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붐을 타고 반도체 시장이 역사적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반면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업체들의 체감 온도는 엇갈리고 있다. HBM 투자가 확대되면서 낙수효과를 기대했지만 고객사 투자 지연과 재고조정, 중국향 매출 둔화 등 복합적인 영향에 기업별로 극과 극의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더벨은 국내외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을 분석해 반도체 생태계의 현황과 미래를 점검해봤다.
마이크론은 메모리 가격의 상승을 빠르게 이익으로 흡수하며 80%라는 기록적인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2026년 회계연도 3분기(3~5월)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346% 증가했는데 매출원가는 같은 기간 10% 늘어나는 데 그쳤다. 순이익은 1년 만에 15배로 늘었다.
초대형 메모리사가 기록적 실적을 낸 만큼 그 비용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게 시사점이 크다. 이익률 상승의 첫 번째 요인은 평균판매가격 상승이다. 제품 구성과 제조원가 절감도 영향을 미쳤지만 가격 상승세가 워낙 컸다.
마이크론은 한발 더 나아가 향후 이익 구조를 공고히 하는 전략까지 세웠다. 하반기부터 고객의 구매 물량과 가격 범위를 다년간 묶는 테이크 오어 페이 계약이 일부 반영되면서 가격 상승세가 둔화하더라도 실적 하락을 막아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DRAM·NAND 출하량 한 자릿수 증가…가격이 매출 확대 주도
마이크론의 3분기 매출액은 414억6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5배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81.2%로 나타났다. 이 기간 매출원가는 57억9300만달러에서 64억달러로 10.5% 증가하는 데 그쳤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3분기 분기보고서(Form 10-Q)에 따르면 총매출은 DRAM과 NAND 제품의 평균 판매 가격(ASP)의 급상승에 따랐다.
출처=마이크론 3분기(3~5월) 분기 보고서
DRAM 매출은 313억 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3%, 직전 분기보다는 67% 급성장한 수치다. 전년 동기 대비 비트 출하량(bit shipments)은 20% 늘어난 반면 평균판매가격(ASP)은 260% 폭등하며 매출을 끌어올렸다. 전 분기 대비로는 출하량 증가율이 한 자릿수 초반에 그치며 공급물량이 제한적이었는데 가격이 60%나 껑충 뛰면서 호실적을 견인했다.
NAND 매출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3분기 NAND 매출은 99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61%, 전 분기 대비 99% 급증했다. 작년 동기와 비교해 비트 출하량이 10% 남짓 늘어나는 사이 평균판매가격은 310% 이상 수직 상승했다. 전분기 대비 출하량은 한 자릿수 성장에 머물렀지만 가격이 80%대 중반까지 치솟으며 실적을 뒷받침했다.
제품을 전년 분기보다 4.5배 많이 판매해 매출이 그만큼 늘어난 것은 아닌 셈이다.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수요가 업계 공급능력을 웃돌면서 판매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 마이크론이 생산량이나 원재료 투입량을 별도로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제조비가 매출액과 같은 속도로 늘어나지는 않았고 그 차이도 컸을 것으로 해석된다.
데이터센터용 제품이 실적을 이끌었지만 이 부문만 잘된 것은 아니다. 모바일·PC 사업부는 전분기보다 출하량이 줄었는데도 평균판매가격 상승과 믹스개선에 힘입어 매출이 약 50% 증가했다. 자동차·임베디드 사업부는 가격 상승과 함께 출하량도 늘면서 71% 성장했다. 특정 제품만 잘 나갔다기보다 DRAM과 NAND 자체의 가격 상승이 여러 사업부에 동시에 영향을 미쳤다.
◇감가상각·연구개발비도 증가했지만 매출 급증세 더 가팔라
고정비가 늘었지만 매출액 상승세가 워낙 가팔라 영향이 크지 않았다. 영업이익에 포함된 감가상각비와 상각비는 23억64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2.9% 증가했다. 전분기 22억8600만달러와 비교해도 3.4% 늘었다. 설비투자가 계속되면서 고정비 부담은 확대됐지만 매출 증가율에는 크게 못 미쳤다.
반도체 제조업의 특징도 마이크론의 실적을 뒷받침하는 힘이었다. 공장과 장비를 먼저 확보하고 이후에는 감가상각비용이 지출되는 구조다. 이번 분기처럼 판매량이 크게 늘지는 않았는데 판매단가만 급등한다면 고정비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용이 눈에 띄게 낮아지면서 이익률이 상승할 수 있다.
연구개발(R&D) 비용와 판관비도 늘었다. 3분기 연구개발비는 전년 동기보다 36%, 전분기보다 5% 증가했다. 판매관리비는 전년 동기 대비 28%, 전분기 대비 18% 확대됐다. 개발·사전인증용 웨이퍼 투입과 임직원 보상비가 증가한 영향이다.
매출원가가 제한적으로 오른 데에는 마이크론의 선제적 공정 전환도 한 몫을 했다. 기술을 개선해 같은 크기의 웨이퍼에서 더 많은 메모리를 생산하고 있다. 같은 재료와 설비로 더 많은 메모리를 만들면서도 개당 생산비를 줄였다는 의미다.
다만 제조원가를 이전대비 줄였더라도 기본적으로 높은 기술력과 미세 공정이 필요한 반도체 메모리를 생산하는 만큼 절대적인 재료비가 싸지 않다. 세대를 거듭할 수록 더 복잡한 공정과 패키징이 요구돼 비용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달가격보다 판매가격의 힘…장기계약은 향후 마진 방어 장치
마이크론은 실적 발표 후 컨퍼런스콜에서 새로운 계약 방식인 테이크 오어 페이(Take-or-Pay)를 통해 전략고객협약(SCA)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전까지의 통상적인 계약이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을 다시 매기는 방식을 썼다면 마이크론이 채택한 전략은 이와 다르다. 가격 상단과 하단을 모두 설정했다. 대형 계약은 기존 제품의 가격 상단을 올해 2분기 시장가격 수준으로 정하는 등이다. 일부 계약은 아예 가격을 못박았고 소수의 계약만 시장가격에 따르기로 했다.
마이크론은 이미 일부 공급업체와는 장기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다만 3분기 상당수의 계약은 장기 공급 능력을 고려하거나 가격 약정을 포함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서 밝힌 위험 요인을 보면 원재료와 부품, 전력·외주서비스 가격 등이 유동적이라고 명시했다.
결국 일부 조달가격이 유지됐더라도 이익률 80%의 핵심은 판매단가 상승이다. 메모리가 부족해진 상황에서 마이크론 제품에 매겨진 좋은 가격이 출하량과 고정비 등 비용 구조와 만나며 강력한 이익 레버리지를 만든 셈이다.
테이크 오어 페이 계약은 향후 수익성을 방어해줄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론은 가격 하단이 적용되더라도 과거 메모리 호황기의 최고 분기보다 높은 매출총이익률을 기대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하락기가 찾아오더라도 변동성을 줄일 수 있고 고객사는 장기 공급을 보장 받는다.
마이크론은 4분기 매출총이익률도 약 86%로 전망했다. 가격 상승 속도가 유의미하게 둔화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직전 분기보다 높은 수익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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