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주식을 바탕으로 대규모 교환사채(EB)를 발행하는 작업이 더욱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지난 10월 공시 의무가 강화된 이후 주요 대형 증권사들은 수천억원을 자사주 EB로 조달할 수 있는지 묻는 발행사들의 문의에 대체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수백억원대의 자사주 EB 대비 주가 낙폭이 크고 금융당국의 눈초리도 집중되면서 발행 자체가 어렵다는 취지로 안내하는 분위기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까지 발의되자 무게를 실었던 영업 드라이브도 한발 물러선 모습으로 관측된다.
◇대규모 자기주식 EB 연달아 철회…대형 증권사도 "어렵다" 안내 2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전날 사모 교환사채(EB) 발행을 철회했다. 자기주식 27만1769주를 기초로 3186억원을 조달하고자 했지만 주주가치 제고와 충돌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태광산업 측은 "자사주 소각 등에 대한 정부 정책 기조와 주주가치 보호라는 측면에서 결정을 철회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자기주식 EB를 발행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모습이다. 지난 9월에는 KCC가 자기주식 88만2300주를 교환 대상으로 약 4000억원에 달하는 EB 발행을 추진했지만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철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형 하우스들의 스탠스 변화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소각 의무화에 앞서 조달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영업 전선에 고삐를 쥐어 왔지만 근래 힘을 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대형사 커버리지 팀장은 "수천억원을 자사주 EB로 조달하는 것은 이제 어렵다고 보고 있다"며 "관련 문의가 와도 어렵겠다는 안내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공시가 강화된 후 대규모 자기주식 EB 발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인식이 퍼진 모양새다. 지난 10월 17일 금융감독원이 자사주 EB 발행에 관한 공시 의무를 강화하면서 발행사들은 △다른 자금 조달 수단 대신 EB 선택한 이유 △발행시점 타당성에 대한 검토 △기존 주주 이익에 미치는 영향 등을 추가 기재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발행 업무를 진두지휘할 뿐 아니라 대규모 발행 자금을 총액 인수할 수 있는 증권사들까지 난색을 표하면서 자기주식의 활용도는 더욱 제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기주식 EB 발행설이 불거진 엔씨소프트도 여러 증권사와 만나면서 조달 방법을 논의했지만 자기주식 EB 발행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안내 받은 것으로 관측된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안 떴다…중소규모 EB도 '예의주시' 대규모 자기주식 EB가 특히 어려운 것은 금액이 클수록 주가 하락의 폭이 덩달아 커지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향후 교환권을 행사할 것을 가정하면 시장에 풀리는 유통주식수가 훨씬 많은 터라 주가 하방 압력도 커질 수 밖에 없다. 발행 사이즈가 크면 시장의 이목이 쏠리면서 갖가지 풍문 탓에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리스크도 상존한다.
전날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안까지 발의되자 증권사들도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주주총회 승인 없이 1년 내에 소각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가 부과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른 증권사 커버리지 관계자는 "지금 맥락에서 대규모 자금을 자기주식 EB로 찍는다는 결정은 정치권의 눈초리를 받을 수 밖에 없다"며 "PRS나 타 기업 주식을 기초로 한 EB 등을 대안으로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수백억원 수준으로 조달하는 자기주식 EB 발행까지 막힐 것으로 전망되지는 않는다. 자금 조달 옵션이 많지 않은 가운데 발행 사이즈가 크지 않아 주가에 미치는 영향도 비교적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공시 의무가 강화된 뒤로도 25일 기준 17곳에 달하는 코스피 및 코스닥 상장사들이 자기주식 EB 발행을 결정한 상태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의 잣대는 오히려 깐깐해진 모습이다. 공시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철회한 사례(광동제약)도 나온 가운데 EB를 발행해야 하는 '정당성'에 대한 설명이 강조되는 추세다. 지난해 자기주식 EB를 발행한 곳 가운데 한국석유공업, 제이오, 카카오, 뉴온이 단순 정보 변경으로 신고서를 정정했던 반면, 앞선 17곳의 기업 중 2곳(광동제약, 에스피시스템스)이 금감원의 정정 명령을 받았고 12곳이 발행 사유를 대거 보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