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이자 부담이 없는 전환사채(CB)로 5000억원을 조달했다. 수주가 늘면서 재고와 매출채권 등 운전자본 투입이 커진 가운데 영업활동에서 현금이 3년 연속 빠져나간 데다, 한국형전투기(KF-21) 개발 예산 배정마저 뒤로 밀리자 회사채에 이어 CB까지 동원했다. 공모채 시장에서는 민평금리보다 낮은 수준에서 꾸준히 조달해왔지만 최근에는 그 폭이 좁아지고 있다.
◇민평 밑에서 찍은 공모채 8건…좁아지는 언더 폭 THE CFO가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2026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비금융 계열사를 기준으로 집계한 결과 KAI는 2024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9건, 2조4000억원을 조달했다.
이 가운데 공모 일반채가 8건, 1조9000억원이다. 발행금리는 2.81~3.78%였다. 같은 기간 대기업집단 비금융 계열사의 공모 일반 회사채 단순평균 금리가 2024년 3.91%, 지난해 3.37%, 올해 4.06%였던 것과 비교하면 KAI는 매년 시장 평균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했다.
공모채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수요도 강했다. 2024년 3월 3500억원 모집에 2조3500억원이 몰렸고 지난해 1월에는 2000억원 모집에 2조3600억원이 들어왔다. 지난해 7월과 올해 1월에도 각각 2500억원 모집에 2조500억원, 1조8700억원의 주문이 쌓였다. 네 차례 모두 증액 발행했다. 2024년 4월이 4000억원, 나머지 세 차례는 각각 5000억원이다.
금리는 민평금리보다 낮았다. 2024년 3월에는 2년물과 3년물을 각각 민평 대비 25bp, 28bp 낮게 모집했다. 지난해 1월에도 3년물과 5년물이 각각 27bp, 28bp 낮았다. 올해 1월 발행분은 3년물 3.480%, 5년물 3.675%로 AA- 등급 평균인 3.58%, 3.92%보다 각각 10bp, 24bp 낮았다.
다만 시장에서 인정받는 금리 할인 폭은 줄고 있다. 개별 민평 대비 스프레드는 지난해 7월 3년물 13bp, 5년물 20bp였고 올해 1월에는 각각 10bp, 20bp로 좁혀졌다. 2024년 3월 25~28bp였던 것과 비교하면 언더 폭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표면금리도 지난해 7월 2.81%에서 올해 1월 3.48%로 상승했다.
KAI의 신용등급은 AA-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해 12월30일 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올렸다.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도 같은 전망을 부여하고 있다. 등급 자체는 2023년 이후 AA-를 유지하고 있다.
◇표면, 만기금리 0%…리픽싱 없는 할증 발행 올 3월 발행한 CB 5000억원은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이 모두 0%다. 사모 사채를 낸 것은 2019년 10월 700억원 이후 6년 4개월 만이다. 그 사이 사모 조달은 만기 한 달짜리 기업어음뿐이었고, 사채는 전부 공모로 찍었다. 전환사채는 2001년 이후 공시기준으로 이번이 처음이다.
CB 조건도 발행사에 유리한 편이었다. 전환가액은 1주당 18만5165원으로 이사회 결의 전일 종가 17만1200원보다 8.2% 높게 정해졌다.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전환가액을 낮추는 리픽싱 조항도 없다. 유상증자와 무상증자, 주식배당이 발생할 경우에는 전환가액을 조정하지만 감자나 주식병합 때는 오히려 전환가액을 높이는 구조다.
대신 투자자에게는 풋옵션이 부여됐다. 발행일로부터 3년이 되는 2029년 3월4일부터 3개월마다 여덟 차례 조기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 인수는 NH투자증권이 5000억원 전액을 맡았다. 대기업집단 비금융 계열사가 2024년 이후 발행한 무이자 CB는 11건, 1조7018억원이다. KAI의 5000억원은 SK이노베이션 600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주가는 CB 발행 이후 전환가액을 크게 밑돌고 있다. 이사회 결의일인 2월5일 종가도 16만2000원으로 전환가액보다 낮았고 8월28일에는 13만3100원까지 내려왔다. 전환가액을 28%가량 밑도는 수준이다. 리픽싱 조항이 없어 주가 하락에도 전환가액은 그대로 유지된다.
◇수주 27조에 현금 131억…3년 연속 마이너스 영업현금흐름 KAI가 이자 부담이 없는 CB까지 활용한 배경에는 운전자본 부담과 국책사업 예산 일정이 함께 놓여 있다.
별도기준 영업활동현금흐름은 2023년 마이너스 6952억원에서 2024년 마이너스 7282억원, 지난해 마이너스 8999억원으로 악화됐다. 올해 상반기에도 3830억원의 현금이 영업활동에서 빠져나갔다. 2023~2025년 순이익은 2315억원, 1796억원, 1927억원으로 매년 흑자였다.
회계상 이익과 현금흐름이 갈린 핵심은 운전자본이다. 유동재고자산은 2023년 말 1조7183억원에서 지난해 말 3조6086억원으로 2.1배 증가했다. 올해 6월 말에는 3조9568억원까지 늘었다. 유동매출채권도 지난해 말 7059억원에서 올해 6월 말 1조4312억원으로 반년 만에 두 배가 됐다.
반면 선수금 성격의 유동계약부채는 1조8000억~2조1000억원 수준에서 크게 늘지 않았다. KF-21과 소형무장헬기(LAH) 양산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 재고를 먼저 확보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선급금 증가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린 구조다.
여기에 KF-21 개발 예산 일정이 겹쳤다. 2024년부터 5년간 배정된 총사업비는 8조3840억원인데 최근 3년간 투입액은 2조8000억원에 그친다. 나머지 5조6000억원이 내년과 내후년으로 미뤄지면서 KAI가 자체적으로 개발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CB 5000억원의 용도가 KF-21과 LAH 양산 제작·생산대금 4000억원, FA-50·수리온(KUH) 수출 납품용 재료비와 구성품 선발주 1000억원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는 이 자금을 전액 올해 안에 쓴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금 부족은 차입 증가로 이어졌다. 별도기준 순차입금은 2023년 말 마이너스 1711억원으로 순현금 상태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 2조600억원으로 전환됐고 올해 6월 말에는 2조8051억원까지 늘었다. 2년 반 만에 순현금에서 2조8000억원대 순차입 상태로 바뀐 셈이다.
차환 부담도 커졌다. 지난해 4분기에만 기업어음과 금융기관 단기차입으로 3000억원을 조달했고 이 자금의 차환 시기가 올해 3월부터 12월까지 걸쳐 있다. 올해 1월 공모채로 조달한 5000억원 가운데 4200억원이 채무상환 자금으로 잡힌 것도 이 때문이다. 1월 27일 만기가 돌아온 기업어음 400억원부터 이 자금으로 대응했다.
별도기준 순차입금/EBITDA는 2022년 -3.8배, 2023년 -.0.4배, 2024년 2.6배, 2025년 5.6배로 늘었다. 올 상반기에는 8.5배로 전년동기 5.1배에서 86.3% 늘었다. 단기성차입금은 2022년 5250억원, 2023년 3803억원, 2024년 4070억원, 2025년 7663억원으로 증가했다. 2026년 상반기에는 954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415억원과 비교해 8.4% 줄었다.
현금성자산은 2022년 2조1702억원에서 2023년 7475억원, 2024년 1307억원, 2025년 101억원으로 줄었다. 올 상반기에는 1861억원으로 전년동기 1869억원과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긴 하지만 규모가 단기성차입금의 19.5% 수준이다.
수주잔고는 지난해 말까지 늘었다. 지난해 말 수주잔고는 27조3440억원으로 신규수주 6조3950억원을 따내며 전년보다 30.4% 증가했다. 올해 6월 말에는 25조7502억원으로 줄었는데 확보한 물량이 매출로 넘어간 결과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2조260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0% 증가했다. 다만 영업이익은 1156억원으로 12.4% 감소했다. 현재 남아 있는 회사채는 7건, 1조7500억원이다. 2027년 2500억원, 2028년 6700억원, 2029년 4200억원, 2030년 3300억원, 2031년 800억원의 만기가 예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