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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믹스 왕좌 오른 동서식품 성장사

유영진 기자  2026-08-03 07:59:08

편집자주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목차

1. 개요

2. 수입 완제품을 국내 생산으로 바꾸다

2.1.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커피

2.2. 동서식품 설립과 제너럴푸즈

3. 세 통의 재료를 한 봉지에 담다

3.1. 핵심 재료 '프리마'

3.2. 한 봉지에 담긴 한 잔

3.3. 다방 밖으로 나온 커피

3.4. 맥심이 커피믹스의 표준이 되다

4. 네슬레가 문을 두드리다

4.1. 세계 최대 식품기업의 진입

4.2. 병 커피와 커피믹스로 갈린 승부

5. 커피믹스 밖에서 시작된 경쟁

5.1. 커피전문점이 바꾼 한 잔

5.2. 커피믹스 안에서 넓힌 선택지

6. 남양유업이 성분 전쟁을 걸다

6.1. 우유를 앞세운 후발주자

6.2. 논란이 키운 후발 브랜드

7. 두 개의 시장에 답하다

7.1. 아메리카노를 스틱에 담다

7.2. 화이트골드로 커피믹스를 지키다

8. 새로운 도전지 캡슐커피로 나서다

8.1. 왕좌를 지킨 뒤 도전자가 되다

8.2. 타시모의 실패가 남긴 과제

8.3. 홈카페가 연 두 번째 기회

8.4. 한국인이 마시는 한 잔에 답을 찾다

8.5. 선두 기업의 새로운 시험대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8월 3일

1. 개요접기



동서식품이 커피믹스를 출시한 지 올해로 50년이 됐다. 원두커피가 일상으로 자리 잡은 지금도 하루 약 2200만잔의 커피믹스가 팔린다. 한 해 판매량만 약 80억잔 분량에 달한다. 커피를 마시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커피믹스 왕좌는 흔들리지 않았다.

동서식품의 출발점은 인스턴트커피의 국내 생산이었다. 수입 완제품과 미군 보급품이 비공식 경로로 유통되던 시절 수입 원두를 들여와 인스턴트커피를 국내에서 직접 만들겠다는 의지로 생산 기반을 마련했다. 1976년에는 커피, 크리머, 설탕을 한 봉지에 담은 '맥스웰하우스 커피믹스'를 세계 최초로 선보이며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시장을 선점했다는 이유만으로 반세기 동안 1위를 지켰다고 설명할 수 없다. 1989년 네슬레가 '테이스터스 초이스'를 앞세워 국내 시장에 진입했고 2010년대에는 남양유업이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로 점유율을 파고들었다. 커피전문점이 확산되면서 경쟁 무대도 인스턴트커피에서 원두커피와 홈카페로 넓어졌다.

동서식품은 시장 변화에 맞춰 주력 브랜드와 제품 형태를 바꿨다. 맥스웰하우스에서 맥심으로 중심축을 옮겼고 카누로 인스턴트 원두커피 시장을 열었다. 병에 담긴 인스턴트커피와 커피믹스에서 스틱형 원두커피와 캡슐로 '한 잔의 기준'을 거듭 바꾼 것이 동서식품의 역사다.

이 문서는 해방 이후 인스턴트커피의 유입부터 1968년 동서식품 설립과 커피믹스 개발, 후발주자의 공세와 카누·캡슐커피 도전까지 동서식품이 커피 시장의 왕좌에 오르고 지켜온 과정을 시간 순으로 정리한다.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동서빌딩 외경.

2. 수입 완제품을 국내 생산으로 바꾸다접기



2.1.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커피접기



해방 이후 국내에 커피가 퍼진 주요 통로는 미군부대였다. 미군 보급품으로 들어온 인스턴트커피가 시중에서도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커피를 접하는 사람이 자연스레 늘어났다. 커피 소비가 넓어지자 이를 마실 수 있는 다방도 활기를 띠었다. 6·25 전쟁 이후에는 다방이 도심의 대표적인 만남 장소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에는 명동, 종로, 충무로 등을 중심으로 음악다방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다방이 젊은 층의 만남과 여가 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커피도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의 음료에서 대중적인 기호품으로 변해갔다.

문제는 공급이었다. 정부가 커피 완제품 수입을 제한하면서 시중 물량 상당수는 미군 보급품이나 밀수품에 의존했다. 적은 양으로 얼마나 많은 커피를 만들어 내느냐가 다방 주인의 솜씨를 가르는 기준이 될 만큼 귀했다.

수요가 커질수록 불안정한 유통 구조의 한계도 뚜렷해졌다. 원두를 들여와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가공할 기업이 필요했다. 동서식품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수입 완제품에 의존하던 시장을 국내 생산 체제로 바꾼 전환점이었다.

2.2. 동서식품 설립과 제너럴푸즈접기



동서식품은 1968년 설립됐다. 당시 국내에는 참고할 만한 커피 생산시설도, 제조기술도 없었다. 회사는 처음부터 모든 기술을 개발하기보다 해외 기업과 손잡고 생산 기반을 빠르게 갖추는 길을 택했다.

파트너는 미국 제너럴푸즈였다. 당시 '맥스웰하우스'와 '맥심'을 보유한 글로벌 식품기업이었다. 두 회사는 1970년 6월 커피 제조 기술도입 계약을 맺었다.

생산 거점은 인천 부평에 마련하고 1970년 9월 볶은 원두를 분쇄한 '맥스웰하우스 레귤러 그라인드커피'를 내놨다. 부평공장을 완공한 뒤 생산한 첫 제품이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물에 녹여 마시는 인스턴트커피 생산설비도 갖췄다.

부평공장은 다방과 가정을 함께 겨냥했다. 분쇄 원두는 다방에 공급했고 인스턴트커피는 가정용으로 판매했다. 외국산 완제품에 의존하던 커피 시장이 소비처에 맞춘 제품을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는 체제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인스턴트커피의 등장으로 커피를 마시는 장소도 다양해졌다. 가정뿐 아니라 직장, 작업장, 등산로 등에서도 뜨거운 물만 있으면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다만 이때까지는 커피 한 잔을 만들려면 커피, 설탕, 크리머를 모두 따로 준비해야 했다.

재료를 넣는 사람에 따라 맛도 달라졌다. 여러 사람의 커피를 한꺼번에 탈 때는 매번 양을 맞추기도 번거로웠다. 동서식품의 다음 과제는 누구나 손쉽게 같은 맛을 낼 수 있는 한 잔을 만드는 일이었다.

3. 세 통의 재료를 한 봉지에 담다접기



3.1. 핵심 재료 '프리마'접기



먼저 풀어야 할 과제는 커피의 쓴맛을 줄여주는 크리머였다. 당시 다방에서 사용하던 연유와 액상 크리머는 보관 기간이 짧고 운반도 까다로웠다. 커피와 함께 포장하려면 수분이 적고 물에 잘 녹는 분말 형태가 필요했다.

동서식품은 1974년 12월 식물성 분말 커피 크리머 '프리마'를 출시했다. 크리머가 제품 종류라면 프리마는 동서식품이 붙인 브랜드명이다. 국립공업표준시험소의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며 상용화에 성공했다.

분말 형태의 프리마는 액상 제품보다 보관과 운송이 쉬웠다. 커피, 설탕과 함께 포장해도 습기로 굳거나 변질될 가능성이 작았다. 프리마의 등장은 세 가지 재료를 한 봉지에 담은 커피믹스를 만드는 밑바탕이 됐다.

3.2. 한 봉지에 담긴 한 잔접기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커피, 설탕, 프리마를 한 번 마실 분량으로 나눠 한 봉지에 담는 것이었다. 하지만 입자와 무게가 서로 다른 세 재료를 매번 같은 비율로 채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느 봉지를 뜯어도 같은 맛이 나려면 생산라인부터 새로 손봐야 했다. 재료가 일정하게 투입되도록 배합 방식을 조정하고 습기로 내용물이 굳지 않도록 포장 기술도 갖춰야 했다. 동서식품은 설비가 멈추거나 배합이 달라지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공정을 다듬었다.

결과물은 1976년 12월 나왔다. 동서식품은 한 번에 마실 분량의 커피, 설탕, 프리마를 담은 '맥스웰하우스 커피믹스'를 선보였다. 세계 최초의 커피믹스였다.

새로운 원료를 개발한 제품은 아니었다. 다방이나 가정에서 세 재료의 양을 따로 맞추던 과정을 봉지 하나로 줄인 것이 핵심이었다. 소비자는 별도의 계량 없이 뜨거운 물만 부으면 언제든 같은 맛의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커피의 단맛과 풍미, 부드러움을 제품이 미리 정해주면서 커피를 타는 사람의 솜씨도 중요하지 않게 됐다. 동서식품은 인스턴트커피를 국내에서 생산한 데 이어 누구나 같은 맛을 낼 수 있는 '한 잔의 표준'까지 만들었다.

1976년 맥스웰 커피믹스

3.3. 다방 밖으로 나온 커피접기



커피믹스의 간편함은 사무실, 공사현장, 등산로 등에서 빛을 발했다. 컵과 뜨거운 물만 있으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 커피 자판기도 지하철역, 고속도로 휴게소 등으로 퍼졌다. 자판기와 커피믹스는 형태는 달랐지만 역할은 같았다. 커피를 다방에서 주문해 마시던 음료에서 필요할 때 바로 즐기는 일상적인 음료로 바꿨다. 다방에 머물던 커피가 거리, 일터, 가정으로 스며들며 커피의 대중화에도 속도가 붙었다.

동서식품은 시장을 선점하고 생산 기반도 갖추고 있었다. 인스턴트커피 설비와 프리마 대량생산 체제를 확보했고 배합 기술과 포장 공정도 축적했다. 제품 개발부터 생산까지 이어지는 기반은 후발업체가 단기간에 따라오기 어려운 장벽이 됐다.

대중화에 성공한 동서식품의 다음 과제는 커피의 품질이었다. 간편함을 넘어 향과 맛을 끌어올려야 했다. 커피믹스로 시장을 넓힌 동서식품은 더 나은 한 잔을 만들기 위한 기술 개발에 나섰다.

3.4. 맥심이 커피믹스의 표준이 되다접기



1980년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은 인스턴트커피에서도 맛과 향을 따지기 시작했다. 당시 널리 쓰이던 분무건조 방식은 대량생산에 유리했지만 뜨거운 공기로 수분을 날리는 과정에서 커피 향을 온전히 살리기 어려웠다.

동서식품은 대안으로 동결건조 방식에 주목했다. 커피 추출액을 얼린 뒤 진공 상태에서 수분을 제거하는 공법이었다. 낮은 온도에서 건조하기 때문에 원두의 맛과 향을 살리는 데 유리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설비가 복잡한 데다 대규모 투자도 필요했다. 제너럴푸즈는 한국 시장이 고급 인스턴트커피를 받아들이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했다. 반면 동서식품은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간편함을 넘어 품질을 찾는 수요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회사는 제너럴푸즈를 설득해 1978년 10월 '맥심' 브랜드 도입 계약을 맺었다. 1980년 10월에는 병에 담긴 동결건조 인스턴트커피 맥심을 출시했다.

시장의 반응은 빨랐다. 1981년 10월 17톤이던 맥심 판매량은 다음달 54톤으로 늘었다. 맥스웰하우스로 인스턴트커피의 국내 생산 기반을 마련한 동서식품은 맥심을 통해 고급 인스턴트커피 시장까지 열었다.

동서식품은 1987년 맥심을 커피믹스로 확장했다. 기존 사각형 파우치는 길쭉한 스틱으로 바꾸고 커피, 크리머, 설탕을 차례로 나눠 담았다. 오늘날 익숙한 커피믹스의 형태가 이때 완성됐다.
1987년 동결건조 방식으로 만든 인스턴트커피 '맥심'.

스틱 포장은 휴대성과 사용 편의성을 함께 높였다. 설탕이 담긴 끝부분을 손으로 눌러 컵에 들어가는 양을 조절할 수 있었다. 한 봉지로 일정한 맛을 내면서도 소비자가 단맛을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주력 브랜드도 맥스웰하우스에서 맥심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맥스웰하우스가 인스턴트커피의 국내 생산과 시장 개척을 이끌었다면 맥심은 높아진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품질을 앞세웠다.

4. 네슬레가 문을 두드리다접기



4.1. 세계 최대 식품기업의 진입접기



정부가 1987년 커피 수입 규제를 풀면서 동서식품의 독주에도 균열이 생겼다. 세계 최대 식품기업 네슬레가 1989년 '테이스터스 초이스'를 선보이며 국내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테이스터스 초이스는 진출 1년 만에 인스턴트커피 시장 점유율 19%를 차지했다. 맥심보다 가격이 높았지만 고급 외국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소비자를 끌어당겼다. 동서식품은 시장을 선점한 효과만으로 1위를 지키기 어려워졌다.

네슬레는 병에 담은 인스턴트커피를 앞세워 국내 시장을 공략했다. 커피믹스 시장까지 흔들지는 못했지만 동서식품이 처음 맞닥뜨린 대형 경쟁자였다. 네슬레가 제품력과 브랜드를 앞세우면서 국내 생산 기반과 유통망에 기대온 동서식품의 성공 공식도 시험대에 올랐다.

4.2. 병 커피와 커피믹스로 갈린 승부접기



두 회사는 서로 다른 전략을 택했다. 네슬레가 유리병에 담긴 인스턴트커피 고급 수요를 공략하는 동안 동서식품은 커피믹스를 차세대 주력 시장으로 키웠다. 한쪽은 해외 브랜드 이미지에 무게를 뒀고 다른 쪽은 일상에서 자주 마시는 한 잔에 집중한 셈이다.

네슬레를 비롯한 여러 업체가 뛰어들면서 커피 시장의 경쟁은 치열해졌다. 회사는 한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부드럽고 깔끔한 맛과 향을 구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 결과 탄생한 제품이 1989년 출시한 '맥심 모카골드 커피믹스'였다. 1987년 맥심 커피믹스에 동결건조 커피와 스틱 포장을 도입한 데 이어 맛까지 한국인 취향에 맞게 다듬었다.
동서식품의 대표 제품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커피믹스'.

모카골드 개발의 초점은 세 원료의 균형이었다. 동서식품은 원두 배합, 로스팅 강도, 추출 공정을 손보며 커피, 프리마, 설탕이 어우러지는 최적의 비율을 찾았다. 커피 향은 살리면서 쓴맛을 낮춰 부드러운 맛을 구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커피믹스가 병에 담긴 인스턴트커피를 앞서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는 IMF 외환위기였다. 소비자들이 커피값을 아끼면서 다방이나 커피숍 대신 사무실에서 직접 타 마시는 문화가 퍼졌다. 같은 시기 정수기도 빠르게 보급되면서 간편한 커피믹스가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동서식품은 커피믹스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전부터 제품과 생산 기반을 갖춰 외환위기 이후 늘어난 수요를 빠르게 흡수했다. 반면 네슬레는 병 제품의 초기 돌풍을 커피믹스로 잇지 못했고 2000년대 들어서야 커피믹스 생산을 본격화했다. 동서식품은 시장의 성장 방향을 먼저 예측하고 준비하며 네슬레와 격차를 벌렸다.

5. 커피믹스 밖에서 시작된 경쟁접기



5.1. 커피전문점이 바꾼 한 잔접기



2000년대 들어 국내 커피시장의 흐름은 다시 달라졌다. 스타벅스, 이디야, 커피빈 등 커피전문점이 늘어나면서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가 일상으로 들어왔다. 소비자가 커피를 고르는 기준도 커피믹스의 단맛과 부드러움에서 원두 산지, 향, 로스팅으로 확대했다.

커피를 마시는 방식도 변화했다. 사무실에서 빠르게 타 마시는 음료에 머물지 않고 카페에서 취향에 맞는 원두와 메뉴를 고르는 소비가 퍼졌다. 또한 맛뿐 아니라 카페 공간에서의 경험을 찾는 소비자도 늘었다.

커피믹스가 곧바로 밀려난 것은 아니었다. 익숙한 맛과 낮은 가격은 여전히 강점이었다. 뜨거운 물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정한 맛을 낼 수 있다는 편리함은 커피전문점이 대체하기 어려웠다.

다만 시장의 무게중심은 이미 아메리카노로 기울었다. 소비자들은 설탕과 프리마가 들어간 커피믹스 대신 커피 본연의 맛을 살린 아메리카노를 찾았다. 동서식품이 맞서야 할 상대도 커피믹스 업체가 아닌 커피전문점이었다.

5.2. 커피믹스 안에서 넓힌 선택지접기



동서식품은 기존 커피믹스의 경쟁력을 다듬는 작업부터 이어갔다. 1996년 첫 맥심 리스테이지를 시작했고 2000년과 2004년에도 품질과 제품 구성을 손봤다. 변화한 입맛을 반영하되 맥심 특유의 맛은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제품군도 세분화했다. 2007년에는 아라비카 원두를 앞세운 '맥심 아라비카100'과 라떼 수요를 겨냥한 '맥심 라떼디토'를 선보였다. 2008년에는 '맥심 웰빙 1/2칼로리 커피믹스'를 내놓으며 열량 부담을 낮춘 제품까지 추가했다.

편의성도 개선했다. 동서식품은 2007년 맥심 커피믹스를 비롯한 낱개 포장 제품에 가로로 쉽게 뜯을 수 있는 '이지 컷'을 도입했다.

이 같은 변화는 커피믹스의 기존 수요를 지키는 데 효과를 냈다. 그러나 커피, 프리마, 설탕의 배합을 바꾸는 것만으로 아메리카노 수요까지 흡수하기는 어려웠다. 소비자는 커피전문점에서 마시던 원두커피의 맛과 향을 집과 사무실에서도 원했다.

동서식품에는 커피믹스의 간편함과 아메리카노의 맛을 한 제품에 담아야 한다는 과제가 생겼다. 해답은 기존 커피믹스를 다시 손보는 데 있지 않았다. 새로운 인스턴트 원두커피 시장을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6. 남양유업이 성분 전쟁을 걸다접기



6.1. 우유를 앞세운 후발주자접기



커피전문점과 경쟁이 거세지던 시기 커피믹스 시장에서도 새로운 도전자가 등장했다. 남양유업은 2010년 12월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를 선보이며 동서식품에 도전장을 던졌다. 동서식품으로서는 네슬레에 이어 두 번째 방어전에 들어간 셈이었다.

남양유업은 카제인나트륨을 빼고 무지방 우유를 함유한 크리머를 사용했다는 점을 앞세웠다. 유가공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무기로 동서식품이 원두와 배합을 중심으로 경쟁해온 시장에 '우유'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소비자의 관심도 맛과 향에서 크리머 성분으로 번졌다.

남양유업은 광고에서 '화학적 합성품인 카제인나트륨을 뺐다'는 점을 강조했다. 허가된 식품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다른 제품에는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논란이 일었다.

6.2. 논란이 키운 후발 브랜드접기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해당 문구가 기존 제품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오인하게 할 우려가 있다며 비방광고로 판단했다. 식약청 판단에 따라 천안시는 2011년 2월 남양유업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카제인나트륨은 물과 기름이 잘 섞이도록 돕는 유화제로 사용이 허가된 식품첨가물이었다.

행정 조치에도 카제인나트륨이라는 낯선 이름은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프렌치카페는 기존 커피믹스와 성분부터 다른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논란이 커질수록 후발 브랜드의 인지도도 함께 높아졌다.

프렌치카페는 2011년 6월 대형마트 기준 점유율 11.3%를 기록했다. 동서식품은 77.1%로 선두를 지켰지만 남양유업은 한국네슬레를 밀어내고 2위에 올랐다. 테이스터스 초이스 진출 이후 처음으로 커피믹스 시장의 2위가 바뀌었다.

남양유업이 동서식품의 선두 자리를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유'를 새로운 구매 기준으로 내세우며 오랫동안 굳어 있던 경쟁 구도에 균열을 냈다.

동서식품은 두 갈래로 대응해야 했다. 커피믹스 시장에서는 우유를 선호하는 소비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내놔야 했다. 동시에 커피믹스 밖으로 넓어지는 아메리카노 수요도 붙잡아야 했다.

7. 두 개의 시장에 답하다접기



7.1. 아메리카노를 스틱에 담다접기



동서식품은 2011년 10월 인스턴트 원두커피 '맥심 카누'를 선보였다. 남양유업의 공세가 거세지던 때였지만 카누는 커피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를 즐기기 시작한 소비자를 겨냥했다.

카누는 에스프레소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액을 동결건조한 파우더에 미세하게 간 볶은 원두를 입힌 제품이었다. 물에 녹는 커피 파우더에 분쇄 원두의 맛과 향을 더했다. 별도 추출 과정 없이도 아메리카노 맛에 가까운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한 것이다.

카누는 카페(Cafe) 또는 커피(Coffee)와 새로움을 뜻하는 뉴(New)를 결합한 이름이다. 동서식품은 카누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로 소개했다. 출시 당시에는 '맥심 카누'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익숙한 맥심 브랜드에 카누라는 새 이름을 더하면서도 모카골드와 다른 커피라는 인상은 분명히 했다.

카누는 커피전문점의 대체재에 그치지 않았다. 인스턴트 원두커피라는 새로운 시장을 대중화했다. 커피믹스에서 블랙커피로 취향을 옮긴 소비자도 동서식품 브랜드 안에 머물 수 있게 됐다.

출시 첫해 판매량은 3800만잔이었다. 2012년 2억잔을 넘어선 데 이어 2016년에는 10억3000만잔까지 늘었다. 커피믹스 밖에서 출발한 카누는 맥심 모카골드에 이은 동서식품의 대중 브랜드로 성장했다.

동서식품은 기존 주력 제품의 수요를 잠식할 가능성도 감수했다. 동서식품은 아메리카노로 향하는 소비자를 커피믹스에 붙잡아두는 대신 카누로 옮겨갈 길을 열었다. 주력 시장을 지키는 데 머물지 않고 달라진 취향에서 새로운 성장축을 만든 것이다.

7.2. 화이트골드로 커피믹스를 지키다접기



맥심 화이트골드
카누 출시 넉 달 뒤 커피믹스 시장에서도 반격에 나섰다. 2012년 2월 무지방 우유를 함유한 프리마를 사용한 '맥심 화이트골드'를 출시했다. 남양유업이 제시한 '우유'라는 기준을 맥심 제품군 안으로 흡수한 제품이었다.

화이트골드는 모카골드를 대체하기보다 제품 선택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맡았다. 모카골드가 기존 소비자의 익숙한 입맛을 지켰다면 화이트골드는 우유 맛을 선호하는 수요를 겨냥했다.

화이트골드는 출시 한 달 만에 매출 100억원을 넘어섰다. 첫해 매출은 1000억원에 달했고 시장점유율도 약 10%까지 올랐다.

동서식품은 경쟁사의 성분 공세에 해명으로만 맞서지 않았다. 소비자가 우유에 보인 관심을 새로운 제품으로 받아냈다. 모카골드와 화이트골드가 서로 다른 입맛을 나눠 맡으면서 맥심의 시장 지배력도 지킬 수 있었다.

8. 새로운 도전지 캡슐커피로 나서다접기



8.1. 왕좌를 지킨 뒤 도전자가 되다접기



화이트골드와 카누가 자리를 잡은 뒤 동서식품은 인스턴트커피 시장에서 흔들리지 않는 지위를 굳혔다. 남양유업의 공세에는 새로운 커피믹스로 대응했고 아메리카노로 옮겨가는 수요는 카누로 흡수했다. 커피믹스와 인스턴트 원두커피에서는 경쟁사를 맞이하는 선두 기업이었다.

하지만 캡슐커피에서는 입장이 달랐다. 네스프레소와 네스카페 돌체구스토를 앞세운 네슬레가 시장을 일찌감치 장악했다. 소비자도 익숙한 머신과 전용 캡슐을 중심으로 구매 습관을 형성한 상태였다.

동서식품은 이미 만들어진 시장에 뒤늦게 진입해야 했다. 커피믹스에서 새로운 기준을 세운 기업이 캡슐커피에서는 기존 기준을 깨야 하는 도전자가 된 것이다.

8.2. 타시모의 실패가 남긴 과제접기



동서식품이 캡슐커피 시장을 두드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합작 주주인 미국 크래프트푸즈가 보유한 캡슐커피 시스템 '타시모'를 들여와 업소용 '타시모 프로페셔널'을 선보였다. 이듬해에는 독일 가전업체 보쉬와 손잡고 가정용 시장까지 넓혔다.

보쉬가 머신을 맡고 크래프트푸즈가 전용 캡슐인 '티 디스크'를 생산하면 동서식품이 국내 유통을 담당하는 방식이었다.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기보다 해외에서 검증된 시스템을 들여와 국내 캡슐커피 시장의 가능성을 시험한 시도였다.

하지만 타시모는 국내 시장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캡슐커피가 대중화되기 전인 데다 네스프레소와 돌체구스토가 초기 시장을 선점한 탓이다. 해외 브랜드와 머신을 들여오는 사업 구조도 한계로 작용했다. 동서식품은 국내 유통을 맡았지만 브랜드와 제품 전반을 주도하기 어려웠다.

동서식품은 타시모를 통해 캡슐커피가 기존 커피 제품과 다른 사업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맛있는 캡슐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소비자가 머신을 선택하도록 만들고 전용 캡슐을 반복해서 구매하는 생태계까지 구축해야 했다.

8.3. 홈카페가 연 두 번째 기회접기



타시모가 물러난 뒤 시장 환경은 달라졌다.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소비자가 늘면서 홈카페가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간단한 조작만으로 원두커피를 만들 수 있는 캡슐머신의 수요도 함께 커졌다.

동서식품은 시장이 커지기 전부터 캡슐커피 재진입을 준비했다. 개발 기간만 약 4년에 이른다. 코로나19가 홈카페 시장의 성장을 앞당기면서 동서식품이 다시 도전할 기반도 마련됐다.

두 번째 도전에서는 해외 브랜드가 아닌 카누를 선택했다. 2023년 출시한 '카누 바리스타'는 카누 브랜드 아래 머신과 전용 캡슐을 함께 구성한 시스템이었다. 타시모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제품의 출발점부터 다시 짠 셈이다.
동서식품의 프리미엄 캡슐커피 머신 ‘카누 바리스타'

8.4. 한국인이 마시는 한 잔에 답을 찾다접기



동서식품은 한국 소비자가 즐기는 아메리카노에서 틈을 찾았다. 기존 캡슐커피가 에스프레소를 중심으로 성장했다면 카누 바리스타는 상대적으로 양이 많고 깔끔한 아메리카노를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캡슐 하나에 담는 원두량을 늘리고 에스프레소와 물이 각각 추출되도록 머신을 설계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해외 파트너의 플랫폼을 유통한 타시모와 달리 국내 소비자의 음용 습관을 제품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자체 머신과 전용 캡슐만 고집하지도 않았다. 출시 당시 네스프레소 호환 캡슐을 함께 선보였고 이후 돌체구스토용 제품도 추가했다. 카누 시스템을 키우면서 기존 캡슐커피 소비자에게도 진입로를 열어둔 전략이다.

8.5. 선두 기업의 새로운 시험대접기



동서식품은 카누 바리스타 출시 이후 머신과 캡슐 제품군을 넓혀왔다. 소형 머신을 추가하고 원두와 로스팅 강도에 따라 캡슐 선택지도 늘렸다. 2026년 7월에는 우유 메뉴까지 만들 수 있는 프리미엄 머신 '카누 바리스타 오아시스'를 선보이며 활용 범위를 넓혔다.

다만 캡슐커피 시장에서 동서식품의 도전은 아직 진행형이다. 커피믹스처럼 제품 하나로 시장을 이끄는 것과 달리 캡슐커피는 머신 보급이 전제돼야 한다. 소비자가 카누 머신을 선택하고 전용 캡슐을 계속 구매하도록 만드는 일이 관건이다.

동서식품은 1976년 커피, 크리머, 설탕을 한 봉지에 담아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카누 바리스타에서는 원두와 추출 기술을 머신과 캡슐에 나눠 담았다. 누구나 손쉽게 일정한 맛을 낼 수 있도록 한 잔의 조건을 미리 설계했다는 점은 같다.

달라진 것은 시장에서의 위치다. 그동안 먼저 커피믹스 시장을 만들고 후발주자의 도전을 받아냈다. 그러나 캡슐커피에서는 첫 실패를 딛고 이미 굳어진 시장에 다시 뛰어들었다. 반세기 동안 왕좌를 지켜온 동서식품이 새로운 성장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커피믹스로 쌓은 경쟁력을 머신과 캡슐 시장으로 옮기는 일이 동서식품의 다음 과제다.
동서식품, 캡슐커피 머신 '카누 바리스타 오아시스'.
  • [1] 당시 정부는 부족한 외화를 산업 설비와 원자재 수입에 우선 배정하기 위해 커피를 사치성 기호품으로 분류했다. 1961년에는 외국산 커피의 판매뿐 아니라 영리 목적의 소유와 보관까지 금지했다. 1964년부터 완제품 대신 생두만 외화 쿼터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수입을 승인했고 1968년 커피를 수입금지 품목에서 제한승인 품목으로 완화했다.
  • [2] 2017년 특허청이 소셜미디어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우리나라를 빛낸 발명품' 조사에서 커피믹스는 훈민정음, 거북선, 금속활자, 온돌에 이어 5위에 올랐다.
  • [3] 처음에는 국내 아웃도어 시장을 겨냥했는데 해외에도 수출되어 '커피믹스(Coffee Mix)'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 [4] 커피 추출액을 열풍 속에 미세하게 분사해 수분을 빠르게 증발시키고 고운 분말 형태의 인스턴트커피를 만드는 제조 기술.
  • [5] 농축한 커피 추출액을 급속 냉동한 뒤 진공 상태에서 얼음을 액체로 거치지 않고 곧바로 수증기로 승화시켜 제거하는 저온 건조 기술. 커피의 향은 거의 대부분 보존되지만, 장비 초기 투자 비용과 전기 등 유지 관리 비용이 분무건조 방식보다 모두 높다.
  • [6] 1980년대 후반에는 수입 자유화와 소득 증가로 외국 유명 브랜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이전까지 접하기 어려웠던 수입품에는 희소성이 붙었고 외국 브랜드를 국산보다 품질이 좋고 세련된 제품으로 받아들이는 소비 심리도 강했다. 테이스터스 초이스는 세계 최대 식품기업 네슬레의 브랜드라는 점과 고급 이미지를 앞세워 이 수요를 흡수했다.
  • [7] 이 시기 커피믹스 시장은 연평균 24% 성장했다.
  • [8] 우유의 주요 단백질인 카제인을 분리한 뒤 나트륨과 결합해 물에 잘 녹도록 만든 성분이다. 커피 크리머에서는 식물성 유지와 물이 잘 섞이도록 돕고 부드러운 맛과 질감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에서는 식품첨가물로 분류하지만 식약처가 사용을 허용한 안전한 성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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