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45조의 승부수: SK하이닉스 ADR

ROE 44%의 무게…연 20조 더 벌어야 유지

①1100조 메가투자 대비 선제 조달…글로벌 자금, 재평가 동시 겨냥

고진영 기자  2026-06-30 08:53:20

편집자주

2001년 하이닉스반도체는 룩셈부르크 증시에서 1조6000억원을 끌어왔다. 부도 위기에 밀려 생존을 위해 조달했던 돈이다. 25년이 지난 지금, SK하이닉스는 사상최대 호황을 등에 업고 나스닥 공모에 나섰다. 같은 해외 발행이지만 남기는 질문은 정반대다. 넘치는 현금을 쥐고도 왜 지금 신주를 찍을까. 무엇을 위해 자본을 확충하며 그 선택은 회사에 어떤 숙제를 던질까. THE CFO가 이번 ADR에 담긴 계산을 들여다봤다.
유상증자는 통상 모자란 자본을 메우려고 쓰인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꽉 찬 곳간에도 ADR(미국주식예탁증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초대형 투자에 대비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주주 기반을 넓히기 위한 전략이다.

여기엔 미국 시장에서 제 몸값을 다시 평가받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하지만 이미 풍부한 현금 위에 대규모 자본을 더 얹는 이번 조달은 SK하이닉스에 기회이자 숙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곳간 넘치는데 45조 '더'

SK하이닉스가 상장할 ADR은 미국 예탁기관이 외국기업 주식을 기초로 발행하는 증서다. 모집총액은 최종 조건에 따라 7월 9일 결정되지만 공시상 조달 예정액은 45조4535억원에 이른다. 최대 발행한도 1779만주에 이사회 전날 종가를 곱한 금액이다.

대규모 조달에 불구하고 이미 유동성은 역대 최대 수준을 찍고 있다. 현금이 빠른 속도로 유입되면서 3월 말 순현금만 32조원을 상회, 석 달 만에 22조원이 불었다. ADR 상장 이유가 자금 부족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그래도 안심하기 이른 이유는 투자규모에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하이닉스가 ADR 발행을 결의하자마자 총 1100조원 규모의 중장기 반도체 투자 로드맵을 내놨다. 메가프로젝트 일환인데 용인 600조원, 청주 100조원, 서남권 400조원 등이다.

이중 600조원은 기존에도 밝혔던 구상이고, 서남권 투자 역시 부지와 전력·용수 확보를 전제로 한 조건부 계획이지만 여전히 막대한 규모다. 이번 ADR 자금이 천문학적 투자계획의 첫 단추라고 볼 수 있다.

방식은 왜 자본 확충일까. SK하이닉스는 현재 차입 여력이 차고 넘친다. 차입은 자기자본보다 조달 비용이 싸고 주주 지분을 희석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그럼에도 회사가 유증을 선택한 배경은 3월 곽노정 사장이 재무 목표로 제시한 ‘순현금 100조원’ 달성에서 찾을 수 있다. 빚을 내 자금을 조달하면 순현금을 늘리겠다는 목표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자기자본은 갚을 의무가 없는 돈이다. 메모리 사이클의 다운턴이 올 경우 강력한 완충재 역할을 할 수 있다. 경쟁사들 역시 비슷한 전략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마이크론은 약 244억달러의 순현금을 쌓아둔 사실상 무차입 회사고, 삼성전자는 순현금이 120조원에 이른다. SK하이닉스의 유증은 삼성전자가 도달한 고지를 더 앞당겨 밟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피할 수 없는 ROE 하락 압박

조달 무대로 국내가 아닌 미국 ADR을 택한 것도 주목받는 부분이다. 우선 희석률과는 관련 없다. 신주 규모는 기존 발행주식의 2.5%인데, 코스피에 풀리든 나스닥에 풀리든 기존 주주의 희석률은 2.44%가 된다. 차이는 어떤 값에 평가 받고, 그 물량을 누가 받는지다.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점유율 1위(56.4%)로 마이크론을 앞서지만 몸값은 거꾸로다. 6월 한화투자증권이 비교한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SK하이닉스 6.6배, 마이크론 11.2배였다. HBM 시장을 이끄는 SK하이닉스가 마이크론보다 약 41% 낮은 배수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다른 지표도 비슷했다. 미래에셋증권이 5월 말 비교한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각각 5.6배와 3.0배로 나타났다. 메모리 피어 평균인 10.1배와 6.2배의 절반 안팎이다.

SK하이닉스에 대한 저평가 현상은 꽤 오래 이어져왔다. 영국계 글로벌 투자은행(IB) HSBC 분석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지난 13년간 SK하이닉스보다 평균 35% 높은 배수로 거래됐다. 국내에서 유증을 하면 이 저평가를 탈출할 계기 없이 신주 물량만 보태는 만큼, 같은 금액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지분을 내줘야 할 수 있다.

수급 이슈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45조원어치 신주를 국내 증시에 한꺼번에 풀면 코스피의 제한된 자금이 물량을 소화해야 하는데, 대규모 물량은 공급 부담으로 주가를 짓누를 수 있다. 미국 ADR은 국내 증시에 신주를 직접 풀지 않고 해외 자금을 들여올 수 있는 수단이다. 또 투자자들이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을 같은 시장에서 직접 비교할 수 있게 된다. 글로벌 수요와 재평가 가능성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셈이다.

◇왜 미국일까…저평가 탈출에 베팅

하지만 선택에는 비용이 따른다. 핵심은 자기자본이익률(ROE)이다. SK하이닉스의 2025년 ROE는 평균자기자본 기준 44.1%를 기록했다. 순이익 42조9479억원을 평균자기자본 약 97조원으로 나눈 값인데, 국내 제조업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수익률이다. 자본이 1년 새 약 74조원에서 약 121조원으로 급증한 점을 감안해 기말 자기자본을 기준으로 계산해도 35.6%에 달한다.

문제는 자기자본 수익률이 높을수록 신규 자본의 압박도 무거워진다는 데 있다. 늘어난 자본이 같은 수익률을 내야 기존 ROE 수준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달액 전액이 자기자본에 더해진다고 가정했을 때 신규 자본 45조원이 기존 수익률만큼 벌기 위해 필요한 추가 순이익은 평균자본 기준 연 약 20조원, 보수적인 기말자본 단순 비율을 적용해도 약 16조원이다. 자기자본이 불어난 속도를 이익이 따라가지 못하면 ROE는 내려갈 수밖에 없다.


또 이 자금이 투입될 용인 클러스터 등은 내년 이후에야 본격 가동한다. 그 전까지 조달 자본이 현재 ROE에 상응하는 수익을 내기는 사실상 힘들다. SK하이닉스도 최대 물량이 기간 초에 전량 발행되고 유입자금이 손익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경우 EPS가 2025년 기준 2.51% 희석된다고 제시했다.

물론 주당순자산(BPS) 측면에선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 공시 기재가격대로 최대 물량을 발행할 경우 BPS는 약 23만원에서 29만원으로 늘어난다. 신주를 기존 BPS의 11배가 넘는 가격에 팔아 기존 주주의 주당 장부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만 이 증가는 수익 창출의 결과가 아니라 조달가격에서 생긴 회계상 효과일 뿐이다. 결국 불어난 자본으로 충분한 투자수익을 끌어내야 하는 부담도 같이 커지게 된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