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리밸런싱)에 나서면서 SK E&S를 흡수합병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잉여현금흐름(FCF)은 여전히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SK E&S가 새로운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한 데 이어 설비투자 규모도 큰 폭 줄였지만 정유, 석유화학, 배터리 등 SK이노베이션의 기존 사업들에서 현금창출력이 급감하면서다.
FCF 적자의 누적은 SK이노베이션의 외부 조달 의존도를 높이고 신용등급 하방 압력을 키우는 악순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SK E&S 흡수 이후 현금흐름 일부 개선…FCF 적자는 지속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1월 SK E&S를 사내 독립기업(CIC) 형태로 흡수합병했다. SK이노베이션은 수년간 배터리사업 자회사 SK온을 지원하면서 재무구조가 약화되자 SK E&S를 끌어들였다. SK E&S는 SK그룹에선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나타내고 있는 계열사로 SK이노베이션의 캐시카우로 붙여준 것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SK그룹 사업 리밸런싱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SK E&S 합병 이후 1년 사이 SK이노베이션의 현금흐름은 일부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우선 올해 3분기 누적 상각영업이익(EBITDA) 규모가 1조9108억원으로 SK E&S 흡수합병 전인 지난해 같은 기간(1조6797억원)에 비해 약 14% 증가했다. 재고재산과 매입채무 감소가 이뤄지면서 운전자본투자 규모가 마이너스(-) 9000억원 수준을 나타내기도 했다.
다만 올해만 자본적지출(CAPEX) 규모가 4조6000억원에 달했던 데다가 배당지출 규모도 6000억원 수준으로 커 누적 FCF 규모는 2조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FCF(약 -6조8000억원)와 비교하면 적자 폭을 크게 줄이긴 했다.
하지만 SK E&S 흡수 효과만으로는 현금 부족 기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이 올 하반기 신종자본증권(7000억원) 발행, 제3자배정 유상증자(2조원) 등으로 대규모 외부 자금조달에 나선 배경이기도 했다.
CAPEX 규모를 추가로 줄이는 것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올해 분기별 CAPEX 규모가 약 1조5000억원 안팎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간 기준으로는 6조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연간 CAPEX 규모가 10조2000억원에 달했던 것에 비해 이미 큰 폭 줄인 것이다. 결국 SK이노베이션의 현금흐름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비용 조절보다도 현금창출력 개선이 절실한 셈이다.
SK E&S가 전사 실적을 견인하고는 있지만 나머지 주력 사업들의 수익성이 부진해진 것이 현금흐름의 발목을 잡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 1113억원을 기록했다. E&S 부문(5635억원)과 윤활유(4266억원) 부문이 실적을 뒷받침한 덕분에 간신히 적자를 면했다. 그 외 정유(-1621억원), 석유화학(-1554억원), 배터리(-4905억원) 등 사업에선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면서 현금흐름이 약화됐다.
◇현금흐름 개선 지연되면 외부 조달여건 악화 우려도 FCF 적자 기조가 이어지면 외부 조달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 나이스신용평가는 “SK이노베이션의 올해 투자계획 규모는 5조~6조원으로 앞으로도 자체 현금창출력을 웃도는 투자소요가 지속돼 잉여현금흐름 적자가 나타날 것으로 추정된다”며 “자산매각과 외부자금 조달을 통해 투자 부담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존의 차입 부담을 줄이지 못하면 신용등급 하방 압력이 커지는 등 조달 여건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은 지난 9월 공모 회사채 시장을 찾아 총 6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발행금리는 △2년물 2.84% △3년물 2.96% △5년물 3.16% 수준에서 형성돼 SK이노베이션의 등급(AA0)보다 1노치(notch) 낮은 AA-에 준하는 금리였다. 등급 하락에 대한 우려가 비우호적인 발행조건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은 SK E&S 합병 이후로도 좀처럼 차입금 규모가 줄지 않으면서 신용등급 강등 트리거를 터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신용평가사들은 SK이노베이션의 EBITDA 대비 순차입금 지표가 4~7배를 넘는 상태를 하향조정 검토요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난 3분기 말 기준 SK이노베이션의 순차입금은 약 31조원이다. EBITDA 대비 순차입금 지표는 12배에 달해 신용평가사 3사의 하향 트리거를 모두 충족하고 있다.
관건은 현금흐름 개선에 달려있다. 한 신용평가 관계자는 "SK E&S 합병 이후 현금흐름 적자가 큰 폭 줄어든 것은 맞지만 나머지 사업 부문의 부진을 상쇄하지는 못하고 있다"며 "신용도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원활한 현금흐름을 통해 채무부담이 낮아져야 하는데 향후 투자 규모와 이익창출력 등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