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금융권에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생산적 금융 전환을 주문했다.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산업 성장을 지원하라는 의도다. 이에 은행은 기업금융 중심으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기업여신이 증가하는 과정에서 부작용도 발생했다. 이자를 걷지 못하는 무수익여신 증가분의 대다수가 기업여신에서 나오고 있다. 빠른 속도로 기업여신이 늘어나면서 부실도 덩달아 커지는 모양새다.
◇기업여신 반기에만 수십조 증가…대출 지형 재편 최근 공개된 2분기 공시자료를 집계한 결과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5대 은행의 올해 6월 말 기업 원화대출 잔액은 850조8138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819조7951억원에서 31조187억원(3.8%) 늘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43조8305억원(5.4%) 증가한 규모다. 같은 기간 가계 원화대출은 반기 기준 0.9%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기 기준 은행별 증가율을 보면 하나은행이 4.5%로 가장 빠르게 기업대출을 늘렸다. 농협은행도 4.5% 증가했다. 우리은행 4.1%, 국민은행 3.4%, 신한은행 2.8% 순으로 기업대출이 늘어났다.
정책 효과가 숫자로 뚜렷하게 반영된 모습이다. 올해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가 강화되면서 은행은 가계 영업으로 자산을 키우기 어려워졌다. 동시에 금융당국은 생산적 금융 전환을 내걸고 기업금융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 여신이 눈에 띄게 늘었다. 생산적 금융 전환에 맞춰 우량 대기업 위주로 자금을 공급하며 성장과 건전성을 동시에 챙기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1년 새 우리은행의 대기업 대출은 31조9761억원에서 38조4138억원으로 20.1% 뛰었다. 농협은행 17.9%, 신한은행(공공 포함) 14.9%, 국민은행 12.4%, 하나은행 9.5% 등 5대 은행 모두 한 자릿수 후반에서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하나은행 6.6%, 신한은행 4.6%, 국민은행 2.6%, 농협은행 1.1% 증가에 그쳤고 우리은행은 1.7% 줄었다.
◇뚜렷해진 부실 온도차…중기 연체 '뇌관' 기업으로 쏠린 자금은 부실로도 이어지고 있다. 5대 은행의 6월 말 무수익여신은 6조4108억원으로 반년 새 28% 늘었다.
무수익여신을 기업과 가계로 나눠 공시하는 국민, 하나, 우리 3개 은행의 공시 내역을 보면 기업여신이 무수익여신 증가의 주원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들 세 개 은행의 상반기 무수익여신 증가분 1조420억원 가운데 91.6%인 9545억원이 기업에서 발생했다. 가계 증가분은 875억원에 불과했다.
하나은행의 기업 무수익여신은 6930억원에서 1조2876억원으로 85.8% 늘었고 우리은행은 5589억원에서 9054억원으로 62.0% 증가했다. 국민은행은 6646억원으로 2.1% 늘어나는 데 그쳤다.
부실 양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대기업에서는 중앙그룹 기업회생 신청처럼 단일 여신이 한꺼번에 부실로 잡히는 사례가 나왔다.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쪽은 연체가 서서히 쌓이고 있다. 6월 말 개인사업자(SOHO) 연체율은 우리은행 0.60%, 하나은행 0.56%, 신한은행 0.47%로 가계 평균을 크게 웃돈다.
대기업 중심 성장으로 당장의 건전성 지표는 관리되고 있지만 중소기업 연체가 부실로 넘어올 가능성은 남아 있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확대 기조 속에 기업여신 성장은 하반기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성장 속도에 맞춘 건전성 관리가 은행권 공통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