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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비용

고진영 기자  2026-03-09 07:58:29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로지 이윤 창출이다. 분쟁이 생긴다면 승리가 아니라 실리를 쥐는게 더 가치 있다. 그래서 기업의 응전은 신중해야 한다. 충돌이 초래하는 비용이 이익보다 크다면 그 판단은 비경제적이다.

쿠팡은 전면전을 골랐다. 김범석 의장이 국회 청문회를 거부했고 워싱턴 정가의 로비스트와 의회, 무역대표부(USTR)가 나서 통상 이슈로 번졌다. 미국 상장사라는 위치를 지렛대 삼아 정부에 외교적 압박을 넣었다.

이 선택은 경제적일까. 다국적기업이 규제에 맞서 정치적 힘을 빌린 경우는 여럿 있었지만 별로 승률이 높진 못했다. 애플과 메타가 유럽연합(EU)의 디지털 시장법(DMA)을 우회하려다 과징금만 수천억원 물어낸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쿠팡은 지금 공정위를 비롯한 규제기관 조사를 동시다발적으로 받고 있다. 정부가 쿠팡의 대응을 국가주권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는 분위기인 만큼 괘씸죄를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규제당국들은 비협조적 기업들을 훨씬 엄격히 징계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디젤게이트 초기 배출가스 차이를 기술적 문제로 돌리며 버티다가 결국 벌금과 합의금 수십조원을 떠안기도 했다.

게다가 쿠팡은 사실상 내수기업이다. 기업공개는 뉴욕증시에 했지만 매출의 90%를 한국에 의존한다. 유통플랫폼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무형자산이 소비자 충성도인데 이번 사태로 국민적 밉상이 됐다. 미국 정부가 압박에 나설수록 반발도 커진다. 주력 시장에서 평판 자본을 잃었으니 당장 수치로 가늠하기 어려운 장기적 손실이다.

청구서는 이미 날아들었다. 쿠팡은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7% 쪼그라들었고 올 1월엔 본업 부문 매출 성장률이 4%까지 떨어지면서 바닥을 찍었다. 눈총 따가운 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12억달러(약 1조7000억원) 규모의 쿠폰을 풀었다. 빨리 수습에 나섰다면 이 출혈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계산기를 두드려볼 시간이다. 쿠팡이 과연 가장 저렴한 출구전략을 택했나. 바로 백기를 들었더라면 더 낮을 수도 있었던 보상 비용과 조단위 쿠폰의 차액 +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는 와중에 꺾인 외형 성장세 + 회복이 불투명한 평판 자본의 훼손 + 산적한 제재와 소송리스크. 쿠팡이 지금까지 치른 불필요한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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