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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의 애매한 입지

고진영 기자  2026-05-06 08:05:10
별을 본다는 건 시간여행이다. 지구에서 (태양 다음으로) 가장 가까운 별도 4광년 넘게 떨어져 있다. 오리온자리의 붉은 초거성 ‘베텔게우스’는 무려 600광년 거리란다. 빛이 출발해 여기 닿기까지 수백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천문학의 기본은 별빛의 시간을 현재로 착각하지 않는 데 있다. 빛의 지연을 계산해 위치를 찾는다. 별자리에 기대 길을 찾는 항해자가 표류하지 않도록.

올 3월 개정 상법이 시행됐다. 상장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하면 1년 안에 소각해야 한다. 그동안 자기주식은 입지가 모호했다. 다시 시장에 팔 수 있으니 언제든 발행주식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미발행 주식과 사실상 다름없는 처지가 됐다.

문제는 숫자의 문법이 아직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본시장법의 5% 룰은 여전히 ‘주식등의 총수’를 기준으로 지분율을 산출한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제 역시 자회사 발행주식총수를 분모로 두고 있다. 이미 기능을 멈춘 주식을 여전히 살아 있는 주식처럼 취급하는 셈이다. 시장의 혼란은 여기서 온다.

실제로 SK가 최근 자사주를 대거 소각하기로 하자 일각에선 지분율 강화에 주목했다. 최태원 회장 측 지분율이 25.46%에서 31.93%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자기주식이 사라지니 분모가 줄고, 같은 분자가 비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상법을 적용하면 달라진다. 의결권 없는 자사주는 발행주식총수로 쳐주지 않으므로, 의결권은 소각 전에도 후에도 33.86%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튼 지배력엔 변화가 없으며 다만 재매각을 통해 살릴 수 있었던 자사주의 의결권 부활만 막혔다.

산수의 어긋남은 시가총액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시총을 산정할 때 자사주도 합치는 탓이다. 그러니 자사주를 소각하면 오히려 시총이 줄어드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진다. 기업가치가 훼손돼서가 아니라 계산식이 과거의 분모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신영증권같은 케이스도 있다. 이 회사는 발행주식의 절반이 자기주식이다. 시가총액이 3조4000억원이지만 살아 있는 주주들 몫만 추리면 1조7000억원 수준에 그친다. 몸값을 두 배로 쳐주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바뀌어야 할 것은 기업의 습관뿐이 아니라 법률과 시장의 계산법이다. 자기주식을 언제까지 발행주식으로 셀 것인지, 무엇을 시가총액으로 부를 것인지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미 사라진 별의 지난 흔적이 좌표를 흐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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