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폴른엔젤 리스크

신용등급 소멸 AK플라자…사라진 시장 조달카드

①차입 3800억 대응 부담…애경케미칼 등 계열사도 동반 부진

백승룡 기자  2025-07-17 16:12:52

편집자주

채권시장에서는 신용등급이 투자적격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하락한 기업을 ‘폴른엔젤(Fallen Angel)’이라고 일컫는다. 투기등급으로 낮아지게 되면 시장의 투자수요가 급감해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금리도 큰 폭 치솟는다. 특히 투자적격등급이었던 홈플러스마저 올해 3월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면서 시장의 경계감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더벨은 폴른엔젤이 됐거나 앞으로 가능성이 높은 기업의 조달여건을 짚어보고자 한다.
애경백화점에서 이름을 바꾼 에이케이플라자(AK플라자)는 올해 상반기까지 신용등급이 BBB-(부정적)이었다. 최상위 신용등급인 AAA부터 BBB-까지 총 10개 등급으로 이뤄진 투자적격등급 중에서 가장 낮은 등급으로 ‘부정적’ 아웃룩까지 붙은 탓에 올해는 투기등급인 BB+ 등급으로의 강등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AK플라자는 이달 초 보유 회사채 100억원을 상환하면서 신용등급을 소멸시켰다.

◇BBB- 등급서 신용등급 소멸…사실상 투기등급으로 떨어져

회사채 상환자금은 사모채 발행을 통해 마련했다. 만기는 1년인데 금리는 연 6.5%로 상당히 높게 책정됐다. AK플라자는 지난해에도 만기 1년으로 사모채를 발행한 바 있다. 당시 금리는 연 6.98%였다. 1년 사이 금리가 0.5%포인트가량 낮아지긴 했지만, 같은기간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4차례에 걸쳐 1%포인트 인하된 것과 비교하면 시장의 금리 하락 폭에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 해당 사모채가 신용등급을 요구하지 않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AK플라자의 등급 소멸로 이어졌다.

AK플라자가 신용등급을 유지했다면 직전 등급과 실적 추이를 고려했을 때 BB+ 등급 수준으로 내려앉았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지난 2020년부터 적자(-221억원)로 돌아선 AK플라자는 지난해에도 영업손실 180억원을 기록하면서 5년간 누적 적자가 1108억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실적 턴어라운드를 이뤄내지 못한 AK플라자는 등급을 소멸시키는 방식으로 투기등급 강등을 표면적으로나마 피한 셈이다.

투기등급 구간에서는 회사채 발행 등 통상적인 시장성 조달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기관투자자들이 투자할 수 없는 등급인 것은 물론이고,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회사채를 중개하는 증권사 리테일 창구에서도 투기등급은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대다수 투기등급 기업들이 전환사채(CB) 등 메자닌 증권을 활용해 자금조달을 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는 AK플라자의 시장성 조달여건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말 기준 AK플라자의 전체 차입금은 약 3800억원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향후 만기도래 물량에 대해 차환 등 대응여력이 취약해진 것이다. AK플라자의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460억원 규모로 턱없이 부족하다.

◇애경케미칼·제주항공 부진, 그룹내 지원여력도 약화

AK플라자는 백화점 4곳(분당·수원·원주·평택), 쇼핑몰 5곳(홍대·광명·기흥·금정·세종)을 보유하고 있다. 지역 요지를 중심으로 점포망을 구축했다는 강점이 있지만, 점포 수가 적어 외형 정체가 지속됐다. 특히 심화되는 경쟁 속에서 시장트렌드 대응이 미흡했던 것이 AK플라자의 실적 부진이 지속되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최한승 한국기업평가 실장은 “백화점 업태가 명품 브랜드 구매 채널로 자리 잡으면서 고객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지속적인 리뉴얼과 상품기획(MD) 개편의 중요성이 커졌다”며 “AK플라자는 명품 MD가 비교적 적었던 데다가 점포망도 작아 트렌드 대응에서 열위의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적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자본 감소 등으로 재무부담도 과중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AK플라자의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이 지속되면서 결손금도 불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AK플라자의 자본은 953억원을 나타냈는데, 미처리결손금만 1281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당기순손실 573억원에 더해 이월미처리결손금 708억원이 있었던 탓이다. 이를 반영하면 사실상 자본잠식에 빠졌다.

AK플라자는 지난 2023년 AK홀딩스와 애경자산관리를 상대로 유상증자에 나서 1000억원 규모의 자본 확충을 단행하기도 했다. 다만 AK홀딩스조차 유동성이 빠듯해지면서 그룹의 모태이기도 한 애경산업 매각을 추진하고 있어, 이를 마치기 전까지는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력 계열사였던 애경케미칼과 제주항공도 동반 부진에 빠지면서 그룹 내 캐시카우 역할을 할만한 곳도 없다.

애경케미칼은 중국의 공급 과잉으로 석유화학 업황이 전반적인 침체에 빠지면서 지난해 영업이익은 155억원에 그쳐, 전년(451억원)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제주항공은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1위인 곳이었지만 지난해 말 무안국제공항 착륙 사고 이후 승객이 크게 줄면서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326억원 규모 적자로 돌아섰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AK플라자를 끝으로 애경그룹에는 신용등급을 보유한 곳이 단 한 곳도 없다”며 “사실상 그룹 전체에서 크레딧을 기반으로 시장성 조달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애경산업이라는 계열사를 넘기는 자산매각 방식으로 현금을 확보하는 열악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