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의 전략 선회는 인사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GS는 20년 가까이 재무 전문가를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앉혀왔지만 이태형 부사장을 기점으로 코드가 달라졌다. 이제 단순한 금고지기보단 앞을 먼저 내다볼 전략형 리더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형 부사장뿐 아니라 같이 손발을 맞추고 있는 최누리 업무지원팀장 부사장, 허준녕 미래사업팀장 부사장을 포함한 조직 구성을 봐도 GS의 새로운 방향성은 선명하다. 신사업 발굴, 미래를 위한 변화를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4대 만에 등장한 '전략가' CFO, 공학도 이태형 부사장 GS는 관례적으로 재무통 CFO를 선호해 왔다. 현재 허태수 회장과 함께 GS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홍순기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2020년 GS 최고경영자(CEO)로 영전하기 전까지 2009년부터 10년 넘게 CFO로서 GS 살림꾼 역할을 했다. 재무에 빠삭하기론 그룹 전체에서 손꼽힌다.
GS의 초대 CFO인 이완경 코스맥스비티아이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럭키금성 기조실 재무과에 입사해 LG구조조정본부 관리팀장, LG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재경총괄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GS의 첫 CFO가 된 것은 2004년이다. 또 홍순기 부회장의 후임 CFO였던 김석환 GS EPS 대표 역시 이 부회장과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김 대표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LG투자증권에 입사해 IB(투자은행)업무를 담당했었다. 그러다 2005년 GS홀딩스(현 GS) 사업지원팀을 거쳐 GS EPS와 GS글로벌의 CFO를 지내는 등 주로 재무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전통적 재무전문가를 등용하던 기조가 달라진 것은 2022년부터다. 4대 CFO(재무팀장)로 이태형 부사장이 부임했다. 이 부사장은 서울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GS에너지 경영기획부문장, 인천종합에너지 대표를 지내는 등 경력이 재무보다는 시장 분석과 사업 전략 수립, 기획 등 경영전반에 더 쏠려 있다.
인사 경향이 바뀐 이유는 뭘까. 허태수 회장이 취임한 이후 GS그룹이 투자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평이다. GS는 2020년부터 GS퓨처스, GS벤처스, GS인피니티, 퍼먼트 GS 벤처 스튜디오 등 벤처캐피탈이나 투자법인을 줄줄이 설립했다. 2021년 휴젤과 요기요를 연이어 사들이기도 했다. 신사업 찾기에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GS에 정통한 관계자는 "GS는 지금 디테일한 재무 역량보다는 전략적 사고가 가능한 CFO가 필요한 시기"라며 "단순히 피투자회사, 매물의 밸류이이션 측정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성장할 기술인지 또는 미래 잠재 가능성이 어떤지를 파악할 수 있는 인물이라 보고 이태형 부사장을 발탁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태형·최누리·허준녕, 전환 위한 '세 날개' 최근 GS의 인력 구성을보면 이태형 부사장 외에도 미래사업 발굴, 사업방식 혁신을 위한 안배가 엿보인다. GS는 허태수 회장과 홍순기 부회장 아래 3인의 부사장을 배치하고 있다. 업무지원팀장인 최누리 부사장, 미래사업팀장인 허준녕 부사장이다.
이들 중 최 부사장은 허태수 회장이 계속해서 강조해온 '디지털 전환'을 대변한다. 경기과학고를 조기졸업한 뒤 카이스트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SDS와 삼성전자를 거쳐 GS그룹에 합류했다. 이후 GS홈쇼핑 경영기획담당 본부장으로서 데이터 기반의 이슈 해결, 사업방식 개선을 주도한 디지털 전문가다. 작년 말 인사에서 승진했으며 허 회장이 미국 빅테크를 찾을 때마다 동행할 만큼 신임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사실상 비서실장 역할을 한다고 전해진다.
최 부사장은 프로그래밍 언어와 소프트웨어 개발, 시뮬레이션 등에도 숙련돼 있다. 최근엔 쉘린 리(Charlene Li)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중이다. 쉘린 리는 전 포레스터 리서치 부사장으로 '시장의 파괴자들', '오픈 리더십' 등을 집필했다. 그가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에서의 전략적 초점 전환, 조직 문화 변화 등에 대해 기업과 재계 리더 등을 상대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 부사장, 나아가 허태수 회장의 관심사를 짐작할 수 있다.
허준녕 부사장의 경우 투자 전문가로 분류된다. 미국 시카고대 MBA를 졸업한 후 미래에셋 글로벌 인베스트먼트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로 옮겨 뉴욕 본사에서 인수합병(M&A) 부문 이사, 한국 및 아시아 M&A 총괄을 맡기도 했다. GS가 2021년 영입했으며 신사업과 벤처 투자 등을 전담하고 있다.
이태형 부사장과 최누리 부사장은 분야는 다르지만 기술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부 결이 같다. 투자감각은 허준녕 부사장이 갖추고 있다. 대표이사인 홍순기 부회장이 재무통인 만큼 휘하 부사장들은 미래를 위한 변화에 집중해 포진케 한 셈이다.
GS 관계자는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는 미래사업팀이 총괄하고 투자 후 사업현황에 대한 파악과 방향성 분석은 이태형 부사장이 총괄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