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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interview바이오텍 CFO 스토리

투자자·업계·빅파마서 먼저 찾는 레고켐바이오의 매력

②박세진 부사장 "투자자와 함께 성장해야…'비전·전략' 맞춘 선제적 자금계획"

정새임 기자  2024-01-08 08:01:17

편집자주

신약개발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바이오 사업은 그간 가시적인 매출 구조를 마련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한국거래소는 기술특례상장 기업의 요건으로 일정 규모의 매출 창출을 제시했다. 이제 기술력을 넘어 명확한 수익 모델을 입증해야 하는 시점이 도래했다. 신약개발뿐 아니라 의료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익구조를 마련한 기업의 경쟁력과 전략을 살펴본다.
레고켐바이오를 비롯해 유수의 바이오 기업들이 모여있는 대전 바이오 클러스터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모임이 있다. 최고재무책임자(CFO)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대전 바이오 CFO 모임'이다. 설립 초기 스타트업부터 상장사 혹은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까지 단계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바이오텍의 CFO들이 소속돼 있다. 타 지역 바이오텍에서도 찾아올 정도다.

모임의 중심엔 박세진 레고켐바이오 수석부사장(사진)이 있다. 그는 바이오텍 CFO계의 '대부'로도 통한다. 자연스럽게 주변에 도움과 조언을 청하는 이들이 몰렸다. 주제는 각기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바이오텍 CFO로서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더벨은 박 부사장을 만나 CFO로서 걸어온 길과 노하우를 들어봤다.

◇회사와 한 몸 될 '좋은 VC'와 함께해라…든든한 지원군 될 것

박 부사장은 과거 오랫동안 LG화학 기술연구원에서 근무한 경력덕에 누구보다 신약 개발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고 있다. 레고켐바이오 공동창업자로 창업과 상장 그리고 상장 후 성장 과정을 모두 겪었다. 업계서 보기 드문 이력과 연륜을 지닌 그에게 많은 후배 바이오텍 CFO들이 조언을 구한다. 자연스럽게 대전 바이오 클러스터에 CFO 모임이 형성됐다.

모임의 좌장격인 그는 시니어 CFO로서 그간 축적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눈다. 숨기고 싶을 법한 실수나 패착도 서슴없이 공유한다. 후배들이 같은 고난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 바이오 기업 CFO는 "누구나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숨기고 싶어하기 마련인데 박 부사장은 실수나 실패했던 경험도 솔직하게 얘기한다"며 "본인의 경험에서 깨달은 노하우와 철학을 모두 나눠주기 때문에 귀감이 된다"고 말했다.

박세진 레고켐바이오 수석부사장

수많은 후배 바이오텍 CFO들이 박 부사장에게 어떤 역량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정직함'을 꼽았다. 레고켐바이오를 성장시키는 20년간 수많은 투자자들을 만나면서 그는 정직함을 늘 최우선으로 삼았다. 정직한 자세에서 좋은 투자 파트너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 부사장은 "바이오텍의 평판을 결정하는 건 VC"라며 "업계서도 인정받는 좋은 VC를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벤처'입장에서는 VC들과 함께 고민하고 힘을 모아 한몸처럼 나아갈 때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자금이 급해도 좋은 VC와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레고켐바이오에 있어 좋은 VC는 설립 초기 투자자였던 황만순(한국투자파트너스)·황창석(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신정섭(KB인베스트먼트) 등 일명 '빅가이'들이다. 그들을 설득한 덕에 약 2년 단위로 진행하는 자금 조달도 큰 어려움 없이 진행했다. 업계서도 영향력이 큰 명망높은 VC들이 레고켐바이오를 추천하면서 시장에서 존재감이 생겼다. 박 부사장이 강조하는 일명 '파장 효과'다.

아무리 정직함을 무기로 삼더라도 영향력 있는 VC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건 쉽지 않다. CFO를 비롯해 경영진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박 부사장은 설립 초기부터 투자업계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IR을 진행했다.

단 한명을 대상으로 대표이사와 연구소장, 개발본부장 등 회사 핵심 인력들이 모두 모여 회사의 기술과 프로젝트를 몇 시간에 걸쳐 소개했다. 대상이 어떤 백그라운드를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키메시지와 사용하는 용어를 다듬어 맞춤형 IR을 선보였다. 투자자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화두를 던져줘야 한다는 것이 박 부사장의 IR 원칙이다.

그는 "같은 콘텐츠, 생소한 콘텐츠라도 어필할 수 있는 메시지를 만들어내고 꾸준히 시장과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이오텍 CFO의 역할"이라며 "나름대로의 노하우로 IR을 활발히 진행했고 덕분에 지금도 레고켐바이오는 애널리스트 리포트가 가장 많이 나오는 바이오텍 중 한곳이 됐다"고 말했다.

◇축포 터뜨릴 시기 '위기' 진단…더 큰 성장 위한 실탄 마련

CFO지만 사내이사로서 경영 전반의 큰 그림을 그리는 박 부사장은 목표가 분명하고 명확한 계획이 있다면 자금 전략도 명쾌해진다고 본다. 2021년 유상증자 규모가 1600억원에 달한 것도 분명한 목표에서 비롯됐다. 그동안의 '패스트 팔로워' 전략에서 '퍼스트 무버'로 전환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판단했다.

이 판단을 내린 때는 1년간 5건의 기술수출로 1조5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킨 2020년 연말이다. 축포를 터뜨릴 시기 박 부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오히려 위기의식을 느끼고 이듬해 '2030 비전'을 발표했다.

박 부사장은 "당시 글로벌 ADC 톱인 시젠(Seagen)의 전략을 따라 2030년까지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이를 위한 주요 사업전략 중 첫번째는 독자적으로 임상을 진행해 부가가치를 최대한 높여 기술수출을 하고자 했고 5년 내 5건의 1상에 드는 비용을 계산하니 1600억원이라는 숫자가 나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마침 글로벌에서 ADC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며 천운이 들어온 듯했다"며 "지금까지 쌓아온 기술력으로 이번 기회를 적극적으로 살리고자 당초 계획보다 속도를 두 배 높였다"고 덧붙였다.

레고켐바이오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12월 얀센과 체결한 TROP2-ADC 신약 물질 'LCB84' 기술수출 계약은 반환의무가 없는 계약금 1억달러(한화 1304억원), 총 계약규모 17억2250만달러(한화 2조2458억원)로 회사 역사상 최대 규모의 딜이었다.

국내 바이오 업계 전체로 놓고 봐도 계약금과 총 규모 모두 '역대급'이다. 다른 계약에서는 볼 수 없는 '단독개발 옵션 행사금'과 공시에 기재되지 않은 임상지원금을 고려하면 사실상 계약금이 4000억원 수준에 달한다.

박 부사장은 "1600억원 펀딩 단계부터 계획했던대로 LCB84의 자체 1상 진행을 준비 중이었고 그 과정에서 몇 곳의 글로벌 제약사가 기술이전을 제안했는데 1상 단독 진행을 고수했다"며 "얀센이 초기부터 임상 플랜을 짜기 위해 공동임상을 제안했고 그 과정에서 미국 임상 연구비용의 절반을 지원하고 임상 종료 전 단독개발옵션을 행사하기로 해 매우 좋은 계약이 성사됐다"고 말했다.

더 기대되는 부분은 이번 딜이 레고켐바이오가 자체 임상을 계획한 5개 후보물질 중 첫 번째라는 점이다. 얀센 빅딜로 레고켐바이오는 후속 물질들의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게 됐다.

그는 "펀딩 이후부터 글로벌에서 ADC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현 시기는 레고켐바이오에 천운과도 같다"며 "지금까지 쌓아온 기술력을 통해 적극적으로 살리고자 개발 속도를 두 배 높이는 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우리는 돈으로 시간을 사고 있고 보유현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레고켐바이오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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