내이사로, 비중은 83%에 이른다. 10대그룹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비중이다. 당분간 임원인사가 없다면 3월 정기주주총회 이후로도 이 비중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편 포스코그룹 CFO들의 학사 기준 학력은 고른 분포를 보였다. 10대그룹 전체 CFO들의 학사 기준 학력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중 한쪽에 치중된 점과는 대비된다.
포스코그룹 CFO 6인 가운데 학사 기준 학력을 공개한 CFO는 4명이다. 김승준 포스코홀딩스 CFO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왔으며 정대형 포스코퓨처엠 CFO가 연세대 경영학과, 정경진 포스코인터내셔널 CFO가 중앙대 경제학과, 정연수 포스코스틸리온 CFO가 경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포스코그룹 CFO들이 강세를 보인 분야는 석사 이상 학위다. 6명 가운데 5명이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다. 비중으로 치면 약 83%로 10대그룹 가운데 가장 높았다. 석사 이상 CFO의 비중이 50%를 넘긴 10대 그룹은 포스코 이외에 한화(60%) 뿐이었다. 10대그룹 전체 CFO 가운데 석사 이상 학위 보유자는 38명으로 비중은 37%였다.
김승준 포스코홀딩스 CFO가 서울대 경영학 석사, 정경진 포스코인터내셔널 CFO가 서강대 경영학 석사, 최태환 포스코DX CFO가 미국 미시건대 MBA 석사, 이광기 포스코엠텍 CFO가 포스텍 기술경영학 석사, 정연수 포스코스틸리온 CFO가 한국외대 경영학 석사를 각각 소지하고 있었다. 특기할 만한 점은 포스텍 석사가 한 명 뿐이라는 것이다.
포스코그룹 CFO 가운데 이색 경력을 지닌 인물도 주목할 만하다. 우선 이광기 포스코엠텍 CFO는 ESG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인다. 그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속가능경영에 대해 강연을 종종 펼쳤으며 ESG 관련 언론 기고를 낸 적도 있다.
최태환 포스코DX CFO의 경우 글로벌 전문가로도 평가받는다. 그는 2013~2018년 포스코 캐나다 법인에서 리더 직위로 일한 바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인턴십 과정에 참여하던 외국인 대학생에게 홈스테이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포스코그룹 창업공신인 고(故) 최주선 전 고문의 아들이기도 하다. 최 전 고문은 포스코아메리카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으며 한영과 영한 동시통역에 능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