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는 12개 보험사가 상장돼 있으며 이들은 지난해 모두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들 중 배당을 실시한 보험사는 단 5곳뿐이다. 해약환급금준비금 제도가 보험사들의 배당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화생명이 상장 보험사들 중 가장 많은 해약환급금준비금을 쌓았고 SGI서울보증은 적립하지 않았다. 12개사 중 9개사의 준비금 적립액이 증가한 가운데 삼성화재가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으며 삼성생명도 적립을 시작하는 등 생·손보 양 업계의 ‘맏형’들을 필두로 보험사들의 준비금 적립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한화생명 홀로 6조원대 진입, 코리안리 여전히 최하위 THE CFO는 국내 12개 상장 보험사의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액을 조사했다. 2025년 말 기준으로 한화생명이 6조5078억원으로 가장 많은 금액을 적립했다. 1년 전보다 무려 2조8766억원이 늘어 순위가 한 계단 높아졌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은 시가로 평가한 보험부채가 해약환급금보다 적을 경우 차액을 이익잉여금 내에 적립하는 것이다. 회계상 자본으로는 집계되지만 임의 처분은 불가능하다. 이익잉여금은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활동의 원천인 만큼 해약환급금준비금의 증감은 주주환원 여력의 증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상장 보험사 12곳은 총 7조1356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 16.1% 줄어들기는 했으나 적자를 본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럼에도 배당을 실시한 곳은 삼성생명·삼성화재·DB손보·SGI서울보증·코리안리 등 5개사에 불과했다.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 부담으로 인해 이익잉여금을 처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DB손보가 4조5413억원으로 한화생명의 뒤를 따랐고 삼성화재가 4조1301억원으로 3위에 올랐다. 이어 △현대해상(3조9166억원) △한화손보(2조4163억원) △동양생명(1조1066억원) 등이 조 단위로 해약환급금준비금을 적립했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을 적립하지 않은 곳은 SGI서울보증이 유일했다. 전업 보증보험사 특성상 해약환급금준비금을 적립하지 않았다. SGI서울보증을 제외하면 전업 재보험사 코리안리가 718억원으로 상장 보험사들 중 가장 적은 적립액을 기록했다.
이어 △롯데손보(3445억원) △흥국화재(4426억원) △삼성생명(8324억원) △미래에셋생명(9923억원) 순으로 적립액이 낮았다.
◇9개사 적립액 증가, 업계 적립액 25조 돌파 지난해 말 기준 12개 상장 보험사의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액 합계는 25조3023억원으로 전년 대비 43.7%(7조6929억원) 증가했다. 업계 차원의 배당여력도 그만큼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을 적립하지 않는 SGI서울보증을 제외하면 11개사 중 2곳만이 적립액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2023년 IFRS17 회계기준 도입 이후 보험사들은 보험계약마진(CSM) 확보에 유리한 장기 보장성보험의 계약 확보에 영업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장기보험은 만기가 긴 만큼 만기시 환급액의 부담, 즉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 보험사들은 이익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영업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배당여력이 제한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증가율 기준으로는 86.6%의 삼성화재가 가장 높은 상승폭을 기록했다. 다만 실질적로는 2024년까지 해약환급금준비금을 적립하지 않았다가 지난해 적립을 시작한 삼성생명의 증가율이 더 높다. 그간 삼성생명은 보험부채가 해약환급금보다 많아 계약 일괄해지에 충분한 대응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이제는 적으나마 일괄해약에 대한 부담을 지게 됐다.
한화생명이 79.2%, 흥국화재가 67.6%로 삼성화재의 뒤를 따랐고 DB손보도 40.2%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들은 각 업계 내에서 준수한 신계약 CSM 확보 성과를 낸 곳들이다. 영업 성과가 배당여력을 제한하는 딜레마가 단적으로 나타난 곳들이라고 볼 수 있다.
코리안리는 23.1%로 감소폭이 가장 컸다. 다만 전업 재보험사의 특성상 많은 해약환급금준비금을 적립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실제 코리안리의 적립 감소 금액은 216억원에 불과했다. 실질적으로는 -2.5%(1017억원)의 현대해상 쪽이 더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당국도 지급여력비율을 기준으로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 비율을 낮추는 방안을 시행하는 등 해약환급금준비금 제도가 보험사 주주환원에 큰 부담이 된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영업 성과가 배당여력을 제한하는 본질적 딜레마에 대해서는 업계와 당국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