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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기업에 재고자산은 '딜레마'다. 다량의 재고는 현금을 묶기 때문에 고민스럽고, 소량의 재고는 미래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또 걱정스럽다. 이 딜레마는 최근 더 심해지고 있다. 공급망 불안정에 따른 원재료 확보의 필요성과 경기침체에 따른 제품 수요의 불확실성이 샌드위치 형태로 기업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벨은 기업들의 재고자산이 재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살펴본다.
삼성전자의 재고자산이 올해 상반기 71조3891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까지 불어났다. 지난해 말보다 18조7523억원 증가했다. 2022년 반도체 불황 당시 재고자산이 한 해 동안 10조원 넘게 늘었던 것과 비교해도 증가폭이 크다.
하지만 이번 재고 증가를 당시와 같은 불황형 재고로 보기는 어렵다. 재고의 증가 배경과 구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2022년에는 반도체 업황 둔화와 가격 하락 속에서 재고가 늘어난 데다 재고평가충당금까지 크게 증가했다. 반면 올해는 재고 규모 자체는 더 커졌지만 생산 과정에 있는 재고 등을 중심으로 늘었다.
◇2022년 불황에 재고 쌓이고 평가 부담 2022년은 삼성전자의 재고 흐름에서 이례적인 해였다. 반도체 업황이 악화되면서 재고자산이 크게 증가했고 보유 재고의 가치 하락에 대비한 재고평가충당금도 함께 늘었다.
삼성전자의 재고자산은 2021년 말 41조3844억원에서 2022년 말 52조1879억원으로 10조8035억원 증가했다. 1년 만에 26.1% 늘어났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요가 둔화하고 제품 가격이 하락하면서 재고 부담이 본격적으로 커진 시기였다.
주목해야할 부분은 재고평가충당금의 증가다. 재고평가충당금은 보유한 재고를 장부에 잡힌 금액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할 가능성이 있을 때 그 가치 하락분을 반영하는 항목이다. 재고가 늘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해당 재고를 제값에 팔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을 재무제표에 나타낸 것이다.
실제 재고평가충당금은 2021년 말 1조8930억원에서 2022년 말 4조3191억원으로 2조4261억원 증가했다. 재고자산이 10조원 넘게 늘어난 상황에서 재고 가치 하락에 대비한 충당금까지 2조원 이상 증가했다는 점에서 당시 재고 증가는 단순한 생산 확대와는 구분된다.
이후 재고자산은 안정되는 흐름을 보였다. 2023년 말 51조6259억원으로 2022년 말보다 소폭 감소했다. 이후 2024년 말에는 51조7549억원, 2025년 말에는 52조6368억원으로 50조원대 초반에서 움직였다. 2022년 불황기에 나타났던 급격한 재고 부담이 이후 진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026년, 재고 급증에도 불황형과 달라…DS 재공품 주도 올해 상반기 재고자산은 지난해 말보다 18조7523억원 증가했다. 6개월 만에 늘어난 규모가 2022년 한 해 증가액인 10조8035억원을 크게 웃돈다. 절대적인 재고 규모와 증가 속도만 놓고 보면 오히려 2022년보다 부담이 커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용은 다르다. 올해는 DS부문에서 재공품 증가가 두드러졌다. DS부문 재고자산은 지난해 말 28조8059억원에서 올해 6월 말 38조567억원으로 9조2508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재공품은 22조741억원에서 29조7101억원으로 7조6360억원 늘었다. DS부문 재고 증가액의 약 83%가 재공품 증가에서 발생한 셈이다. DX부문에서도 재고가 8조원 이상 늘었으며 이 가운데 원재료 증가폭이 두드러졌다.
재공품은 생산 과정에 투입됐지만 아직 완제품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재고를 의미한다. 반도체의 경우 웨이퍼가 여러 공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아직 제품으로 완성되지 않은 물량이 여기에 포함된다. 생산량이나 공정 투입량이 늘어나면 재공품도 함께 증가할 수 있다. 생산 과정에 있는 재공품이 늘어난 것과 완성된 제품이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이는 것은 같은 재고 증가라도 성격이 다르다.
이 때문에 올해 재고 증가는 2022년과 같은 방식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2022년에는 재고 증가와 함께 재고평가충당금이 크게 늘며 재고 가치 하락에 대한 부담이 재무제표에 반영됐다. 반면 올해는 DS부문 재고 증가액의 대부분이 생산 과정에 있는 재공품에서 발생했다. 2022년 당시와 같은 '불황형 재고'와는 질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삼성전자 역시 이번 재고 증가를 불황에 따른 악성 재고 증가로 보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악성 재고 같은 재고가 증가한 게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증가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