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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THE CFO가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 본다.
두산 핵심 계열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재무라인의 위상이 재확인됐다. 2018년 CFO를 각자대표로 올려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회사를 이끌도록 한 지 8년 만에 CFO 부회장을 배출했다. 사업총괄 CEO뿐 아니라 CFO에게도 부회장 승진의 길을 열었다.
지난 16일 두산그룹 인사로 부회장에 오른 두산그룹 CFO는 지주사 두산의 김민철 부회장과 두산에너빌리티의 박상현 부회장 등 2명이다. 그동안 수시 인사를 통해 승진자를 발표한 두산그룹이 이례적으로 전문경영인 부회장 승진자를 일제히 공개했다. 직전 대규모 전문경영인 부회장 승진 인사는 2007년 이재경(두산)·이남두(두산중공업)·최승철(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 사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번 부회장단 인사로 재무라인을 중용하는 두산그룹의 기조가 보다 뚜렷해졌다는 평가다. 두산그룹은 2018년 CEO·CFO 각자대표 체제를 도입하며 CFO에게 이사회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릴 기회를 마련했다. 대대적인 그룹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시기에 CFO의 재무적 판단을 회사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이식하려는 조치였다.
김민철 부회장은 이러한 각자대표 체제의 출발을 알린 인물이다. 1964년생으로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두산그룹에 입사한 그는 오랜 기간 재무파트에서 경력을 쌓았다. 2006년 두산 재무분석(FA)팀 상무, 2011년 경영전략 전무를 거쳐 2018년 두산의 대표이사 부사장 겸 CFO에 올랐다. 박정원 회장과 함께 두산을 이끌며 2020년 사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6년 만에 부회장 직함을 달았다.
김 부회장의 CFO 경력은 그룹의 구조조정기와 겹친다. 유동성 위기로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갔던 두산그룹은 2020년부터 강도 높은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김 부회장은 두산솔루스(현 솔루스첨단소재), 두산타워 등을 매각하는 작업의 실무를 총괄했다.
고강도의 구조조정 끝에 두산그룹은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 지 1년11개월 만인 2022년 2월 재무 안정성을 되찾고 관리체제에서 벗어났다. 2019년 340%까지 치솟았던 두산의 연결 부채비율은 하향 곡선을 그리며 2022년 155%까지 내려갔고 같은 기간 순차입금도 10조4772억원에서 5조3450억원으로 절반 이상 급감했다.
재무 안정성을 회복한 두산은 곧바로 새로운 사업 진출을 준비하며 2022년 3월 자회사 두산포트폴리오홀딩스를 통해 반도체 테스트 기업 테스나(현 두산테스나)를 인수했다. 추가로 올해 7월에는 두산이 주체가 되어 SK실트론 인수를 위한 계약을 맺었다. 내년이면 두산 CFO 재직 10년차를 맞는 김 부회장은 그룹의 재무구조 개선부터 신사업 진출까지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전반의 작업을 주도한 셈이다.
김 부회장과 함께 부회장단에 오른 박상현 부회장도 그룹 재무라인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 박 부회장은 1966년생으로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듀크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했다. 2004년 두산 전략기획본부 CFP(Corporate Financing Project)팀에 입사하며 그룹에 몸담기 시작했다. CFP팀은 당시 그룹 인수합병(M&A)을 주도하던 컨트롤타워 조직이다.
포트폴리오 재편을 담당한 컨트롤타워에서 근무한 박 부회장은 2013년 두산인프라코어에서 CFO로 첫발을 뗐고 2018년 그룹의 CEO·CFO 각자대표 체제 도입기에 두산밥캣 CFO로 대표직을 수행했다. 두산에너빌리티에는 2020년 옮겨와 2022년부터 각자대표 CFO직을 맡고 있다.
박 부회장 역시 그룹 구조조정기에 두산에너빌리티에 합류해 재무구조 개선을 이끌었다. 2019년 300%가 넘던 두산에너빌리티의 연결 부채비율은 2022년 120%대까지 내려갔으며 같은 기간 9조원에 육박하던 순차입금도 3조8600억원대로 절반 이상 급감했다. 두산인프라코어(현 HD건설기계)·건설 등 자회사 매각, 1조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등 정상화 작업을 수반한 결과다. 경영 정상화 이후 박 부회장은 현재 소형모듈원자로(SMR), 가스터빈 등 신사업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
이렇듯 그룹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을 주도한 핵심 CFO 2인의 부회장 승진으로 재무 수장의 직급이 사업 총괄과 같은 수준으로 올라갔다. 사실상 CEO 몫이라 평가받던 전문경영인 부회장 직함을 재무라인까지 넓혔다.