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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소부장 실적 리뷰

마이크론, '테이크 오어 페이' 추진…국내 소부장 여파는

DRAM 20%·NAND 3분의 1 장기계약…국내 메모리 투자·소부장 발주 방식 바꿀까

허인혜 기자  2026-06-26 13:19:21
마이크론이 메모리반도체 판매 방식을 단기 가격 협상에서 다년간의 물량 약정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고객이 약속한 물량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대금을 부담하는 '테이크 오어 페이(Take or Pay)' 계약을 확대해 2030년까지 수요와 가격의 가시성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초대형 메모리 3사 가운데 한 곳이 장기 물량과 가격 조건을 앞세워 고객을 선점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급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업체에도 단기 업황에 따라 급등락하던 설비투자와 발주 주기가 장기 고객계약을 기반으로 안정될 가능성이 생겼다.

◇2030년 물량까지 미리 계약한 마이크론

마이크론은 2026회계연도 3분기(3~5월) 실적발표에서 데이터센터와 소비자, 자동차 고객 등을 대상으로 16건의 전략적 고객계약(SCA)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현재 계약은 향후 DRAM 공급량의 약 20%, NAND 공급량의 3분의 1을 포괄한다. 추가로 추진 중인 계약까지 마무리하면 회사 매출의 절반 이상이 SCA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마이크론이 체결한 SCA는 통상 2026년부터 2030년 말까지 5년간 적용된다. 자동차 고객과 맺은 계약은 일반적으로 3년이다. 계약에는 고객이 다년간 정해진 물량을 구매해야 하는 구속력 있는 의무가 담겼다.
출처=마이크론 2026 회계연도 3분기 실적발표

이전까지의 통상적인 계약이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을 다시 매기는 방식을 썼다면 마이크론이 채택한 전략은 이와 다르다. 제품의 가격 상단과 하단을 모두 설정했다. 대형 계약은 기존 제품의 가격 상단을 올해 2분기 시장가격 수준으로 정하는 등이다. 일부 계약은 아예 가격을 못박았고 소수의 계약만 시장가격에 따르기로 했다.

체결한 16건 가운데 14건의 최소 계약가격 기준 누적 매출은 남은 계약기간 동안 약 1000억달러에 달한다. 마이크론은 가격 범위가 설정된 계약의 경우 가격이 하단까지 떨어지더라도 과거 메모리 호황기의 분기 최고치보다 높은 매출총이익률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체결된 계약에 따른 현금 예치금과 기타 금융약정은 220억달러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약 180억달러가 현금 예치금이다. 고객이 장기간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맡긴 보증금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마이크론의 SCA는 HBM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부터 소비자 기기, 자동차와 산업용 시장에 공급하는 DRAM과 NAND를 포괄한다는 설명이다. 또 고객 수요에 따라 HBM도 포함한다. 범용 메모리까지 계약 중심으로 전환해 전통적인 메모리 가격 사이클의 변동성을 낮추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장기 수요가 설비투자 결정…삼전닉스 투자 속도에도 영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주요 AI 반도체 고객과 장기 협력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투자를 집행하며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장치다. 메모리 가격이나 재고 물량 등에 따라 투자 스케줄을 바꿔야 했는데 구매 물량이 미리 약정되면 안정적 투자 집행이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AMD와 차세대 AI 메모리 및 컴퓨팅 기술 협력을 확대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차세대 AI 가속기인 AMD 인스팅트 MI455X에 삼성전자의 HBM4를 주요 공급원으로 적용하고 차세대 에픽 프로세서와 헬리오스 플랫폼용 DDR5 개발에도 협력하는 내용이다.

SK하이닉스도 6월 엔비디아와 차세대 AI 메모리를 공동 개발하고 공급하는 다년간의 기술 파트너십을 맺었다. 엔비디아의 AI 인프라 로드맵과 메모리 개발·생산 계획을 장기간 연계해 AI 팩토리 확대에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국내 업체 역시 특정 고객의 제품 로드맵에 맞춰 기술 개발과 공급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마이크론은 AI용 HBM을 넘어 서버·소비자·자동차 시장의 DRAM과 NAND까지 동일한 장기계약 체계로 맺었다는 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이 단계까지 발걸음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마이크론이 고객의 장기 물량을 먼저 확보할수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향후 공급할 수 있는 수요의 일부가 선점되는 효과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내 소부장, 발주 안정성 기대…수혜는 선별적

국내 소부장업체에는 메모리 제조사의 투자 가시성이 높아지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객의 장기 구매 약정을 토대로 투자를 집행하면 장비·소재 업체도 분기별 업황보다 중장기 생산계획을 기준으로 수주를 예상할 수 있다.

수혜가 예상되는 영역은 선단 DRAM 공정 장비와 EUV 관련 부품·소재, HBM용 적층·본딩 장비, 패키징과 테스트 장비, 고순도 공정 소재 등이다. 고객 물량이 3~5년 단위로 확정되면 소부장업체도 생산능력 증설과 연구개발 투자를 결정하기 쉬워진다.

다만 국내 업체 전반에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국내 기업 의존도가 높고 이 수치가 변화할 가능성도 크지 않아서다.

마이크론 공급망에 직접 진입한 기업들은 직접적인 수주 기회를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력 공급 기업들은 두 회사가 마이크론과 같이 장기계약과 투자를 확대해야 수혜를 받을 수 있다.

장비·소재업체가 부담해야 할 조건도 강화될 수 있다. 메모리 제조사가 고객에게 다년간 물량을 보장하면 협력사에도 장기 납기와 생산능력 확보, 공정 전환에 맞춘 공동 개발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특정 시점에 장비와 소재를 공급하지 못하면 메모리 업체도 고객과의 계약을 이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형 고객의 선단 공정에 이미 진입해 있고 해외 생산거점까지 지원할 수 있는 소부장업체에 발주가 집중될 수 있다. 반면 단일 제품과 특정 국내 공장에 의존하거나 증설 여력이 부족한 업체는 장기 공급망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

생산지역도 새로운 변수다. 마이크론은 고객들이 자사의 미국 내 공급 확대 계획을 높이 평가했으며 이러한 수요가 장기계약에도 반영됐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인디애나주에 차세대 HBM용 첨단 패키징 공장을 건설하는 것도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는 셈이다. 국내 소부장업체에도 미국 생산거점의 장비 유지·보수와 현지 부품 공급, 고객사와의 공동 대응 능력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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