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은 우수한 신용도를 보이는 계열사를 여럿 보유 중인 대기업집단이다. AAA급인 SK텔레콤을 비롯해 AA급 이상 신용등급으로 평가받는 계열사만 10여개에 달한다.
하지만 적극적인 투자 활동으로 확대된 차입은 SK그룹이 풀어야 할 주요 과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리밸런싱이 시작된 지난해 신용평가사에서는 신용등급 조정없이 상황을 지켜보는 방향을 택했다. 하지만 올해는 일부 석유화학 및 2차전지 계열사를 중심으로 신용등급 혹은 등급 전망 조정이 이뤄졌다. 아직은 신용평가사간에도 이견이 발생하고 있기는 하지만 상황이 SK그룹에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주식자본시장(ECM)을 통한 조달이 이전보다 어려워진 상태다. 투자은행(IB) 및 신용평가업계에서는 SK그룹의 리밸런싱 작업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상향조정 없지만, 등급·전망 하향조정도 '이견'
올 상반기 실시된 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 등 신평3사의 정기평가에서 신용등급이 상향조정됐거나 신용등급 전망이 '긍정적'으로 변경된 SK그룹 계열사는 한 곳도 없다.
반면 일부는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거나 등급전망이 '부정적'으로 변경됐다. 크레딧 리스크가 불거진 2차전지 및 석유화학 계열사들이 그 대상이다. 단 신평3사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는 일은 드물었다.
이번 정기평정 기간 SKC와 SK어드밴스드의 신용등급이 조정됐다. 신평3사 중 한신평은 SKC의 신용등급을 기존 A+(부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변경했다. 이미 한기평 및 나신평의 등급하향 기준을 충족한 상태인 만큼 추가적인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SKC는 SK그룹의 2차전지 및 반도체 소재, 화학 계열사 일부를 거느리고 있는 중간 지주사다. 주요 사업인 2차전지용 동박과 화학 사업의 부진이 겹치며 2023년과 2024년 2년 연속으로 적자를 이어갔다. 대규모 투자로 인한 재무부담이 컸던 상태였던 만큼 이익창출력 부진은 등급 하락으로 작용했다.
2021년 말 기준 2조8901억원이었던 SKC의 연결 총차입금은 올 1분기 말 3조8209억원으로 4년간 약 1조원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170.8%에서 208.1%로, 차입금의존도는 46.8%에서 55.6%로 높아졌다.
SK가스의 자회사로 프로필렌 및 부산물을 생산·판매하는 석유·가스화학 계열사 SK어드밴스드의 신용등급도 이번 정기평가에서 한 노치 조정됐다. 기존 A-(부정적)이었던 SK어드밴스드의 신용등급은 BBB+(부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적자를 낸 SK어드밴스드는 재무 안정성이 크게 저하된 상태다. 한국신용평가 측은 "수년간 손실이 누적되면서 자본여력이 소진되고 있으며 재무 레버리지 지표가 빠르게 저하되는 추세"라고 평가했다.
이외 AA-급인 SK이노베이션의 석유화학 자회사 SK지오센트릭은 엇갈리는 등급전망을 받게 됐다. 한신평은 '안정적' 아웃룩을 유지했지만 한기평과 나신평은 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하며 SK지오센트릭의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SK이노베이션의 2차전지 소재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도 기존 A급 신용등급이 유지됐지만 나신평은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마찬가지로 나신평은 SKC의 석유화학 자회사 SKC피아이씨글로벌의 신용등급을 A-급으로 유지하며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바꿨다.
◇2차전지·석화, SK그룹 '약한 고리'되나
SK그룹 전반으로 보면 꾸준한 투자 수요를 가지고 있는 기업집단이다. IB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은 신용등급 방어에 나서야 하는 자본시장을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는 그룹"이라며 "우량한 계열사들이 다수 포진해있고 그룹 자체의 신용도가 탄탄한 만큼 꾸준한 투자 수요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신평사의 정기평가 결과는 그룹의 지원 가능성 등을 고려해도 SK그룹의 2차전지, 석유화학 산업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제 재무 리스크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SK온의 경우 공모채 시장을 통한 조달을 쉽사리 도전하지 못했다. 이번 정기평가에서도 A+(안정적)의 신용등급을 유지하기는 했으나 시장에서 충분한 투자수요를 모을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한 셈이다.
특히 주식자본시장(ECM)을 통한 조달 난이도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코스피 상장을 추진 중이던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는 중복상장 논란이 불거지며 IPO 절차를 중단했다. SK이노베이션이 SK엔무브의 재무적투자자(FI) 지분을 취득하기로 결정하며 상장 추진 중단에 대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IB업계 다른 관계자는 "중복상장을 판단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어 가이드라인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 SK그룹 계열사 중 IPO를 통한 조달이 필요한 곳이 많다는 점이다. 상장 플랜 가동을 시작한 SK플라즈마부터 SK에코플랜트, SK온까지 FI들과 IPO 약정을 맺은 상태다. 주식 발행을 통한 조달 창구가 막히게 될 경우 자체적인 자금 소요가 늘어나게 되는데, 이는 재무부담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