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업계가 보유 원자재를 활용한 자산 유동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토큰증권(STO) 제도 도입을 앞두고 관련 법적 기반이 마련되면서다. LS전선에 이어 가온전선도 구리와 희토류 등 핵심 원자재를 디지털 토큰 형태로 분할 발행해 투자자에게 판매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설비투자에 활용하려는 구상이다.
특히 LS전선과 가온전선은 대규모 설비투자를 진행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는 상황이다. 차입 없이도 보유 자산을 기반으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무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된다.
◇제도 불확실성에 막혔던 사업, 재논의 시동 30일 업계에 따르면 LS전선에 이어 가온전선도 전략자산으로 부상한 구리와 희토류를 주식처럼 거래하기 위한 토큰증권(STO) 사업을 추진한다. 최근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정관상 사업 목적에 '토큰 발행 및 토큰증권 관련 사업'을 추가했다.
가온전선은 LS전선과 마찬가지로 AI 데이터센터 전선용으로 수요가 커진 전기동과 알루미늄, AI 로봇과 전기차 핵심 재료인 희토류까지 보유한 케이블과 금속 제품 원자재들을 토큰증권으로 발행해 유동화할 계획이다.
토큰증권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원자재, 부동산, 콘텐츠 저작권 등 자산을 디지털 토큰으로 쪼개 발행하고 다수 투자자가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새로운 형태의 증권이다.
관련 제도 기반이 되는 개정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이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해 내년 2월 시행을 앞두면서 원자재 업계를 중심으로 사업 준비가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LS그룹의 전선 계열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A사와 함께 유사 사업을 준비해왔다. A사는 2024년 초 금융감독원에 구리 등 원자재를 기초자산으로 한 투자계약증권 발행 가능 여부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당시 구리 가격은 톤당 7800달러 수준이었으나 최근 1만3000달러까지 상승했다. 만약 당시 상품이 출시됐다면 상당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던 셈이다. 다만 금융감독원이 발행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실제 상품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당시 구조는 LS전선이 공동 사업자로 참여해 기초자산 신뢰도를 높이고 가격 하락에 대비한 손실 방어 장치도 포함하는 방식이었다. 구리 가격이 발행가 대비 약 97~98% 이하로 하락할 경우 풋옵션을 통해 매입을 보장하는 구조를 설계해 투자자 손실 가능성을 일정 수준 제한했다. 다만 투자계약증권에 대한 규제 환경과 제도적 불확실성이 발목을 잡았다.
◇올해 투자규모만 약 1조 수준, 공장 신설 등 속도 붙을까 특히 기업이 직접 토큰 발행에 나설 수 있게 되면 원자재 거래 규모는 크지만 유동성 확보가 어려웠던 기업들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LS전선과 가온전선 같은 전선제조업체가 대표적이다. 가온전선의 모기업인 LS전선은 지난해 말 기준 원재료 재고자산 2184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전년(1958억원) 대비 약 11.5% 증가한 수치다.
실제 LS전선은 내년 토큰증권 제도 시행에 맞춰 1조원이 넘는 원자재 자산을 유동화해 공장 신설 등 투자 속도를 높인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올해 연결 기준 설비 투자 규모는 약 9689억원으로 전년(7709억원) 대비 25.7% 증가했다.
별도 기준 현금성 자산(금융기관 예치금 포함)은 3095억원 수준이다. 동시에 LS전선은 미국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시에 약 2만평 규모의 해저케이블 공장 건설을 진행 중이다. 완공 시 미국 최대 규모로 총 투자금은 약 6억8100만달러(약 1조원)에 달한다.
차입 없이 자산을 기반으로 현금을 확보할 수 있어 대규모 설비투자를 앞둔 상황에서 유리하다는 평가다. 그간 LS전선은 구리 가격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선물거래를 활용한 헤지 전략으로 수익성을 관리해왔다.
향후 STO 발행을 통해 추가적인 수익원 확보까지 노리는 셈이다. 다만 투자계약증권 승인이 지연되거나 불발될 경우 대규모 구리 재고를 보유한 LS전선 입장에서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