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000만원으로 상향된 예금보호한도는 24년 만인 지난해 9월 1억원으로 확대됐다. 경제 규모와 국민 자산이 크게 늘어난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국민 재산 보호 수준을 높인 만큼 예금보험제도 전반을 재정비하는 작업도 본격화하고 있다.
제도 시행 이후 시장은 우려와 달리 안정적으로 반응했다. 저축은행권에서는 예금 분포 변화가 나타났고 금융당국이 우려했던 대규모 자금 쏠림도 발생하지 않았다. 예금보험공사 안팎에서는 보호한도 상향을 계기로 통합 예금보험기구로서의 역할 재정립과 기금 운용체계 고도화 등 후속 과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SVB 사태 계기로 예보 한도 상향 급물살 예금보험제도는 금융회사가 영업정지나 파산 등으로 예금 등을 지급할 수 없게 될 경우 예금보험공사가 대신 지급해 예금자를 보호하는 제도다. 1996년 출범한 예금보험공사는 외환위기와 저축은행 사태 등을 거치며 금융시스템의 안전판 역할을 수행해 왔다.
예보는 그동안 한국증권금융 예수금과 변액보험 최저보장보험금, ISA 예·적금, 퇴직연금, 연금저축, 사고보험금 등을 순차적으로 보호 대상에 포함하며 제도를 보완해 왔다. 다만 금융소비자들이 가장 크게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보호한도 조정이었다.
예금보호한도는 제도 도입 당시 2000만원으로 설정됐다. 외환위기 과정에서 한시적으로 예금 전액보호가 시행된 뒤 2001년부터 5000만원 한도가 적용됐다. 이후 24년간 변화가 없었지만 경제 규모와 국민 자산이 크게 늘면서 현실과 괴리가 커졌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금융권과 정치권에서는 보호한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그러나 금융회사 부담 증가와 도덕적 해이 우려, 제2금융권으로의 자금 쏠림 가능성 등이 맞물리며 논의는 장기간 제자리걸음을 했다. 한도 상향의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며 번번이 추진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전환점은 해외 금융시장 불안이었다.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글로벌 금융안전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국내에서도 예금자 보호 강화 필요성이 재조명됐다. 이후 관련 법안 논의가 속도를 냈고 선거 국면을 거치며 여야 공감대도 형성됐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는 계엄과 탄핵 정국 등 정치적 변수까지 겹치며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럼에도 관련 법안은 2024년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지난해 9월 시행에 들어갔다. 이로써 24년간 유지된 5000만원 체제는 막을 내리고 예금보호 1억원 시대가 열렸다.
예금보험공사 한 관계자는 "보호한도 1억원은 단순한 한도 조정이 아니라 예금보험제도를 다시 점검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하는 계기"라며 "분산 예치에 따른 불편을 줄이고 금융안전망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자금 쏠림 없었다, 이제는 기금 재정비 보호한도 상향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저축은행 예금 분포다. 예보에 따르면 과거 저축은행에는 예금보호한도인 5000만원 직전 구간에 예금이 집중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한도 상향 이후에는 1억원 구간으로 예금이 이동하는 변화가 관측되고 있다.
당초 금융당국과 업계 일각에서는 저축은행과 상호금융권으로 자금이 과도하게 이동하는 이른바 '머니무브'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에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은 업권별 수신 동향을 점검하며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해 왔다. 그러나 현재까지 우려했던 수준의 자금 쏠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예보는 보호한도상향이 예금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동시에 금융권 경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이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할 경우 자금 공급 경로가 다양해지고 금융시장 균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호한도 상향은 과제도 남겼다. 예보 안팎에서는 이를 계기로 통합 예금보험기구로서의 역할과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은행·보험·금융투자회사 등 서로 다른 업권을 포괄하고 있음에도 예금보험이라는 명칭과 제도 체계가 업권별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서다. 업권별 특성을 반영한 제도 정비와 20조원 규모로 성장한 예금보험기금의 효율적 활용 방안도 함께 논의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특히 보호한도 상향에 맞춰 새로운 예금보험료 체계를 마련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예보는 연구용역을 통해 업권별 부실 가능성과 부실 발생 시 예상 손실 규모를 계량모형으로 산출하고 목표기금 하한선을 재설정할 계획이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예금보험료율 체계를 마련해 2028년부터 적용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